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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죽음

영원한 단절

 

연락을 끊은 지 10여년, 두 동생 기철과 기수는 아버지의 임종 소식에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태는 술잔을 기울이며 영정 사진 속 아버지를 응시합니다.


장례가 끝나고, 기태는 아버지의 유산과 수천만 원에 달하는 조의금을 나누려 동생들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없습니다. 기철은 빚에 쫓기면서도 받기를 거부했고, 원룸 생활을 하는 막내 기수는 아예 번호를 바꿔버립니다.

기태는 아버지가 남긴 작은 노트를 펼칩니다. 그 안에는 평생 자식들에게 차마 전하지 못한 슬픈 가정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태가 상속받은 것은 재산이 아니라, 아버지가 평생 홀로 짊어졌던 '가족의 아픔'과 '고독' 그 자체였습니다.


기태는 뒤늦게 동생들을 찾아 나서지만, 기철은 행방불명되었고 기수는 형을 보자마자 문을 걸어 잠급니다. 장례식 때 입었던 상복을 여전히 벗지 못한 기태는 아버지를 모신 수목장 숲에서 절규합니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재산을 홀로 움켜쥔 채, 그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사실 삼형제 모두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눈 내리는 겨울, 기태는 동생들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그들의 집 앞에 두고 옵니다. 하지만 그 돈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눈 속에 파묻힙니다. 서로를 외면한 대가는 '가난한 평화'가 아니라, 다시는 연결될 수 없는 '영원한 단절'이었습니다.


 

기철은 월세가 밀린 어두운 반지하방에서 마지막 소주병을 비웠습니다. 형에게 전화를 걸까 수백 번 고민했지만, 자존심이 손가락을 멈추게 했습니다. 결국 그는 TV 소리만이 가득한 방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일주일 뒤, 문틈으로 새어 나온 고약한 냄새가 그의 유일한 부고장(訃告狀)이 되었습니다.



가족의 집착이 무서워 모든 연결을 끊었던 막내 기수는 원룸방에 스스로를 유폐했습니다. 그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배달 음식만을 먹으며 철저히 익명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겨울 밤, 지독한 고열이 그를 덮쳤을 때 기수는 핸드폰 속 '가족'이라는 이름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습니다. "도와달라"는 말보다 "혼자가 편하다"는 주문이 그를 더 깊은 잠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낡은 컴퓨터 모니터의 차가운 빛을 조명 삼아 홀로 서늘하게 식어갔습니다.



기태는 두 동생의 유골함을 안고 아버지가 잠든 수목장 숲으로 향합니다. 그는 숲속 한가운데 낡은 식탁을 차리고 세 개의 촛불을 켭니다. 이제야 삼형제는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식탁 위에는 온기 없는 그릇과 텅 빈 의자들뿐입니다.


기태는 바닥에 떨어진, 세 아이가 어깨동무를 한 낡은 흑백 사진을 집어 듭니다. "이제야 왔냐... 이 못난 놈들아." 기태의 울음소리가 어두운 숲속으로 흩어집니다.

세 갈래로 갈라진 길 끝에 선 기태는 깨닫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진짜 유산은 돈도, 땅도 아닌 '함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평생의 회한이었다는 것을.

 

달빛 아래, 기태는 홀로 식탁을 지키며 촛불이 꺼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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