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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죽음

두드려주세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밥을 먹은 날, 하늘은 맑았다.

 

찬장 맨 아래 칸에서 라면 한 봉지를 찾아냈다. 유통기한이 두 달 지나 있었다. 가스가 끊겼으니 끓일 수도 없었다. 수진은 봉지를 뜯고 면을 그냥 씹었다. 바삭바삭한 소리가 반지하 방 안에 울렸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그녀는 잠깐 웃음이 났다. 시나리오 작가 최수진, 서른여덟. 유통기한 지난 라면을 날로 씹으며 혼자 웃고 있다.

 

웃음은 금방 멈췄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수진의 방은 반지하였다.

 

창문을 올려다보면 세상이 보였다. 정확히는 세상의 아랫부분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 자전거 바퀴, 떨어진 낙엽.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이 아니라 밑에서 올려다보는 세상. 그게 이 방의 풍경이었고, 그게 오랫동안 그녀의 삶이었다.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스물다섯이었다. 월세 23만 원. 보증금 200만 원. 전 재산을 털어 계약했다. 그래도 기뻤다. 이제 마음껏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밤새 불을 켜도 눈치 볼 필요 없고, 원하는 만큼 울어도 되고, 원하는 만큼 웃어도 됐다. 방 한 칸이 그녀의 세계 전부였지만, 그 세계가 충분히 넓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원고지가 쌓이는 게 좋았다. 쓰다가 구겨 버린 것들도 좋았다. 커피 자국이 번진 메모지도, 밤새 고민한 대사 한 줄도. 가난했지만 자신이 무엇을 위해 가난한지 알고 있었다. 아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그게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딱 잘라 말할 수 없었다. 서서히였다. 파도가 모래성을 무너뜨리듯,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췌장염 진단을 받은 날,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성으로 가면 관리가 힘듭니다.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잘 드셔야 해요."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을 나와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았다. 한 시간쯤 그렇게 앉아 있었다. 잘 드셔야 한다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정작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먹을 돈이 없었으니까. 아니, 더 정확히는 잘 먹을 돈을 버는 방법을 이미 잃어버린 것 같았으니까.

 

통증이 심한 날은 자판을 두드릴 수가 없었다.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웅크리면 시간이 그냥 흘러갔다. 마감을 넘겼다. 한 번, 두 번.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다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안부를 묻던 후배도, 가끔 함께 밥을 먹던 선배도,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졌다. 아무도 악의가 없었다. 그냥 다들 자신의 삶이 바빴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세상이 원래 그런 것임을 알면서도, 혼자 남겨지는 일이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걸 그녀는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전기가 끊기던 날 아침, 수진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고지서가 세 장 쌓여 있었다. 그 옆에 월세 독촉 문자가 핸드폰에 두 개 들어 있었다. 핸드폰은 그날 저녁에 꺼졌다. 배터리가 아니라 요금 미납이었다. 불이 꺼지고, 냉장고가 멈추고, 노트북 충전기가 무용지물이 됐다.

 

어둠 속에서 수진은 노트북을 한참 들여다봤다.

 

쓰다 만 시나리오가 있었다. 30대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 어릴 적 꿈을 쫓다 지쳐버린 사람이, 뒤늦게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이야기. 기승전결도 다 잡아놨고, 인물들의 관계도 설계해 뒀고, 3막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주인공이 오래된 편지를 발견하는 장면까지 써놨는데, 딱 거기서 멈춰 있었다.

 

수진은 덮개를 닫았다. 지금은 어차피 켤 수 없었다.


닷새가 지났다.

 

처음 이틀은 배가 아팠다. 위장이 뒤틀리는 것처럼, 등까지 당기는 것처럼 아팠다. 물을 마시면 조금 나아졌다. 수도는 아직 살아 있었다. 수돗물을 손으로 받아 마셨다. 차가웠다. 그것만이 살아 있는 감각이었다.

 

사흘째부터는 통증 대신 공허함이 왔다.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아니라, 몸의 어딘가가 조용히 꺼져가는 느낌. 일어서면 눈이 하얗게 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바닥을 짚고 기듯이 움직였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발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운동화 한 켤레가 느릿느릿 지나갔다. 저 사람은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집으로 가는 걸까. 따뜻한 밥이 있는 집으로.

 

그 생각을 하다가 수진은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소리 없이 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귀로 들어갔다. 짠맛이 났다. 몸 안에 이것만 남았구나, 라고 생각했다.


옆방은 B01호였다.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이사 온 첫날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가볍게 목례를 했던 것이 전부였다. 여자였고,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았고, 항상 바빠 보였다. 밤에는 TV 소리가 들렸다. 아주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불빛과 소리가 있는 쪽과 어둡고 조용한 쪽이 나뉘어 있었다.

 

수진은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묘한 안도감을 느꼈었다. 내 옆에 사람이 있다. 세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다섯째 날 새벽이었다.

