네번째 여행 82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

우리나라 무덤의 시작은 돌을 이용한 '고인돌과 돌무지 무덤(적석총)'이고, 오늘날과 같은 봉분형 무덤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봉분'이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그냥 산야에 버리거나 초목으로 덮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혹자는 무덤의 변천사를 처음에는 시신을 버리는 풍습에서 초목으로 덮는 형태 즉, 장(葬)으로, 다시 장에서 봉분이 없는 평지묘(平地墓)로, 평지묘에서 봉분을 한 분(墳), 총(塚)으로 변천, 발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일랜드 동부 미스카운티에 이같은 변천사를 완전히 무시한 무덤이 존재합니다. 신석기시대인 BC3100~2900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뉴그랑지(Newgrange)무덤으로 영국의 스톤헨지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래되었다..

네번째 여행 2011.04.13 (2)

국가권력은 묘지를 필요로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적어도 국가라는 공식적인 정치제도의 틀 안에서는 죽음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죽음에 차별을 둡니다. 일반의 사적인 죽음과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서 공적인 죽음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공적인 죽음을 매우 치밀하게 관리를 합니다. 국립묘지가 그러한 공적죽음을 관리하는 제도적 공간입니다. 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또는 국가가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인정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묻혀있거나 안치되어있는 장소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육체적일뿐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가권력이 등장했을 때나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의 죽음은 정치적 생명력을 얻어 다시 되살아 납니다. 국가는 왜 죽음에 차별을 두고 이를 관리하..

네번째 여행 2011.04.08 (1)

백두산

백두산 화산폭발의 전조현상 ☞ 이산화황 분출 모습 위성 영상 포착 지난해 11월 7~8일 유럽의 기상위성(METOP)영상에 백두산 인근 지역에서 (화산가스인) 이산화황이 분출된 모습 촬영. ☞ 백두산 인근의 잦은 지진과 이에 따른 천지 암벽 균열 2002년 이후 백두산 일대에는 한달에 250여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 이로인해 암벽에 균열과 암반에 틈새가 생기고 그 사이로 천지에 담긴 20억톤의 물이 흘러내려 지하 마그마와 만날 경우 초대형 화산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 ☞ 천지 칼데라 7㎝ 융기 등 백두산 지표 상승 2002~2005년 백두산 천지 칼데라 호수 주변 지형이 7㎝가량 융기. 마그마 위쪽 지표가 위아래나 양 옆으로 이동하면서 서서히 부풀어오르면 지표가 상승하고 지열도 상승. ☞ 말라죽는..

네번째 여행 2011.03.31 (1)

거문도 영국군 묘지

무단 침략했던 자들의 묘가 아직도 남아있는 이유와 관광명소로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고종 22년(1885)부터 1887년까지 약 23개월에 걸쳐 영국군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구실로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던 ‘거문도 사건’ 과정에서 병이나 사고로 죽은 영국군의 묘지입니다. 당시 영국군의 철군 결과를 확인하고자 거문도에 내려온 경략사(經略使) 이원회(李元會)의 보고에 의하면 사망자 묘지는 총 9기 였으나 현재는 3기만 남아있습니다. 서구식 비문에는 “1886년 3월 알바트로스(Albatross) 호의 수병 2명이 우연한 폭발 사고로 죽다. 월리암 J. 메레이(William J. Murray)와 17세 소년 찰스 댈리(Charles Dale)"로 새겨져 있고, 십자가에는 ”1903년 10월 3일 알..

네번째 여행 2011.03.29 (1)

장국영 찾기

지난 2003년, 비가 내리는 우울한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 같이 세상을 떠나버린 배우 장국영(張國榮).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는 그렇게 고인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과 홍콩을 휩쓸던 사스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그는 화장(火葬)되어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화장 직후 그의 가족과 지인이 함께 도교의 성지인 중국 사천성 청성산(青城山) 후산(后山)에 들러 묏자리를 살펴봤다는 소문만 있고 실제 그의 골회가 그곳에 묻혔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의 죽음도 미심쩍은 점이 많지만, 죽음 이후 그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보인 행동도 수상한 점이 많습니다. 장국영의 신위(神位)는 현재 홍콩 사전보복산(沙田寶福山)의 골회감(骨灰龕) '보선당(寶襌堂) 695호'에 생전 가장 가까웠던 친구 나문(가..

