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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장례식에도 안 왔는데 무슨 유산이야"

 

"장례식에도 안 왔는데 무슨 유산이야"

 

빈소에서 가장 차가운 말, 그리고 법과 감정이 가장 크게 충돌하는 순간

 

"그 동생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

 

빈소에 도착한 장례지도사는 상주의 첫마디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왜 그러시죠?"

 

큰형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연락도 했습니다. 그런데 끝내 안 왔어요. 마지막 얼굴도 안 보고, 발인도 안 지켰습니다. 그런 사람이 부의금은 물론이고 유산까지 가져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잠시 후, 장례식장 입구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막내아들이었다.

 

형제의 눈이 마주쳤지만 누구도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

 

큰형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왜 왔어."

 

동생은 한참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미안해."

 

하지만 이미 늦었다.

 

빈소에는 울음보다 긴 침묵이 먼저 흘렀다.

 

장례지도사들은 말한다.

 

이런 싸움은 생각보다 흔하다고.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돈 때문에 싸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돈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싸움은 '누가 마지막까지 부모 곁에 있었는가'를 둘러싼 인정의 싸움이다.

 

몇 년 동안 병원을 오가며 간병한 자녀가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부모를 돌본 사람도 있다.

 

병원비를 대신 낸 사람도 있다.

 

그런데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형제가 빈소에 나타난다.

 

그 순간 간병했던 가족은 돈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견뎌온 시간이 이렇게 쉽게 같은 무게가 되는 건가.'

 

그 억울함이 먼저 올라온다.

 

그래서 빈소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장례도 안 왔는데 무슨 상속이야."

 

"부모 마지막도 안 지킨 사람이 자식이냐."

 

"유산은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

 

장례식 참석 여부와 상속권은 별개의 문제다.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상속권이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장례식장에서는 이 사실을 듣고 더 화를 내는 가족도 적지 않다.

 

"법은 그렇다 쳐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바로 그 지점에서 법과 감정은 가장 크게 충돌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부모의 죽음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중심축 하나가 사라지는 사건이다.

 

가족은 갑자기 불안해지고, 그 불안은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바뀌기 쉽다.

 

연락하지 않았던 형제는 그 분노를 모두 떠안기 가장 쉬운 대상이 된다.

 

그래서 빈소에서 오가는 말은 상속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인정받지 못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나는 몇 년을 병원에 다녔다."

 

"나는 부모님 손을 마지막까지 잡고 있었다."

 

"그런데 왜 똑같은 자식이냐."

 

이 말의 끝에는 늘 같은 질문이 숨어 있다.

 

'내 희생은 누가 인정해 주는가.'

 

그래서 장례지도사는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이렇게 묻는다.

 

"아버님께서 지금 이 모습을 보신다면 가장 마음 아파하실 일이 무엇일까요."

 

신기하게도 그 질문 하나에 빈소의 공기가 조금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형은 여전히 화가 나 있고, 동생은 여전히 미안하다.

 

법도 변하지 않는다.

 

상속권도 그대로다.

 

하지만 모두가 한 가지 사실만큼은 인정하게 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싸우는 이유는 결국 유산이 아니라, 부모를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책임졌는지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어쩌면 장례식은 재산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평생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가장 거칠게 쏟아지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음은 종종 상속보다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