 

처음엔 바로 거부했다. 말도 안 된다고.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이웃한테 밥을 구걸하다니. 창피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이상의 감정이 밀려왔다. 자존심, 수치심, 자기혐오. 이십 년 가까이 혼자 버텨온 사람이었다. 손 벌리기보다 굶는 것을 택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몸이 솔직했다. 더 이상은 힘들다고 말하고 있었다.

 

수진은 원고지를 한 장 뜯었다. 볼펜을 찾는 데 한참 걸렸다. 손이 떨렸다.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수없이 좋은 문장을 썼던 손이었는데, 그날은 네 줄을 쓰는 데 30분이 걸렸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다 쓰고 나서 오래 들여다봤다. 고치고 싶었다. 평생 문장을 다듬으며 살아온 사람이라 어색한 표현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치지 않았다. 이건 잘 쓴 문장이 아니어도 됐다. 그냥, 닿으면 됐다.

 

복도로 나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문손잡이를 잡는 것조차 힘을 써야 했다. 벽을 짚고 B01호 앞에 섰다. 문이 코앞이었다. 초인종이 보였다. 손가락 하나만 올리면 됐다. 그런데 그 손가락이 올라가지 않았다. 메모를 붙이는 것으로도 이미 전생의 용기를 다 끌어모은 것 같았다.

 

그녀는 돌아섰다.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었다. 10월 중순이었는데 방 안이 몹시 추웠다. 보일러가 가스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가스가 없었다. 이불을 턱까지 당겨 올렸다. 창문 위로 사람들의 발이 지나갔다. 점점 줄어들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두드려줄 거야.

 

그 생각이 마지막 온기였다.

 

잠들기 전 수진은 이상하게 생생하게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 된장찌개 냄새. 밥상 위에 놓인 계란말이. 그것들이 몹시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천천히 흐릿해졌다.

 

엄마.

 

그 한 글자를 소리 없이 입술로 움직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B01호의 주민이 메모를 본 건 그날 밤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문을 여는데 복도 전등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메모가 눈에 띄긴 했다. 무언가 붙어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피곤했다. 오늘 하루도 지쳐서 들어온 참이었다. 내일 아침에 보지 뭐, 라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에.


그 내일 아침이 두 번, 세 번 지나갔다.

 

B01호의 주민이 이상한 냄새를 처음 맡은 건 사흘 뒤였다. 처음엔 어디서 나는 건지 몰랐다. 복도 창문을 열었다. 그래도 없어지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집주인이 왔고, B02호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고, 아무 대답이 없자 여분의 열쇠로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이불 위에 수진이 있었다. 이불이 턱까지 덮여 있었다. 얼굴은 평온했다. 꼭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집주인이 이름을 불렀다. 어깨를 흔들었다. 그리고 뒷걸음질 쳤다.

 

구석에는 원고지 묶음이 있었다. 낡은 노트북이 있었다. 빈 찬장이 있었다.

 

그리고 물 한 잔이 있었다.

 

손이 닿는 곳에, 마지막으로 마시려 했는지 아니면 남겨두려 했는지 알 수 없는, 컵에 담긴 물 한 잔이.


B01호의 주민은 그날 밤 오래 울었다.

 

메모를 뒤늦게 다시 읽었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창피하지만, 이라고 시작하는 그 문장이 눈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밥이랑 김치가 있었다. 냉장고에 먹다 남은 밥이 있었고 김치가 있었다. 그걸 들고 문을 두드리는 데 걸렸을 시간은 삼십 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삼십 초.

 

그 삼십 초가 평생 그녀를 따라다닐 것이었다.


수진의 짐을 정리하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집주인이 혼자 치웠다. 원고지 묶음을 종이봉투에 담았다. 노트북을 박스에 넣었다. 이불을 갰다. 방 안을 쓸고 닦았다.

 

노트북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누가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안에 다 쓰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고, 30대 여자가 주인공이었고, 오래된 편지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멈춰 있었다는 것을. 결말이 쓰이지 못한 이야기가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B01호 문에는 메모가 오래 붙어 있었다.

 

집주인도, 경찰도, 다른 이웃도 그 메모를 쉽게 떼어내지 못했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붙인 것이라는 걸, 보는 사람은 모두 알았으니까. 결국 비가 오고 나서야, 빗물에 글씨가 번져 읽을 수 없게 된 뒤에야, 조용히 사라졌다.

 

빗물에 번진 글씨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것은 첫 두 글자였다.

 

창피.


그해 겨울은 유독 빨리 왔다.

 

서울의 어느 반지하 방에 새 세입자가 들어왔다. 짐을 풀면서 벽의 곰팡이를 발견했다. 구석의 원고지 자국을 발견했다. 전 세입자가 뭘 했던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생각했다가, 금방 잊었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그 페이지 어딘가에, 아직 문에 메모를 붙이지 못한 채 손 안에서 꼭 쥐고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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