네번째 여행 2011.03.16 (2)

일본, 나토리시 화장장

▲ 나토리시 화장장(名取市斎場)은 1993년 건립된 곳으로 바다가 보이고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 위치한 공원형 화장시설입니다. 고대의 고분 모양을 본따 만든 곳으로 완만한 언덕을 조성하여 그 내부에 화장시설을 설치해 외부에선 잘 보이지 않도록 설계를 했습니다. 지난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몇년전 센다이와 나토리시, 이와테현을 방문한 적이 있어 친근하게 느껴졌던 곳인데 이런 참변이 발생해 매우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뉴스를 보니 이 지역에서 하루 수천구씩 발견되는 시신으로 인해 시신을 옮길 컨테이너와 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구조대와 비상식량 만큼 장례용품도 필요한 모양이니 국내의 협회나 단체에서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

네번째 여행 2011.03.16 (2)

무덤 위에 무덤, 그 위에 또 무덤

1478년 체코 프라하 유대인 거주지역에 조성된 이 묘지는 200평에 불과한 장소에 약 10만구의 유대인 시신이 묻혀있는 곳입니다. 어떻게 이 협소한 장소에 10만구나 되는 시신이 묻힐 수가 있었을까요? 유럽 최대의 유대인 강제거주지구였던 이곳은 거주지역 바깥에 매장하는 것을 금지한 규정 때문에 프라하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은 이곳으로 와 묻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1787년 묘지가 폐쇄되기까지 309년 동안 이곳은 기존 무덤 위에 새 흙을 덮고 다시 무덤을 조성하는 '적층방식'을 적용하여 운영되었습니다. 우리에겐 낯선 이 적층식 매장방법은 유럽에선 기원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습으로 한 장소에 여러명의 유골을 수직으로 밀집시켜 보관하던 집단 매장방식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의 까보(Caveau)와..

네번째 여행 2011.03.15 (1)

한국의 공원묘지

☞ 공원묘지는 묘지에 공원시설을 혼합 설치하여 '생활 공원화'한 것으로, 조경 등의 녹지시설과 추모기념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 현재 공원묘지의 공간이 부족한 원인은 순환되지 못하고 축적되게하는 시스템에 있습니다. 묘지는 보존이 아니라 '순환을 원칙'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야심한 시각, 한쌍의 아베크족이 두리번 거리며 차를 몰고 가다 ○○공원이라 적힌 표지판을 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웁니다. 꼬불 꼬불한 좁은 길을 한참을 달려간 끝에 드디어 공원입구에 도착합니다. 짙은 어둠으로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던 그들은 승용차의 상향등 레버를 조심스레 올려봅니다. 순간 화들짝 놀라 등줄기가 서늘해 짐을 느낍니다. 그곳은 쉼터와 여가의 장소인 '공원'이 아니라 수만기의 묘가 서로 뒤엉켜있는 '..

네번째 여행 2011.03.14 (1)

죽음이 삶을 앞질러버린 도시 '홍콩'

지난해 인구 700만을 돌파한 홍콩은 매년 4만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약 90%의 화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총 41개의 묘지와 12개의 화장장(봉안시설)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만장되어 사용이 어렵고, 좁은 토지로 인해 추가적인 장묘시설의 설치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홍콩은 더이상 '삶과 죽음이 공유하는 도시'가 아니라 '죽음이 삶을 앞질러버린 도시'입니다. 사실 홍콩 뿐 아니라 중화권 전체가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중화권 특유의 '묘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지 않는 한 삶과 죽음의 영역다툼에서 삶은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장묘시설로 골머리를 앓던 홍콩정부는 최근 유골을 뿌리는 산골(散骨)장소를 증설하여 무료로 제공하고 있고, 바다에 뿌리는 해양산골 또한 정책적으로 지원하..

네번째 여행 2011.03.10 (3)

저승가는 길동무 - 꼭두

옛 상여에는 재미있는 형상의 나무조각들이 빙 둘러 붙어있습니다. 묘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남녀를 비롯해 나무와 꽃, 임신한 여인, 칼든 무사, 하인, 춤꾼 등의 모습을 두툼한 나무조각에 새겨넣고 색을 칠한 것으로 ‘꼭두’라고 합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만들어서 꼭두인지 몰라도 제작 당시 여러명이 참여하여 빠른 시간내에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생전 고인의 모습과 활동, 좋아했던 사람들 등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전문가가 아닌 동네 사람들이나 어린아이가 만든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투박해 보입니다. 묘에 부장하는 토우를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아마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던것 같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혼자는 외로운 법이지요.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2층 꼭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꼭두 뿐 ..

네번째 여행 2011.03.0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