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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뉴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이 기관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매년 35만 명 이상이 죽는 나라에 장례 행정을 총괄하는 국가 기관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 설립한 재단법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장사문화의 컨트롤타워라 부른다. 직원은 22명이다.

이 기관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지를 들여다봤다.

설립 목적과 현실 사이의 거리
진흥원의 설립 취지는 그럴듯하다.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운영, 장사 정책 연구 및 개발, 취약계층 장례 연계 지원, 선진 장사문화 진흥. 보건복지부는 설립 당시 이 기관이 성숙한 장례문화 조성의 컨트롤타워가 되길 기대했다고 밝혔다.

2026년 현재 진흥원이 실제로 하는 일의 목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e하늘 시스템 위탁 운영, 장례지도사 온라인 교육 플랫폼 운영(e스카이에듀), 별빛버스 무연고 장례지원 사업, 이별준비 캠페인 홈페이지 운영, 카드뉴스 제작, 뉴스레터 발송, 인스타그램 운영.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589명이다. 유튜브 채널은 수년째 업데이트가 드물다. 장례문화를 바꾸겠다는 기관의 소셜미디어 존재감이 동네 카페 수준이다.
 

e하늘을 받아서 15년째 이 모양이다
진흥원의 핵심 업무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운영이다. 보건복지부가 2010년 구축한 시스템을 위탁받아 운영한다. 위탁이니까 구축의 책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탁받은 이후 매년 '고도화 사업' 명목으로 예산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고도화의 결과물이 지금 저 시스템이다.

전화 예약이 안 된다. 예약 변경이 안 된다. 팝업이 연달아 뜬다. 시신·태아·개장을 골라야 한다. 사망진단서가 나오기 전에는 예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모바일에서는 글씨가 깨지고 버튼이 겹친다. 접속 URL이 여러 개인데 어디로 들어가야 실제 예약이 되는지 안내가 없다.

2011년 운영 결과보고서를 보면 당시에도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포털 개편, 모바일 앱 개발, UX 개선. 15년 동안 같은 개선 과제가 반복되고 있다. 고도화 예산은 어디로 갔는가.
 

2025년 9월, 시스템이 죽자 진흥원도 죽었다
2025년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e하늘이 완전히 멈췄다. 전국 647개 정부 시스템 중 96개가 중단됐고 그 안에 e하늘이 포함됐다. 전국 화장장 예약이 동시에 불가능해졌고 복구에 최소 2주에서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 화장 예약은 전화·팩스·방문 수기로 처리됐다. 시설별로 접수 방식이 제각각이었고, 일부 지자체는 관외 접수를 아예 중단했다. 서울추모공원과 승화원은 e하늘 외에 독자적인 예약 DB가 없어 손을 놓았다.

진흥원이 운영하는 시스템이 단일 장애점이 됐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다 담아놓고, 바구니에 불이 나자 전국 유족들이 피해를 봤다. 컨트롤타워가 하나의 단일 시스템에 전체 인프라를 의존하도록 설계한 것 자체가 문제다.
 

무연고 사망자가 6천 명인데 버스 한 대다
진흥원의 가장 인도적인 사업처럼 보이는 것이 별빛버스 무연고 장례지원 사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기증받은 버스에 간이빈소와 저온 안치 공간을 갖추고 무연고 사망자 발생이 많지 않거나 사업 수행이 어려운 지자체를 순회하며 장례를 지원한다.

숫자를 보자. 2024년 한 해 무연고 사망자는 전국에서 6,139명이 발생했다. 하루 평균 17명꼴이다. 5년간 2만 3,790명이 무연고로 사망했고, 그 수는 2021년 3,603명에서 2024년 6,366명으로 4년 새 1.8배 급증했다.

버스가 한 대다. 그것도 서울·경기·인천·부산·제주는 제외한다. 무연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지역들이 빠진 것이다. 서울 한 해 무연고 사망자만 1,365명을 넘는다. 버스 한 대가 지방을 순회하는 것이 국가의 대응이다.

별빛버스 1대 출범 당시 세종 은하수공원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보건복지부 실장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모의 장례식에 참관했다.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기념식 비용과 홍보 예산이 얼마였는지는 알 수 없다.
 

