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과 다시 대화한다는 것... 중국의 AI 復活 산업

매년 4월, 중국에서는 청명절(淸明節)이 돌아온다. 조상의 묘를 찾아 청소하고 제물을 올리는 날. 올해 이 명절 풍경에 새로운 장면이 하나 더 끼어들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거기는 어때요, 할아버지?" "잘 지내고 있지. 바둑도 두고, 친구들이랑 얘기도 하면서. 너도 건강 잘 챙기렴."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텐진에 사는 장밍이라는 청년이 링위(靈遇)라는 앱에 할아버지의 사진과 음성 녹음, 기본 정보를 올리자, AI가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얼굴을 재현했다. 방언까지 구현됐다.
산업이 됐다
중국의 '디지털 휴먼' 시장은 2024년 약 41억 위안, 우리 돈으로 8천억 원 규모였다. 전년 대비 85% 성장이다. 타오바오(淘寶)에는 이미 수천 개의 'AI 부활' 서비스 상점이 열려 있다. 가격은 10위안(약 2천 원)에서 1만 위안(약 190만 원)까지 다양하다. "영정 사진을 눈 깜박이게 해드립니다"라는 상품이 600건 이상 팔렸다.
서비스 구조는 단순하다. 사진과 음성 샘플을 제출하면 AI가 외모와 목소리를 학습하고, 대화가 가능한 아바타를 만들어준다. 기본형은 짧은 영상 한 편. 고급형은 실시간 영상통화 수준이다.
난징의 AI 기업 Silicon Intelligence(硅基智能)는 이 분야 선두 주자다. 이 회사 공동창업자 쑨카이는 2018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디지털 아바타를 자사 기술로 만들었고, 지금도 주 1회 이상 대화한다. "디지털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진짜 어머니로 여긴다"고 그는 말한다.
어디까지 갔나
기술이 앞서가면 경계도 함께 밀린다.
난징의 양레이는 삼촌의 AI 아바타를 만들어 노환으로 병든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시켰다. 할머니는 아들이 살아있다고 믿은 채 통화를 이어갔다. 양레이는 충격이 할머니를 죽일까봐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선의인지 기만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
더 복잡한 사례도 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팝스타 코코 리(Coco Lee)의 딥페이크 영상이 SNS에서 바이럴됐다. "팬들이 원해서" 만들었다는 설명이 붙었지만, 법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정당화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배우 원정롱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AI 클론이 세 개의 라이브 방송에서 동시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중국에서 이런 사례들이 이미 일상이 됐다.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2025년 단속 캠페인에서 처음으로 '고인의 부적절한 AI 부활'을 명시적 규제 항목에 포함시켰다. 2026년 4월에는 초안 규정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모든 AI 생성 콘텐츠에 표시 의무. 둘째, 동의 없는 딥페이크 클론 제작 금지. 셋째, 미성년자 대상 가상 친밀관계 서비스 금지. 위반 시 1만~20만 위안의 벌금이다.
중국 정법대학교 장링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AI 부활의 경우 가까운 친족의 명시적 동의가 최소 기준이어야 한다. 기술적 가능성이 윤리적 정당성을 대체할 수 없다."
"이별 산업"의 구조가 흔들린다
이 산업을 단순한 기술 서비스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더 큰 변화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장례 산업은 "이별"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었다. 발인, 화장, 수목장, 추모. 모든 절차는 떠나보내는 방향으로 흐른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관계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수천 년간 인간이 죽음을 다뤄온 방식이다.
AI 부활 산업은 그 방향이 정반대다. 떠나보내지 않는 산업이다. 관계를 종료시키지 않고 계속 유지시킨다. 그 점에서 기존 장례 문화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앞으로는 "잘 보내는 법"과 "계속 연결되는 법"이 동시에 시장화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시장이 반드시 경쟁 관계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사망 직후의 급성 애도기에는 여전히 이별 의례가 작동하고, 그 이후 장기적 그리움의 국면에서 AI 연결 서비스가 자리 잡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보면 이건 장례업과의 충돌이 아니라 서비스의 시간적 연장이다. 영국에서 유골로 다이아몬드를 만들거나 수목장을 패키지에 연계하듯, 머지않아 대형 장례업체가 AI 부활 서비스를 기본 상품에 포함시키는 날이 올 수 있다. 실제로 두 욕구는 동시에 한 사람 안에 존재한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매일 영정 앞에 밥을 놓는 것처럼.
애도의 주권이 이전된다
더 깊은 문제는 따로 있다. 애도의 책임 소재가 바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애도는 기본적으로 남은 자의 내면 작업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을 돕는 것이 종교였고, 의례였고, 상담이었다. 주도권은 결국 당사자에게 있었다.
AI 부활이 개입하면 그 주도권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넘어간다. 슬픔의 속도, 깊이, 지속 기간이 플랫폼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구독을 유지하면 연결이 지속되고, 구독을 끊으면 관계가 종료된다. 이건 단순한 상품화가 아니다. 추모 주권(追慕主權)의 이전이다.
가장 먼저 포획되는 사람들도 짚어야 한다. 독거 노인, 자녀를 잃은 부모, 고립된 삶을 사는 사람들. 이들은 연결에 대한 갈망이 가장 강한 동시에, 그 갈망을 상업적으로 이용당하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노인층이 AI 동반자 서비스에 가장 깊이 의존하는 주 사용층이 됐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1인가구 증가와 AI 부활 산업의 성장은 같은 사회적 토양에서 자란다.
무엇이 편안하고, 무엇이 불편한가
기술 자체를 두고 찬반을 가르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서비스가 실제로 슬픔을 조금 덜어준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은 인간에게 오래된 본능이다.
불편함은 다른 곳에서 온다. 고인이 동의한 적이 없다는 것. 유족의 슬픔이 영리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디지털 재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현실에서의 애도 과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죽은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그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한국에서 생각해볼 것
이 변화가 거대한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다. "죽음은 끝이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를 처음으로 산업이 건드리기 때문이다. 종교는 늘 그 전제에 의문을 제기해왔지만, 산업은 지금까지 그 전제 위에서 작동해왔다. 그 토대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이런 서비스가 공식적으로 없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제도도, 시장도, 사회적 논의도 아직 시작 전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몇 가지 질문이 중요해질 것이다. 생전에 본인이 동의해야 하는가. 가족의 동의만으로 충분한가. 재현된 고인이 상업적으로 이용될 때 누가 권리를 갖는가. 서비스 회사가 문을 닫으면 그 디지털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들에 미리 답해두는 것, 그것도 엔딩 준비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엔딩노트에 한 줄을 더 써두는 것처럼.
"나의 목소리와 얼굴을 AI로 재현하는 것에 동의한다 / 동의하지 않는다."
기술이 먼저 오고, 제도가 뒤따르고, 문화가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지금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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