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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여행

편도 티켓

 
편도 티켓... 한국에서 고통 없이 죽지 못해 스위스로 간 사람들

2023년 8월, 79세 여성이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방암이 뼈로 전이된 말기 환자였다. 날 선 칼이 뼈 마디마디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됐다.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받았다.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스위스행 편도 티켓이었다.

디그니타스.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비영리 조력사 단체다. 외국인도 회원으로 받는 유일한 곳이다. 이 단체를 통해 생을 마감한 한국인이 2023년까지 공식 확인된 것만 8명이다. 디그니타스 한국인 회원 수는 2018년 32명에서 2023년 162명으로 5년 만에 다섯 배가 됐다.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한국에서 고통 없이 죽을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돈과 체력을 써서 스위스까지 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한 것

스위스 조력사는 안락사가 아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가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뒤 스스로 약을 복용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의사가 약을 주입하지 않는다. 환자가 직접 마신다. 능동적 자기결정이다.

심사 과정도 쉽지 않다. 두 달 가까이 걸린다. 의료 기록 영문 번역, 라이프 리포트 작성, 화상 면접, 현지 의사 대면 진료. 체력이 없는 말기 환자가 혼자 통과하기 어렵다. 비용도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이 넘는다. 가족의 도움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복잡한 과정을 감수하면서도 스위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사실 거창하지 않았다. 더 이상 통증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것. 원하지 않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죽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조씨의 마지막 바람이 있었다. 다른 중증 환자들이 한국에서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스위스까지 가서 죽으면서 남긴 말이 그것이었다.
 
한국에서 지금 가능한 것들

조력사 합법화는 긴 논쟁이 필요한 문제다. 그 논쟁을 기다리지 않아도 지금 당장 달라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고통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는 것. 이것은 조력사가 아니다. 이것은 돌봄의 문제다.

현재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경로를 따라가보겠다.

가정형 호스피스 등록

말기 진단을 받은 즉시 담당 의사에게 가정형 호스피스를 요청하는 것이 첫 번째다. 전국 40개소가 운영 중이다. 등록하면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담당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면 변사 처리 없이 사망진단서가 발급된다.

이것이 한국에서 집에서 죽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 의사도 먼저 권유하지 않는다. 환자가 먼저 물어야 한다.

등록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야간 연락 체계가 있는지, 통증이 심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것이 불명확한 기관이 있다. 기관마다 다르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담당 의사와 함께 작성하는 문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다르다. 담당 의사가 작성하는 것이라 현장 구속력이 더 강하다. 심폐소생술 거부, 인공호흡기 거부를 명시해두면 응급 상황에서 119 대원이 소생술을 시작하지 않는 근거가 된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문서를 서랍 안에 넣어두면 없는 것과 같다. 집 안 눈에 띄는 곳, 냉장고 문이나 현관 옆 벽에 붙여두어야 한다. 119 대원이 진입했을 때 즉시 보여야 작동한다.

119 전에 담당 의사에게 먼저

응급 상황에서 가족이 119를 먼저 부르면 병원으로 가게 된다. 순서를 바꿔야 한다. 담당 의사 또는 가정형 호스피스 간호사에게 먼저 전화한다. 그 다음에 119를 부를지 결정한다.

이 순서를 가족이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몸에 익힌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통증 조절을 미리 확보한다

스위스까지 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이 통증이었다. 통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아무리 집에 있고 싶어도 응급실로 가게 된다.

가정형 호스피스 담당 의사에게 미리 물어야 한다. 통증이 심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경구 진통제 처방을 미리 받아둘 수 있는지. 이것을 미리 확보해두는 것과 필요할 때 처방받는 것은 다르다.

임종 공간을 미리 만들어둔다

병원 침대가 아닌 자신의 침대에서. 익숙한 냄새, 익숙한 빛, 익숙한 소리. 이것이 평화로운 임종의 실질적 조건이다.

지금부터 정해둘 수 있다. 어떤 음악을 틀어달라고 할 것인지. 누가 곁에 있기를 원하는지. 어떤 조명이 좋은지. 창문을 열어달라고 할 것인지. 이것을 가족에게 말해두거나 엔딩노트에 써두면, 임종 당일 가족이 그대로 실행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전제

지금 나열한 것들은 하나의 조건 위에서만 작동한다. 미리 준비한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경로라는 것이다.

임종이 임박한 다음에 시작하면 늦다. 말기 진단을 받은 시점부터, 가능하다면 그 이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 준비를 안내해주는 사람이 지금 한국에는 없다. 의사는 치료를 이야기하고, 가족은 포기한다는 말을 꺼내기 두려워하고, 아무도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먼저 물어봐주지 않는다.

스위스까지 간 사람들이 원한 것은 조력사 자체가 아니었다. 통증 없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죽는 것이었다. 그것이 한국에서 가능한 구조였다면 편도 티켓을 살 이유가 없었다.

1인 가구라면 지금 당장

가족이 없는 경우는 준비의 순서가 다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지금 정해야 한다. 가족이 아니어도 된다. 오래된 친구, 이웃, 공동체의 누군가. 그 사람에게 연락 순서와 문서 보관 장소를 알려두는 것이 최소한의 준비다.

엔딩노트 첫 페이지에 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두는 것. 아주 작은 일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조씨가 스위스에서 버튼을 누르기 전,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고통 없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그것이 그가 원한 전부였고, 한국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죽지 않기 위해 스위스까지 가야 하는 나라. 그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이 현실을 바꾸는 것은 조력사 합법화 논쟁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말기 환자가 통증 조절을 받으며, 가족 곁에서, 병원이 아닌 공간에서 죽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갖춰지지 않은 채 조력사 논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그 문을 두드리는 것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일 것이다. 순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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