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제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공포가 가학적 광기로
진수에게 '살아있는 인간'이란 예측 불가능하며, 언제든 자신을 거부하거나 상처 줄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는 타인의 감정 변화를 읽지 못해 늘 따돌림을 당했고, 생존을 위해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며 감정적 고립을 자처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 홀로 집을 지키던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게 된 것이 전환점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고통에 신음하며 자신을 다그치던 할아버지는 숨이 멎는 순간, 진수가 평생 갈구해온 '완벽한 정적'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평화로운 얼굴을 보며 진수는 처음으로 타인 앞에서 긴장을 풀 수 있었습니다. 시신은 화를 내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결코 자신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기묘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장례지도사가 된 진수에게 염습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성소가 되었습니다. 사회에서는 늘 무시당하고 소외되었던 그였지만, 염습대 위의 시신 앞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주도권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그가 정성껏 혹은 과하게 시신을 다루는 행위는, 사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단 한 번도 행사해보지 못한 '관계의 통제권'에 대한 갈망입니다. 신체의 모든 구멍을 메우고 단장하는 행위에 집착하는 것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완벽하게 밀폐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하려는 강박적 심리가 투영된 것입니다.
진수는 이제 산 사람과의 대화가 불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살아있는 이들의 웃음소리는 소음일 뿐이며, 오직 차가운 피부를 가진 죽은 자들만이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준다고 믿습니다. 동료들의 시선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죽음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은밀한 유대감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침잠해 들어갑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가운 염습실에서 자신만의 의식에 몰두하던 진수 앞에 한 구의 시신이 들어옵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진수가 평소처럼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며 뒤틀린 만족감을 느끼려던 찰나, 그녀의 주머니에서 멈추지 않고 울리는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고요한 성역을 찢고 들어옵니다. 발신인은 '엄마'. 그 소리는 죽은 자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산 사람의 연결고리'를 상징하며 진수의 평온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날 이후, 진수는 환청에 시달립니다. 자신이 유린했던 시신들이 밤마다 귓가에 속삭이며 그를 비웃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너는 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환청은 진수를 극도의 불안으로 몰아넣습니다. 통제권을 잃어간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더욱 가학적이고 집요하게 시신을 훼손하며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 듭니다. 이 과정에서 평소 방관하던 동료조차 눈치챌 만큼 그의 행동은 대담하고 기괴해집니다.
어느날 밤, 광기에 휩싸인 진수는 차가운 염습대 위에 스스로 누워 눈을 감았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비난 섞인 함성보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완벽한 정적의 세계로 영원히 도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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