무연고 통계조차 국가 통계가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통계 문제다. 진흥원이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장례 행정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숫자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2024년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서울 무연고 사망자는 1,365명이었다. 그런데 서울시 공영장례지원·상담센터가 발표한 수치는 1,391명이었다. 26명의 차이가 났다. 상담센터는 시설 사망자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지부 수치가 더 커야 정상인데, 오히려 복지부 수치가 작았다. 어느 쪽이 맞는지 아무도 모른다. 국가 통계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다.

2024년 기준 고독사 사망자도 3,924명으로 전년보다 7.2% 증가했다. 매일 10명 이상이 고독사한다. 이 숫자들이 증가하는 동안 진흥원은 카드뉴스를 만들고 뉴스레터를 발송했다.
 

'이별준비' 플랫폼이라는 형식 채우기
진흥원 홈페이지에는 '이별준비' 캠페인이 있다. 사전장례의향서를 미리 작성하자는 취지다. 별도 사이트(ebjb.kr)도 운영한다. 취지는 나쁘지 않다. 미리 준비하는 장례, 자연장 이용, 검소한 장례문화. 진흥원이 내세우는 방향과 일치한다.

문제는 실질이다. 그 사이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오는지, 사전장례의향서를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작성했는지, 그 결과가 실제 장례에서 어떻게 활용됐는지에 대한 공개 데이터가 없다. 형식은 있는데 성과 측정이 없다.

진흥원 홈페이지의 '이달의 장례용어', '무엇이든 물어보사나래', '요즘장례설명서', '장례문화 온앤오프' 같은 콘텐츠 메뉴들을 보면 무엇을 진짜 사업이라 보는지 알 수 있다.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실적이 되는 구조다.
 

위탁이라는 책임 회피 구조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구조 자체가 책임 회피를 내장하고 있다. e하늘은 보건복지부가 만들었고, 운영은 진흥원이 위탁받는다. 시스템이 문제가 생기면 복지부는 진흥원에 책임을 돌리고, 진흥원은 원래 복지부가 만든 시스템이라고 한다. 무연고 장례 지원도 지자체 조례가 없는 곳은 별빛버스가 가고, 있는 곳은 지자체가 담당한다. 어디에도 책임의 중심이 없다.
 
설립 출연금이 9,100만 원에 불과한 소규모 재단이 매년 수십억 원의 국고보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는, 초기 설계 단계부터 실질적인 권한과 자원 배분이 결여되었음을 시사한다. 연간 사망자 35만 명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 장사 행정의 컨트롤타워라기에는 재정적·행정적 기반이 턱없이 취약하며, 이는 진흥원이 정책 주도권을 가진 독립 기구가 아닌 보건복지부의 지침을 단순 수행하는 '외주형 수탁 기관'에 머물러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e하늘 시스템을 현대화하고 전화 예약 채널을 열고 예약 변경 기능을 넣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각 화장장의 독자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이 15년째 안 됐다는 것은 의지의 문제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진흥원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처럼 복지부 정책의 집행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을 조사하고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 변화를 추진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무연고 사망자 통계를 스스로 관리하고 공개하고, 화장 인프라 부족 문제를 매년 정부에 압박해야 하고, e하늘 UX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지적해야 한다.

지금 진흥원이 하는 일 중 상당 부분은 누군가 하긴 해야 하는 일들이다. 문제는 그 일을 하면서 국민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가이다. 인스타그램에 카드뉴스를 올리는 것과 장례 행정을 개혁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연간 35만 명이 죽는다. 그 모든 죽음이 어떤 식으로든 이 기관과 이 기관이 운영하는 시스템을 통과한다. 그 무게에 걸맞은 기관인지, 한번쯤 물어볼 때가 됐다.
 

대부분의 나라는 중앙부처나 지방정부가 직접 담당한다. 한국처럼 부처와 현장 사이에 별도 재단법인을 끼워 넣고 e하늘 같은 핵심 시스템을 위탁 운영시키는 구조는 드물다. 위탁 구조는 책임 소재를 흐리게 한다. 시스템이 문제가 생기면 복지부는 진흥원을 가리키고, 진흥원은 원래 복지부가 구축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자기 이름으로 전국 화장장 DB를 운영하고 자기 이름으로 가이드라인을 낸다. 잘못되면 부처가 직접 책임진다. 한국의 구조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