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를 남기지 말고, 숲을 남기자 - 화장률 94% 시대, 이제는 '지속가능한 묘지'를 말할 때


"고인은 그대로, 묘의 형태만 자연으로"
우리나라 화장률은 이미 94%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전국의 산야에는 여전히 봉분이 남아있고,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연분묘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2031년 1월이면 전국 수십만 기 묘지의 사용기한이 처음으로 대규모 만료된다.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은 빠르게 화장 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수백만 기의 묘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진전되지 못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엔딩연구소는 '묘숲운동(가칭)'이라는 이름의 시민운동을 제안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묘를 남기지 말고, 숲을 남기자"는 것이다.
"조상을 옮기자는 운동이 아니다"
묘숲운동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면, 기존 묘지를 정리하거나 없애자는 운동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엔딩연구소의 제안은 묘를 없애자는 운동도, 조상을 옮기자는 운동도 아니다. 대신 "기억은 남기고, 풍경을 바꾸자는 운동"이다.
일본에서 이미 진행 중인 '하카지마이(墓じまい)'와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하카지마이는 묘를 개장한 뒤 유골을 합장묘나 수목장으로 옮기고, 기존 묘지는 반환하는 절차를 밟는다. 사실상 묘를 '정리'하는 문화다.
반면 묘숲운동이 제안하는 절차는 다르다. 기존 묘의 봉분과 비석을 자연화하여 그 자리를 숲으로 되돌리되, 유골(유해) 자체는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손기간 60년, 이원적 절차로 진행
묘숲운동은 현행 법 규정과 연결된 구체적 기준으로 분묘의 존손(存孫)기간, 즉 설치기간 60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현행 장사법상 분묘의 설치기간은 최장 60년(30년 단위로 1회 연장 가능)으로 규정돼 있다. 엔딩연구소는 이 기존 규정의 만료 시점을, 묘지를 자연으로 되돌리는 전환점으로 삼고자 한다.
구체적인 절차는 두 갈래로 나뉜다. 설치기간 60년이 이미 지난 묘지는 봉분과 비석을 제거하고 수목장·자연장으로 전환해 숲으로 되돌린다. 이때도 유골(유해)은 손대지 않고, 지상의 형태만 자연으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반면 설치기간 60년이 이제 막 도래한 묘지는 이른바 'Lift & Deepen(들어올려 깊이 묻기)' 방식을 거친다. 기존 유골(유해)을 더 깊은 곳으로 재안장한 뒤, 그 위 공간을 매장묘·수목장·자연장 형태로 다시 순환시키는 것이다.
60년이라는 기준은 한 세대가 조부모까지 기억하고 성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간의 한계이자, 주 관리자가 사라지는 시점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이 기준을 넘어선 묘지는 '개인의 기억 공간'에서 '공동체의 생태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5대 원칙과 분묘기지권과의 관계
엔딩연구소가 제시하는 5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묘를 조성하지 않고 기존 묘지를 활용할 것, 60년 기준의 적층식 재사용(Lift & Deepen)과 공동 이용 체계로 기존 묘를 순환시킬 것, 봉분 중심의 묘지를 숲과 공원으로 전환할 것, 비석 대신 공동추모·디지털 기록·추모정원 등으로 기억을 이어갈 것, 그리고 후손에게 관리 부담을 유산으로 남기지 않을 것이다.
묘숲운동은 분묘기지권을 없애자는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활용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고인은 그대로 두고 봉분과 비석만 자연화해 묘역을 숲으로 전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존 권리관계를 훼손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은 현행법에 이미 존재하는 제도가 아니라 새로운 입법·정책 방향의 제안이 필요하다.
"파묘도, 철거도, 규제도 아닌 숲을 말한다"
이 운동은 갈등을 일으키기 쉬운 단어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파묘를 말하지 않는다. 철거를 말하지 않는다. 규제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숲을 말한다. 기억을 말한다. 미래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상을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조상을 더 오래 기억하려 한다. 우리는 새로운 묘를 만들기보다 기존 묘지를 되살리고자 한다. 우리는 죽은 이를 옮기기보다, 그 자리에서 자연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우리는 후손에게 관리의 부담이 아니라 숲이라는 유산을 남기고자 한다.
묘를 남기지 말고, 숲을 남기자.
고인은 그대로, 묘는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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