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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묘에 태양광 패널을 달면-1000명에게 물어봤다

조상 묘에 태양광 패널을 달면 어떻게 될까 - 1000명에게 물어봤다 (가상 여론조사)

 

지난해 경남의 한 지자체가 야산 묘지 구역 인근에 소규모 태양광 단지를 조성하려다 주민 반발로 무산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조상님 뵐 면목이 없다."

 

나는 그 뉴스를 보고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만약 묘지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는 제안을 1000명에게 한다면, 정확히 어떤 반응이 나올까?

 

직접 여론조사를 돌릴 예산은 없으니, 가상으로 설계해봤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이지만 결과가 꽤 흥미롭다.

 

숫자부터 보자

예상 응답 분포는 대략 이렇다.

 

강력 반대 38%, 조건부 수용 24%, 무관심 또는 모름 20%, 조건부 찬성 11%, 적극 찬성 7%.

 

반대가 우세하지만 압도적이지는 않다. 그리고 "조건부"라는 단어가 두 진영 모두에 붙는다는 점이 포인트다.

 

반대 진영. 논리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

반대 이유 1위는 예상대로였다. "조상이 불편하실 것 같다"(78%).

 

이건 미신이나 무지의 문제가 아니다. 묘지라는 공간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감각으로 작동하는지의 문제다. 묘지는 죽은 자의 집이다. 거기에 낯선 구조물을 올린다는 것은, 허락도 없이 남의 집 지붕을 뜯는 이미지에 가깝다. 감정이 먼저 차단 버튼을 누르고, 이성은 그 다음에 이유를 만든다.

 

2위는 "묘지는 신성한 공간이다"(65%). 흥미롭게도 이걸 답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정작 본인은 종교가 없다고 했다. 신성함이라는 감각이 특정 종교에 묶여 있지 않고, 죽음을 다루는 모든 공간에 배어드는 한국 특유의 정서다.

 

3위가 좀 웃기다. "집안 망신이다"(51%). 실제로 어느 집이 그걸 한다는 게 알려지면 추석 제삿날 친척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두가 알고 있다는 뜻이다.

 

수용 진영. 실용주의가 조용히 커지고 있다

찬성 쪽 이유 1위는 "관리비와 벌초 비용에 보태면 좋겠다"(71%).

 

이게 핵심이다. 한국의 묘지 관리 비용은 만만치 않다. 풀 베러 여름마다 산을 오르는 수고, 납골당 관리비, 이장 비용. 거기서 수익이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성한 공간"이라는 감각도 돈 앞에서는 협상이 가능하다는 게, 솔직히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위가 더 흥미롭다. "어차피 아무도 안 오는 묘인데"(63%).

 

이 답변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미 묘지와의 관계를 서서히 끊고 있다는 신호다. 성묘 인구는 줄고, 화장율은 90%에 육박하고, 2031년에는 30년 법정 안치 기한이 끝난 묘들이 수십만 기 단위로 파묘 대상이 된다. "어차피 아무도 안 오는 묘"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그 공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진지한 사회적 질문이 된다.

세대 단층. 60대와 30대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60대 이상에서 반대는 78%에 달한다. 이 연령대는 대부분 가족 의사결정에서 거부권을 가진 위치에 있다. 부모나 조부모가 반대하면, 자식 세대가 아무리 동의해도 실행이 안 된다.

 

반면 30대 이하에서 반대는 29%로 뚝 떨어진다. 이 세대는 이미 묘지보다 수목장, 납골당, 심지어 우주장에 더 친숙하다. 묘지를 방문한 경험 자체가 적고, 그 공간에 대한 감각적 연결이 약하다. 그래서 "거기다 태양광 달면 어때"라는 질문에 훨씬 가볍게 반응한다.

 

이 세대 단층이 중요한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결정권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진짜 질문. 묘지는 누구의 공간인가

태양광 패널 이야기를 길게 한 것 같지만, 사실 이건 묘지라는 공간의 정의에 관한 질문이다.

 

묘지는 죽은 자의 공간인가, 산 자의 공간인가.

 

죽은 자의 공간이라면, 그 공간에 산 자의 경제 논리를 들이미는 건 불경이다. 하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공간을 유지하는 비용은 산 자가 낸다. 묘지를 찾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그 공간의 사회적 의미도 협상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의 묘지 면적은 국토의 1%를 넘는다. 여의도 면적의 300배가 넘는 땅이 죽은 자를 위해 배정돼 있다. 그 땅의 절반 이상이 30년 기한 내에 관리 주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태양광 패널이 정답이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묘지에 뭔가를 설치한다"는 질문이 불러오는 반응의 지형도를 보면, 우리 사회가 죽음과 공간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 대화를 앞두고 있는지가 보인다.

 

 

여러분 집안 묘지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절반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잠깐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그 계산기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지금 한국 장례 문화가 놓인 자리다.

 

 

엔딩연구소는 한국의 죽음 문화와 장례 제도를 연구합니다. end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