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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회귀

좀 더 보기 좋은 묘지

좀 더 보기 좋은 묘지

 

당신이 원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묘지다


자연장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왜 자연장을 골랐냐고 물으면 대개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나무가 좋아서. 콘크리트 납골당은 싫어서.


그 대답은 진심이다. 그런데 그 진심이 실제 선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지점이 나온다.


진짜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따로 있다. 화장한 유골재를 강에 뿌리거나 바다에 뿌리거나 산에 흩으면 된다. 법적으로 허용된다. 비용도 거의 없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너무 허전해서 일까. 갈 곳이 없어진다고 할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 불안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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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이미 답이 나온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사실 절반짜리 욕망이다. 나머지 절반에는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곳, 표식이 있는 곳, 누군가 관리해주는 곳에 대한 욕망이 있다. 그것은 자연의 속성이 아니라 묘지의 속성이다.


자연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묘지다. 좀 더 보기 좋은 묘지.


인간의 이 이중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죽은 자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싶으면서도 찾아갈 곳은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욕망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그 욕망을 다른 언어로 포장해서 파는 방식이다.


업계는 이것을 알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이것을 이용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과 묘지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두 욕망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을 소비자 스스로는 잘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자연장은 그 모순 사이에 끼어들어 두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켜주겠다고 나선 상품이다. 자연의 언어를 쓰면서 묘지의 기능을 판다. 그 언어와 기능의 간극에서 가격이 만들어진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일본 수목장의 원형을 만든 것은 이와테현 이치노세키시 쇼운지(祥雲寺)의 치사카 겐보 주지스님이다. 1999년 그가 시작한 수목장은 이념이 뚜렷했다. 이미 황폐해진 마을 산의 산림을 되살리고, 그 보전 비용을 묘지 운영으로 충당하겠다는 것. 묘석도 없고, 납골시설도 없고, 인공구조물도 없이 자연 생태계 안에 유골재를 직접 매장하는 방식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묘지인 줄 모르는 숲이 목표였다.


그런데 그 개념이 산업이 되는 순간 달라졌다. 표식이 생기고, 구역이 나뉘고, 계약서가 생겼다. 자연의 이미지는 남기고 묘지의 구조는 그대로 가져왔다. 친환경, 생태적,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무와 함께하는. 사진 속의 나무는 크고 울창하다. 실제로 계약한 나무가 그 나무인지는 별개 문제다.


한국 장사법은 자연장지를 묘지로 분류한다. 설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관리 의무가 있다. 법은 솔직하다. 자연장지는 묘지다. 그런데 시장은 다른 언어를 쓴다. 법적 정의와 마케팅 언어 사이의 거리만큼 소비자는 실제와 다른 것을 사게 된다.


자연장이 묘지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고 팔면 어떨까. 기존 묘지보다 아름답고, 관리가 잘 되고, 생태적으로 조성된 묘지입니다, 라고. 그렇게 말하면 가격도 다시 물어볼 수 있다. 자연이라는 말이 빠지면 수천만 원의 근거도 다시 따져볼 수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아름답다. 그런데 그 말이 상품 설명서가 되는 순간, 한 번쯤은 물어봐야 한다. 내가 사려는 것이 정말 자연인가, 자연처럼 보이는 묘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