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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죽음

자명한 퇴장

 

 

햇살이 비치는 거실. 극도로 정갈하다. 가구는 최소한만 남았고, 모든 표면은 먼지 하나 없이 닦여 있다. 중년의 진석(50대)이 무표정한 얼굴로 거실 바닥에 앉아 최신형 공업용 비닐 롤을 자르고 있다. 그의 곁에는 말기 암 환자용 진통제 봉투가 놓여 있다.

 


진석이 침대 매트리스 위에 비닐을 겹겹이 씌운다. 모서리마다 박스 테이프를 붙이는 손길이 정교하다.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사제 같다. 비닐 작업이 끝나자, 그 위에 검은색 바디백을 펼친다. 진석, 잠시 숨을 고르며 바디백 내부를 손으로 쓸어본다.

 


단출한 책상 위, 스탠드 불빛 아래 [엔딩 노트]가 놓여 있다. 진석이 만년필을 들어 마지막 문장을 적고 그대로 펼쳐 놓는다. 그는 거울을 보며 정갈하게 면도를 하고, 가장 깨끗한 리넨 셔츠로 갈아입는다.



진석이 바디백 안에 눕는다. 스스로 지퍼를 가슴팍까지 올린다. 시선은 천장의 빈 공간을 향한다. 고통이 밀려오는지 미간을 찌푸리지만, 곧 평온을 되찾는다. 마지막 남은 손으로 지퍼를 머리 끝까지 끌어올린다. 찌이익, 소리와 함께 방안은 완전한 정적에 잠긴다.

 

 

책상 위 펼쳐놓은 엔딩 노트의 페이지가 미풍에 살짝 흔들린다.

 




1. 발견자에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을 때 불쾌한 악취는 나지 않을 것입니다. 침대 위 바디백 안에 제가 있습니다. 모든 오염 방지 처리를 마쳤으니, 그대로 수습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노동이 평소보다 가볍기를 바랍니다."


2. 고독사를 택한 이유

"나는 평생 타인의 무너진 현장을 닦으며 살았습니다. 죽음은 삶의 찌꺼기를 남기는 일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정리여야 합니다. 병원 침대에서 타인의 손에 의지해 연명하는 것은 내게 '정리되지 않은 삶'일 뿐입니다. 스스로 유품을 분류하고, 거처를 소독하며, 내 몸이 부패해 공간을 훼손하기 전에 차단하는 것. 이것이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직업적 마침표입니다."


3. 남겨진 이들에게

"슬퍼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깨끗하게 나를 비워냈습니다. 비워진 자리에는 슬픔 대신 고요한 질서만 남겨두고 갑니다. 책상 위 봉투에 특수 청소 및 장례 비용을 미리 넣어두었습니다. 부디 나의 마지막 '작업'을 존중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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