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장 후 남은 유골재를 집에 두는 것이 허용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라마다 다르다. 어떤 나라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떤 나라에서는 여전히 불법이다. 그 차이는 단순한 법 조문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차이다.
화장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이 질문은 더 많은 사람 앞에 놓이게 됐다. 묘지에 묻힌 시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항아리에 담긴 유골재는 다르다. 집에 둘 수 있고, 나눠 가질 수도 있으며, 여행 가방에 담아 이동할 수도 있다. 이 가동성은 새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했고, 나라마다 다른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냈다.
집에 두어도 되는 나라들
미국에서는 유골재를 집에 보관하는 것이 대부분의 주에서 허용된다. 장례 이후 유족이 유골재를 직접 수령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업계에서는 7천만 명의 미국인이 집 안 어딘가에 고인의 유골재를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장롱 속, 선반 위, 창고 한켠에 놓인 유골함은 미국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보관 방식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추모 산업도 등장하고 있다.
영국 역시 유족이 유골재를 자유롭게 수령하고 보관할 수 있다. 어디에 둘 것인지, 어떻게 추모할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가족의 선택에 맡겨진다. 화장률이 80%를 넘는 영국에서 가정봉안은 이미 일상적인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일본은 세계 최고 수준인 99% 이상의 화장률을 기록하는 국가다. 가정봉안을 금지하는 법 규정은 없으며, '손원공양(手元供養)'이라는 이름으로 유골 일부를 작은 항아리나 펜던트에 담아 가까이 두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이를 기반으로 형성된 추모용품 시장은 이미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 역시 가정봉안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없다. 반대로 이를 적극적으로 허용하는 별도의 법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허용 관행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화장률이 90%를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유골재를 집에 두고 추모하는 일은 이미 많은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역시 가정봉안이 허용되는 국가들이다. 최근 등장한 다양한 유골 가공 서비스와 추모 상품 산업 역시 이러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성장해 왔다.
금지하는 나라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장례제도를 가진 국가 가운데 하나다. 이른바 '묘지 강제주의(Friedhofszwang)' 원칙에 따라 유골은 원칙적으로 공인된 묘지나 허가된 장소에 안치되어야 한다. 유골재를 집에 보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자연장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이 자유롭게 유골을 보관하는 것은 어렵다.
폴란드 역시 유골재를 묘지나 봉안시설에 안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가정봉안은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은 독일이나 폴란드와는 조금 다른 사례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조상을 집 안에서 기리는 문화가 존재해 왔다. 혼붕(魂棚), 정령분(靈位), 위패 제사 등은 죽은 이를 가족 공동체 안에 머물게 하는 전통적인 추모 방식이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가정이 조상 위패와 영정을 집 안에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다만 중국 정부는 2026년부터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아파트를 유골 안치 전용 공간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유골 아파트'를 금지하는 규정을 시행했다. 이는 가정 추모 자체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 주거용 부동산이 사실상의 납골시설로 변하는 현상을 규제하기 위한 조치에 가깝다. 따라서 중국은 가정봉안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국가라기보다, 전통적 가정 추모 문화와 현대 도시 규제가 충돌하는 과도기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별도의 입장을 갖고 있다. 가톨릭은 1963년 이후 화장 자체를 허용하고 있지만, 유골재를 집에 보관하거나 자연에 뿌리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교회는 유골이 납골당이나 성지 등 적절한 장소에 안치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교회의 입장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가톨릭 문화권 국가들의 장례 관행과 제도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지에서 허용으로 가는 흐름
흥미로운 점은 변화의 방향이다. 가정봉안을 허용하던 국가가 이를 다시 금지한 사례는 드물다. 반대로 엄격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개인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의 논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일에서도 최근에는 유골재를 집에 보관하거나 정원에 안치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연구와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아직 법은 보수적이지만, 현실과 인식은 점차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공통된 사회 변화가 존재한다.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인해 묘지를 자주 방문하기 어려워졌다. 종교 인구 감소는 전통적 장례 규범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1인 가구 증가와 개인화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설계하려는 욕구를 키웠다. 죽음을 제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이 직접 결정하려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봉안이 가능해지면 산업이 생긴다
가정봉안이 허용된 국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새로운 추모 산업이 성장한다.
전통적인 유골함 산업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훨씬 다양한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유골재를 손에 쥘 수 있는 조약돌 형태로 가공하는 서비스, 펜던트에 담아 몸에 지니는 서비스, 유리 결정체나 구슬로 만드는 기술, 탄소를 추출해 인공 다이아몬드로 제작하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들 산업의 공통점은 유골재가 묘지나 봉안시설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성장했다는 점이다. 법적 허용과 사회적 수용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이 유골재 구슬 가공 기술 분야에서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허용이 먼저 있었고, 산업이 뒤따랐다.
한국의 다음 과제
한국은 현재 사실상 허용 관행에 의존하고 있다. 명시적 금지도 없고, 명시적 허용도 없다. 그 결과 보호도 부족하고 기준도 불분명하다.
유골재를 어떤 방식으로 보관해야 하는지, 가공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일부를 나누어 보관할 수 있는지, 상업적 활용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
앞으로 가정봉안과 유골재 가공 서비스가 확대될수록 이러한 질문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필요한 것은 금지와 허용의 이분법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권과 사회적 안전장치를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가정봉안의 법제화는 단순히 어디에 유골재를 둘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 이후의 선택권을 누가 갖는가의 문제다. 납골당 업계의 이해관계나 행정의 편의가 아니라, 고인과 유족이 자신에게 맞는 추모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집에 두는 것이 허용된다는 것은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자주 생각한다는 뜻이다. 자주 생각한다는 것은 더 오래 기억된다는 뜻이다. 추모는 결국 기억의 문제이고, 기억은 거리의 문제다. 유골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는 결국 우리가 죽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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