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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뉴스

Lift & Deepen, 한국에서 가능할까

 

Lift & Deepen, 한국에서 가능할까


영국, 호주 등에서 요즘 조용히 주목받는 매장 기술이 있다. 이름은 Lift & Deepen. 기존 무덤을 더 깊게 파서 원래 유골을 아래에 다시 모시고, 그 위 공간에 새로운 매장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묘지 부족 문제를 새 땅 없이 해결하는 수직적 재활용이다.


아이디어를 처음 들으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시티 오브 런던 묘지, 하이게이트 묘지처럼 역사 깊은 곳들이 이미 특별법 아래 시범 운영을 시작했고, 의회 차원의 논의도 진행 중이다. 공간이 줄어드는 건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묘지 포화 문제는 이미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Lift & Deepen을 실시하면 어떤 법에 걸릴까. 답부터 말하면, 장사법 하나다. 여러 법이 겹쳐 있던 묘지 태양광 문제와 달리, 이건 장사법 한 곳만 손보면 길이 열린다.

 


지금 무엇이 막고 있나


현행 장사법은 유골을 옮기는 행위 전체를 개장으로 본다. 같은 묘혈 안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도 예외가 없다. 개장을 하려면 연고자가 관할 읍면동에 신고해야 하고, 신고 없이 유골에 손을 대면 무단 파묘로 간주된다.


분묘 점유면적 기준도 문제다. 법은 분묘 1기당 10제곱미터, 합장의 경우 15제곱미터까지만 허용한다. 합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같은 혈연을 나란히 모시는 것을 전제하고 있어, 혈연 관계 없는 두 사람을 수직으로 겹쳐 안치하는 방식은 현행 규정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설치기간 문제도 있다. 기존 유골을 깊은 곳에 다시 안치하면 그 분묘의 설치기간을 언제부터 다시 세는지 규정이 없다. 법적 공백이다.


요약하면, 적층 매장이라는 새로운 장사 방식이 장사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개별 조항을 유권해석으로 피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이 방식 자체를 법에 새로 써 넣어야 한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은 어떤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막고 있는 법이 장사법 하나다. 묘지 태양광처럼 장사법, 산지관리법, 국토계획법을 동시에 돌파해야 하는 구조가 아니다. 장사법 시행령이나 법 조문에 적층 매장 관련 조항 하나를 추가하는 것으로 길이 열린다. 입법 기술적으로 훨씬 단순하다.


둘째, 묘지 포화 문제는 이미 정책 과제다. 화장률이 90퍼센트를 넘어섰음에도 기존 매장 묘지가 워낙 많아 공설묘지 포화는 현실적인 행정 문제가 되고 있다. 공간을 새로 만들지 않고 기존 묘지를 효율화한다는 논리는 예산 절감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있다.


셋째, 연고자 동의를 전제로 설계하면 사회적 저항을 상당히 낮출 수 있다. 영국도 75년 이상 된 묘지에 한해, 연고자가 없거나 동의한 경우만 허용하는 조건으로 논의를 좁혀나갔다. 한국에서도 분묘 설치기간이 만료된 묘지, 혹은 연고자가 직접 신청하는 경우로 적용 범위를 한정하면 출발이 가능하다.

 


어떻게 시작할 수 있나
가장 현실적인 경로는 공설묘지 대상 시범사업 조항을 장사법에 신설하는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설묘지에서, 설치기간이 끝났거나 연고자가 동의한 분묘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적층 매장을 허용하는 특례 조항이다. 민간 묘지로 범위를 넓히는 건 그 이후 단계다.


이 조항이 생기면 개장신고 절차와 재매장 기준, 설치기간 산정 방식, 면적 기준의 적용 방법을 시행령에서 구체화하면 된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장사법 안에 방식 하나를 추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입법 속도도 빠를 수 있다.


Lift & Deepen은 죽은 자의 공간을 줄이자는 발상이 아니다. 한정된 땅 위에서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한국에서 그 시작은 장사법 조문 하나에서 열린다.

 

 

여담 하나.

2024년 영화 파묘에 첩장(疊葬)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조선의 명당 혈을 끊기 위해 조선인 무덤 아래에 몰래 일본인 시신을 숨겨 넣었다는 설정이다.

 

풍수적으로 아랫자리가 윗자리의 기운을 잡아먹는다는 논리다. 영화적 공포의 핵심 장치였는데, 공교롭게도 Lift & Deepen과 구조가 같다. 기존 유골 아래에 다른 시신을 겹쳐 넣는다는 점에서다. 물론 방향이 반대이고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행위가 한쪽에서는 공포물의 소재가 되고 다른 쪽에서는 묘지 정책의 해법으로 논의된다는 게 흥미롭다.

 

Lift & Deepen을 한국에 도입하려 할 때 사회적 거부감이 어디서 오는지를 생각해보면, 파묘의 흥행이 꼭 우연만은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