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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회귀

파묘 후 더 깊게... 2천만 기 분묘를 다시 쓰자

 

파묘 후 더 깊게... 2천만 기 분묘를 다시 쓰자

 

인류 역사를 통틀어 약 1,080억 명이 죽었다. 지금 81억 명이 대기 중이다. 시신은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한다. 매장은 네안데르탈인 때부터 이어온 인류의 보편적 방법이지만, 땅이 부족하다. 화장은 대안이지만 에너지 집약적 과정에서 수은을 비롯한 독성 물질을 대기와 하천에 방출하고, 질소산화물과 다이옥신을 생성한다. 친환경 대안들은 정서적 거부감과 종교적 신념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있는 묘지를 다시 쓰는 건 어떤가.

 

2031년, 파묘전쟁이 온다

 

장사법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항이 있다. 시한부 매장 제도다. 국내에서 매장은 30년까지만 허용되고, 1회 연장해도 최장 60년이 한계다. 기한이 끝나면 파내어 화장한 뒤 봉안하는 것이 법이 정한 수순이다.

 

2015년 12월에 사용 기한이 30년으로 연장되면서 첫 만료 기한은 2031년 1월로 확정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시적 매장 제도의 적용 대상 묘는 전국에 64만 5천여 기다. 이는 합법적으로 신고된 수치고, 신고되지 않은 묘나 무연분묘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여기에 전국에 산재한 분묘 전체는 약 2천만 기로 추산된다. 2031년부터 그 자리들이 법 앞에 강제로 열린다. 파묘전쟁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이 조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한부 매장 제도는 화장률이 30%대였을 때 매장 묘지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2001년 당시 화장률은 38.5%였다. 당시에는 일정 부분 타당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93%를 넘었다. 이미 자연스럽게 화장이 주류가 된 사회에서, 남은 매장묘를 법으로 강제 정리하겠다는 제도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어야 하는지 다시 질문할 시점이다.

 

효율, 누구를 위한 효율인가

 

국토 효율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 번쯤 물어야 한다. 30년, 60년의 시한을 걸어두고 묘지를 비워내는 논리의 끝에는 언제나 개발이 있다. 산 중턱의 공원묘지, 도시 외곽의 선산 부지, 한때 조상의 자리였던 그 땅은 비워지는 순간 개발 가능 토지가 된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물류센터가 생기고, 도로가 뚫린다. 망자의 자리를 강제로 정리하는 법이 결과적으로 부동산 개발업자와 건설 자본에 가장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사법의 시한부 매장 조항은 문화 정책이 아니라 개발 논리의 산물이다. 죽은 사람은 항의하지 않기 때문에 이 법은 유지된다.

 

개장 후 화장이라는 현행 법 조항은 실효성도 없다. 묘지 실태조사에만 2,221억 원이 소요되고, 개장 후 화장·봉안 비용은 수조 원이 예상된다. 시간도 돈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2031년까지 또 돌려막을 것이고, 그 사이 담당자들은 퇴임하거나 고인이 되어 있을 터다.

 

굳이 파야 하는가. 이미 묻혀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안 되는가.

 

적층 매장의 역사

 

동일 장소의 묘지를 재사용하는 것은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문화권에서 이어온 방식이다. 유럽의 적층식 매장법은 기원전부터 내려온 관습이다. 한 장소에 여러 명의 유골을 수직으로 밀집시켜 보관하던 집단 매장에서 유래해, 현대의 까보(Caveau)와 앙프(Enfeux) 같은 적층식 매장 방식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현대적으로 정착된 형태가 Lift & Deepen이다. 기존 무덤을 더 깊게 파서 원래 유골을 아래에 다시 모시고, 그 위 공간에 새로운 매장을 허용하는 수직 적층 방식이다. 죽은 이를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같은 땅에서 세대를 이어 사용하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시티 오브 런던 묘지, 뉴 사우스게이트, 하이게이트 묘지 등이 75년 이상 된 무덤을 대상으로 이미 시행 중이다. 시티 오브 런던 묘지의 법적 근거는 2007년 시티 오브 런던 특별법(City of London (Various Powers) Act 2007)이다. 절차는 명확하다. 6개월 이상 공고해 유족이 반대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 유해는 해당 묘지 구역 밖으로 반출하지 않으며, 모든 과정에 종교적·윤리적 예우를 갖춘다. 호주 일부 주에서는 19세기부터 묘지 재사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토가 좁다는 이유로 파묘를 강제하는 나라가, 같은 땅을 겹쳐 쓰는 방식은 왜 외면하는가.

