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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여행

유골을 집에 두면 안 되나요?

 

유골을 집에 두면 안 되나요?... 미국은 3분의 1이 그렇게 합니다


화장하고 나서 유골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안당이나 수목장, 산분을 떠올린다. 집에 두는 건 선택지로 생각하지 않는다. 어딘가 불법일 것 같고, 불길할 것 같고, 주변에 말하기도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북미화장협회(CANA)의 통계에 따르면 화장 유골재를 취득한 가족 중 3분의 1은 묘지에 매장하고, 3분의 1은 산분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자택에 보관(Home Inurnment)한다. 다른 조사는 더 나아간다. CANA는 화장 유골재의 60~80%가 묘지 이외의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추산하는데, 여기에는 자택 보관, 산분, 메모리얼 주얼리 등이 포함된다. 어느 쪽 수치를 보더라도 집에 유골재를 두는 것은 미국에서 이미 일반적인 선택이다.


한국에서 같은 질문을 하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집에 유골재를 두는 것이 불법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한국의 법적 답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불법이 아니다. 적어도 처벌할 조항이 없다.


장사법은 봉안을 "유골재를 봉안시설에 안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봉안시설은 봉안당·봉안묘·봉안탑이다. 따라서 자택에 유골재를 두는 것은 법률상 봉안이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택 보관을 금지하는 조항도 없다. 처벌 근거도 없다.


묘하게도 장사법은 이 행위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금지하지도 않는다. 자택 유골재 보관은 법의 열거 목록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냥 존재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집에 유골재를 두는 사람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봉안당 사용기간이 만료되거나, 비용 문제로 봉안을 포기하거나, 수목장 준비를 미루다가 결국 집에 유골재가 머무는 경우는 적지 않다. 법이 모르는 척하는 동안 유골재는 이미 집으로 오고 있다.


일본, 법의 빈틈이 문화가 된 사례


한국 바로 옆에 훨씬 앞서 나간 사례가 있다.


2002년 정월, 교토의 사업가 야마자키 조지(山崎譲二)는 아버지의 말기암 선고를 받았다. 어떻게 감사를 표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도달한 결론이 유골재를 직접 손에 두고 공양하는 방식이었다. 유골재를 활용한 도자기 지장보살상을 직접 만들어 공양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이 방식을 '手元供養(테모토쿠요)'라 이름 붙이고 2002년 4월 박국옥(博國屋)을 창업했다. 창업 초기에는 연간 수십 명의 고객밖에 없었지만 수년 만에 1,000명을 넘어섰고, 2005년에는 NPO 手元供養協会를 설립했다.


현재는 추정 10만 명이 手元供養을 실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문화가 성립할 수 있었던 법적 근거는 단순하다. 핵가족화, 1인 가구 증가, 도시 생활형 개인주의에 의한 사생관·공양관의 변화로 유골재 전량을 묘지에 납골하지 않고 일부 또는 전량을 자신의 손 가까이 두고 싶다는 수요가 생겨났다. 그리고 일본 묘지·매장에 관한 법률(墓埋法)은 규제 대상을 "토중에 묻는 행위"로 좁게 설정했기 때문에, 용기에 담아 집에 두는 것은 처음부터 법의 사정권 밖에 있었다. 누가 허용한 것이 아니라 금지된 적이 없었다.


제품 생태계도 함께 자랐다. 6센티미터 안팎의 미니 골호(ミニ骨壷)부터 유골재 펜던트·반지·유리 오브제까지, 소재와 가격대가 다양하게 갖춰졌다. 手元供養 상품 사용에 "거부감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61%에 달했으며, 7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세대에서 "거부감이 있다"를 웃돌았다. 불안에서 출발한 실천이 20년 만에 주류 선택지의 하나로 자리 잡은 셈이다. 일본 최대 장례 기업 중 하나인 산홀딩스(燦ホールディングス)도 시장 동향 보고서에서 手元供養을 수목장·산골과 함께 새로운 공양 형태의 대표 사례로 나란히 열거하고 있다. 이미 업계 표준으로 편입된 것이다.


영미권의 법리는 무엇이 다른가


미국과 영국도 같은 구조다. 자택 유골재 보관에 관대한 것은 별도로 허용 조항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규제 대상 자체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미권 법의 기본 구조는 간명하다. 규제하는 것은 매장(burial), 즉 땅에 묻는 행위다. 보관(storage, keeping)은 처음부터 규제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용기에 담아 집에 두는 행위는 아무 조항에도 걸리지 않는다. 법이 허용한 것이 아니라, 법이 애초에 문제로 삼지 않은 것이다.


한국 장사법은 구조가 다르다. 장사 처리 방식을 매장·화장(봉안 포함)·자연장으로 열거하고, 봉안의 정의에 봉안시설을 끌어들인다. 규제 대상을 좁게 그은 것이 아니라 허용 목록을 촘촘하게 만들었다. 그 목록 밖의 행위는 허용도 금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놓인다. 자택 유골재 보관이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왜 이것이 문제인가


법이 모르는 척하는 동안 현실은 움직인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분의 1을 넘어섰다. 봉안당은 포화 상태고 비용은 오른다. 수목장·산골은 절차가 번거롭거나 심리적 저항이 있다. 이런 조건에서 유골재가 일단 집으로 오는 경우는 앞으로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법적 공백이 당사자에게 불안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묻고 싶어도 물을 곳이 없다. 행정은 봉안시설 목록 바깥의 일은 안내하지 않는다. 가족 간 분쟁이 생겨도 준거가 없다. 보관하던 사람이 사망하거나 이사를 가면 유골재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게 결국 무연고 유골재 문제로 이어진다.


미국에서도 이미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화장 업체와 장례업체에 수십 년째 인수되지 않은 유골재가 쌓이고 있다. 자택에 두다가 당사자가 사망하고, 상속인이 처리 방법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으면 유골재는 방치된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가정봉안이라는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택 유골재 보관을 나쁜 풍습으로 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따져보면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비용이 없다. 봉안당 비용, 수목장 비용, 이후 관리비가 들지 않는다. 고인과 가까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실현한다. 이사를 해도 함께 이동할 수 있다. 최종 처분 방식을 천천히 결정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이것을 방치라고 부를 수 없다. 오히려 적극적 선택이다.


문제는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그 선택을 뒷받침할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 미국, 영국이 보여주는 것은 거창한 제도 개혁이 아니다. 규제 대상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라는 기본적인 입법 설계의 차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20년 뒤 문화의 모습을 바꾼다.


한국 장사법이 봉안의 정의에서 봉안시설 요건을 걷어내거나, 가정봉안을 장사 처리 방식의 한 유형으로 명시적으로 인정하거나, 최소한 자택 임시 보관 후 최종 처분 의무를 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처럼 법이 눈을 감은 채 두면, 제도는 없고 행위만 존재하는 상태가 계속된다.


유골재를 집에 두는 사람들은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법이 없는 공간에서 알아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