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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여행

슬픔을 파는 사람들

슬픔을 파는 사람들... 미국 그리프테크(GriefTech) 산업

 


2015년, 러시아계 스타트업 창업자 유게니아 쿠이다는 친한 친구를 잃었다. 그는 친구의 문자 메시지를 모두 모아 챗봇을 훈련시켰다. 친구의 말투로 대화하는 AI였다. 처음에는 혼자 쓰려고 만들었지만, 주변에 공유했더니 반응이 예상을 넘었다. 그것이 Replika의 시작이다.


미국 그리프테크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시작됐다. 창업자 자신의 상실. 그 경험을 제품으로 바꾸는 과정. 중국이 청명절이라는 집단적 문화 위에서 AI 부활 산업을 키운 것과 달리, 미국은 개인의 슬픔이 스타트업의 씨앗이 됐다.

서비스의 지형


지금 미국에서 운영되는 그리프테크 서비스는 방식에 따라 크게 나뉜다.


생전 인터뷰형. StoryFile은 살아있는 사람이 수백 개의 질문에 직접 영상으로 답하면, 사후에 가족이 질문을 던졌을 때 AI가 가장 적합한 답변 영상을 골라 재생한다. 배우 에드 애스너의 추모식에서 사용됐고, 홀로코스트 교육가 마리나 스미스는 2022년 자신의 생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참관'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본인이 직접 만드는 방식이라 윤리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HereAfter AI도 비슷하다. 생전에 앱의 질문에 음성으로 답하면, 사후에 가족이 그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다. "할머니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식의 마케팅이다.


사후 복원형. Eternos는 2024년 창업자 로버트 로카시오가 아버지를 잃은 뒤 만든 서비스다. 음성과 성격 데이터를 학습시켜 디지털 트윈을 구성한다. 독일인 말기 암 환자 마이클 보머가 사망 전 자신의 복제를 만들어 가족에게 남긴 사례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2025년 Uare.ai로 이름을 바꿨다.


텍스트·음성봇형. Project December는 고인에 관한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10달러에 텍스트 대화를 시뮬레이션한다. 음성 생성 전문 기업 ElevenLabs는 월 22달러에 오디오를 업로드하면 고인의 목소리로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준다.


You, Only Virtual(YOV)은 조금 더 직접적이다. 무료 버전은 텍스트만 가능하고, 유료 구독을 하면 음성통화가 열린다. 창업자는 "슬픔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파산한 회사, 남겨진 기억


여기서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불거진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되는가.


StoryFile은 2024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채무가 약 450만 달러였다. 회사는 현재 구조조정 중이며, 만약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가족이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도록 별도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맡긴 것은 단순한 파일이 아니다. 목소리, 얼굴, 기억의 조각들이다. 구독료를 내는 동안만 연결이 유지된다. 구독을 끊으면, 혹은 서비스가 종료되면, 그 관계는 두 번째 이별을 맞는다. 한 서비스가 종료됐을 때 접근권을 잃은 사용자가 남긴 말이 전해진다. "또 잃었다."

빅테크도 이미 들어와 있다


스타트업만의 영역이 아니다.


Meta는 2025년 12월,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를 떠나거나 사망한 뒤에도 계정이 자동으로 활동을 이어가도록 하는 AI 기술 특허를 취득했다. 특허 문서에서 CTO 앤드루 보스워스는 사용자의 죽음에 따른 계정 비활성화가 다른 사용자 경험에 "훨씬 심각하고 영구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썼다. 사이버심리학자 일레인 캐스킷은 이 논리를 이렇게 정리했다. "사용자의 죽음을 참여도(engagement) 문제로 보는 것이다."


Microsoft는 2021년 이미 사망한 사람을 시뮬레이션하는 챗봇 특허를 취득했다. Meta는 "현재 이 기술을 실제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특허는 이미 등록돼 있다.

법정에 선 고인


미국에서만 가능한 장면이 2025년 5월 애리조나주 피닉스 법정에서 펼쳐졌다.


2021년 도로 분노 사건으로 사망한 크리스토퍼 펠키(당시 37세)의 가족이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재현한 AI 영상을 제작해 피고 선고 공판에서 상영했다. 미국 법원 역사상 최초였다. 영상 속 펠키의 아바타는 살해자를 향해 말했다. "그날 그런 상황에서 마주친 게 안타깝다. 다른 인생이었다면 우리는 친구가 됐을 수도 있다." 영상을 본 판사는 "이 영상이 좋았다"고 말한 뒤 검사 구형량을 넘어선 최대 형인 10년 6개월을 선고했다. 피고 측은 즉각 항소했다.


이 사건이 전례가 될지, 이례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AI가 법정에서 고인의 목소리를 대신했다는 사실은 이미 일어났다. 앞으로 이 기술이 어디서 어떻게 쓰일지, 그 경계를 어디에 그을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심리학자들이 우려하는 것


미국 그리프테크의 특징 중 하나는 학계의 비판적 연구가 산업 성장과 나란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심리학자들은 '동결된 슬픔(frozen grief)'이라는 개념으로 위험을 설명한다. 정상적인 애도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AI를 통해 고인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이 흐름이 멈출 수 있다. 애도가 완결되지 않고 계속 유예되는 상태다.


현재 AI 시뮬레이션의 정확도는 약 70% 수준이다. 나머지 30%에서 AI는 고인이 쓰지 않던 표현을 쓰거나, 없는 기억을 만들거나, 진부한 말을 반복한다. 그 어긋남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기술을 의료기기로 분류하고, 심리·정신과 전문의 감독 하에서만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용 대상도 DSM-5에 새로 등재된 '지속성 복합 애도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 환자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동의라는 원칙


미국 그리프테크가 중국과 가장 다른 지점은 '동의(consent)'를 설계 원칙으로 삼기 시작한 서비스들이 나온다는 점이다. 생전에 본인이 직접 자신의 아바타를 구축하는 방식은, 유족이 사후에 복원하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른 윤리 구조를 갖는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다. 죽음 이후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지, 어떤 말을 남길지를 살아있는 동안 직접 설계한다는 발상이다. 유언장이 재산을 정리하듯, 디지털 아바타가 관계를 정리한다.


그 가능성은 흥미롭다. 하지만 그것이 유족의 애도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영향이 도움인지 방해인지는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규제는 따라가고 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법률이 아직 없다. 캘리포니아주가 2024년 사망한 연예인의 목소리나 외모를 유족 동의 없이 AI로 복원해 상업적으로 쓰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고, 2026년 1월부터는 AI 동반자 챗봇에 연령 인증과 AI 고지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 시행됐다. 그 외는 주(州)마다 다르다.


기술이 먼저 달리고, 법이 뒤쫓는 풍경이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이미 이 서비스를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산업을 지켜보면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슬픔은 극복해야 할 문제인가, 아니면 거쳐야 할 과정인가.


미국 그리프테크의 상당수는 슬픔을 '해결 가능한 문제'로 접근한다. 고인의 부재를 기술로 채운다. YOV가 "슬픔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제품 설명이다.


그 방향이 옳은지 그른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슬픔의 의미와 기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이 기술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