 

한국에서 무엇이 막고 있나

 

막고 있는 법은 장사법 하나다.

 

세 가지가 문제다. 첫째, 현행 장사법은 유골을 옮기는 행위 전체를 개장으로 본다. 같은 묘혈 안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도 예외가 없다. 둘째, 합장 개념이 혈연을 전제한다. 혈연 관계 없는 두 사람을 수직으로 겹쳐 안치하는 방식은 현행 규정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셋째, 기존 유골을 깊은 곳에 다시 안치하면 그 분묘의 설치기간을 언제부터 다시 세는지 규정이 없다.

 

적층 매장이라는 방식 자체가 장사법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본질이다. 조항을 유권해석으로 피해갈 수준이 아니라, 이 방식을 법에 새로 써 넣어야 한다. 장사법 제40조도 손봐야 한다. 설치기간이 끝난 분묘에 화장 또는 봉안하지 않은 자를 처벌하는 이 조항은 형법 159조~161조와 충돌할 수 있다.

 

두 가지 길, 하나의 그림

 

 

방향은 두 가지다. 그리고 이 둘은 결합할 수 있다.

 

첫째, 수목장 전환이다. 30년이 지난 유해는 이미 상당 부분 자연으로 돌아가 있다. 굳이 파낼 이유가 없다. 그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된다. 납골당으로 옮기는 것보다 자연스럽고, 비용도 적게 들고, 남겨진 가족에게도 덜 폭력적이다. 파묘는 산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식이다. 나무를 심는 것은 그렇지 않다. 기존 묘지를 수목장(자연장)으로 전환하는 특례 조항 하나면 충분하다.

 

둘째, Lift & Deepen이다. 공설묘지 대상 시범사업 조항을 장사법에 신설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설치기간이 끝났거나 연고자가 동의한 분묘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특례 조항이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장사법 안에 방식 하나를 추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입법 속도도 빠를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국가 차원의 장기 구상이 가능해진다. 무연분묘와 무관묘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Lift & Deepen 방식으로 같은 자리 깊은 곳에 다시 안치하고, 지상은 수목장과 자연장으로 전환한다. 봉분은 숲이 되고, 묘지는 공원이 된다. 새로운 묘지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을 필요도 줄어든다. 죽은 사람은 원래의 땅을 떠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녹지를 누린다.

 

산재된 무연묘지는 토지 소유자가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파묘 후 더 깊게 묻어 자연으로 돌려놓으려 할 것이고, 공원묘지는 운영자가 새로운 수입을 위해 스스로 Lift & Deepen을 택하려 할 것이다. 강제할 필요도, 수조 원의 예산도 필요 없다. 길만 열어주면 된다.

 

죽음을 개발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국토를 회복하는 기회로 바꾸자는 발상이다.

 

필요한 것은 의지와 철학이다

 

자연장 전환, Lift & Deepen. 두 방향 모두 현행 법과 기술 안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발상이다. 죽음을 행정 처리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리고 개발 논리 앞에 망자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최소한의 용기다.

 

25년 전의 정책을 그대로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달라진 현실에 맞게 제도를 다시 설계할 것인가. 2천만 기 분묘를 다시 쓰는 일은 장사법 조문 하나에서 시작된다.

 

2031년은 생각보다 빠르게 온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이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