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소에 적막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조문객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뒤였다.
하얗게 자리를 지키던 국화 향이 희미해지고, 장례식장 입구의 영정 표지판이 내려지자 며칠간 북적이던 공간은 거짓말처럼 차갑고 고요해졌다. 형은 먼지가 뽀얗게 앉은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상속 문제도 정리해야지."
동생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식어버린 종이컵을 지그시 쥐어짜며 형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긴 침묵 끝에 새어 나온 동생의 목소리는 낮게 떨리고 있었다.
"형… 저는 안 받을게요. 형이 다 가져요."
"무슨 소리냐. 너에게도 정당한 몫이 있는데."
"난… 받을 자격이 없어요."
끝내 형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는 동생의 한마디에, 장례 내내 꾹 참아왔던 형의 눈시울이 붉게 젖어 들었다.
장례의 현장에 서다 보면, 세상은 흔히 유산이라는 잔여물 앞에서 인간이 욕심을 드러내고 서로를 할퀴며 다툴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실제로 그러한 날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가슴 깊이 오래도록 흉터처럼 남는 순간은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이다.
"저는 받지 않겠습니다."
그 고백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슴을 짓눌러오는 죄책감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다.
부모가 차가운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4년의 시간 동안, 동생은 겨우 몇 번밖에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타향에서의 고단한 직장 생활, 어린 자녀들, 매일같이 몰아치는 일상… 처음에 한 달에 한 번이던 발걸음은 두 달에 한 번으로 멀어졌고, 나중에는 명절조차 핑계를 대며 찾아가지 못했다.
다달이 병원비를 입금하고 안부 전화를 걸었으나, 부모가 진정으로 그리워했던 것은 통장에 찍히는 차가운 숫자가 아니었다.
"언제 오느냐…"
그 나지막한 물음에 매번 다음을 기약하던 미안함이었다.
부모가 위독하다는 연락은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 찾아왔다. 떨리는 손으로 기차표를 뒤지고 비행기 시간을 조회했으나, 마침내 도착했을 때 부모의 숨은 이미 거두어진 뒤였다. 차마 마지막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동생은 영정 속 부모를 스마트폰 화면으로 바라보며 장례식장 바깥 길가에서 몇 시간을 목놓아 울었다.
세상은 그에게 "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위로를 건넸지만, 스스로에게 내린 판결은 냉정했다.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할 때 찾아오는 것은 단순한 슬픔만이 아니다. 슬픔의 그림자 뒤에는 언제나 ‘후회’라는 날카로운 가시가 함께 따라온다.
'그때 한 번만 더 찾아갈걸.' '전화라도 조금 더 오래 할걸.' '그 여윈 손을 한 번만 더 따뜻하게 잡아드릴걸.'
애도심리학에서는 이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설명한다. 사랑의 깊이가 깊었던 만큼, 떠나보낸 뒤에는 하지 못했던 일들이 선명한 상처처럼 돋아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그 괴로운 죄책감을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나는 받을 자격이 없다." "형이 홀로 다 짊어졌으니 내가 받아서는 안 된다."
유산이라는 물질을 포기해 버림으로써 부모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씻어내고자 믿는 것이다.
그러나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잔인하다. 돈을 포기한다고 해서 가슴속 멍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질문은 깊은 밤마다 찾아와 가슴을 짓누른다.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벌하며 살기를 바라셨을까.'
그 질문에는 그 누구도 시원한 답을 내어주지 못한다.
반대로 홀로 부모의 마지막을 지켜낸 형의 마음 역시 편할 리 없다. 동생이 상속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형이 얻게 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또 다른 죄책감의 짐'이다.
'내가 이것을 다 받아도 되는 것일까.' '내 동생은 평생 이 미안함을 십자가처럼 지고 살아가겠지.'
부모를 잃은 깊은 슬픔 위에, 형제는 서로 다른 모양의 미안함을 하나씩 더 얹어놓는다. 그리하여 장례 절차는 끝이 났으되, 그들의 애도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여 장례지도사들은 가슴이 가장 시린 그 순간에 서둘러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나지막이 권한다.
장례 직후의 마음은 슬픔과 자책이 가장 깊게 소용돌이치는 시간이다. 그때 내린 결단은 자신의 진심이라기보다, ‘상실’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대신 내린 결정일 확률이 높은 까닭이다.
며칠을 더 목놓아 울어도 좋다. 몇 달을 더 가슴 아파하며 고민해도 된다. 재산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누고 정리할 수 있지만, 가장 아픈 순간에 섣불리 내려버린 선택은 평생 가슴에 아린 흉터로 남기 때문이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며 자식에게 남기는 것은 한 줄의 통장 잔고나 부동산이 아니다. 서로의 손을 놓지 말고 의지하며 살아가라는 따뜻한 체온이다.
어느 부모가 한 아이는 평생 죄책감에 무너져 살고, 다른 아이는 미안함에 어깨를 펴지 못한 채 살아가길 바라겠는가. 부모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던지던 그 말.
"형제끼리 우애 깊게 지내라. 싸우지 마라."
그 말은 단순히 재산을 사이좋게 나누라는 뜻이 아니라, 아무리 슬픈 일이 찾아와도 서로의 손을 놓아버리지 말라는 마지막 부탁이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삼베옷도, 두꺼운 관도, 차가운 유골함도 아니다.
끝내 부모에게 전하지 못한 한마디를 가슴 깊은 곳에 묻고 살아가는 남겨진 이의 마음이다.
"엄마, 미안해…" "아버지, 한 번만 더 찾아뵐걸…"
그 나지막한 읊조림은 장례식이 끝나고 몇 년의 세월이 흘러도, 누군가에게는 평생 가슴으로 부르는 끝나지 않는 노래가 된다.
오늘도 빈소를 떠나가는 이들의 등 뒤를 바라본다. 그들이 손에 쥐고 돌아가는 것은 한 줄의 유산이 아니라, 저마다 가슴에 품은 아련하고 묵직한 미안함이라는 것을… 장례지도사는 조용히 가슴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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