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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뉴스

권하지 않으면 고를 수 없다

오동나무 집성목 관

 
한국에서 종이관 선호도를 물으면 답이 없다. 인지도가 없기 때문이다. 선호는 인지 다음에 온다. 알아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국내에서 친환경 장례에 관한 설문은 간간이 있었지만, 종이관을 특정해 선호도를 물은 공식 조사는 단 한 건도 확인되지 않는다.
 
종이관은 2001년에도 있었다. 화장률이 38.5%이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24년이 흘렀다. 화장률은 95%가 됐다. 연간 사망자는 36만 명을 넘었다. 종이관은 여전히 생소하다. 24년이라는 시간이 증명하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종이관이 정착하지 못한 것은 제품의 결함 때문이 아니었다. 구조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요가 없는 게 아니라 기회가 없는 것이다
 
장례식장 현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유족은 관의 종류도 모르고 경황이 없어 권하는 대로 따른다. 장례식장에서도 돈이 되질 않으니 유족에게 권하지 않는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왜 종이관이 24년 동안 제자리인지 설명된다. 장례식장은 관을 판매할 때 마진을 남긴다. 나무관이 종이관보다 단가가 높다. 장례식장 입장에서 종이관을 적극적으로 소개할 유인이 없다. 대학병원이나 시립병원 장례식장 입찰 항목을 보면 화장용 관은 오동나무 집성목 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공 시설조차 그렇다.
 
유족은 장례라는 비일상적 상황 속에서 의사결정을 한다. 이틀 안에 수십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관의 소재까지 검토할 여유가 없다. 장례지도사가 안내하는 대로 따른다. 안내를 받지 못하면 선택지 자체를 모른다. 모르는 것을 고를 수는 없다.
 
공급이 수요를 만드는 구조에서, 공급 측이 움직이지 않으면 수요는 영원히 잠들어 있다.
 

종이관.- 표면에 가족사진을 프린팅했다.

 
오해가 쌓인 24년
 
종이관에 대한 근거 없는 속설도 보급을 막는다. "재가 많이 나온다", "공업용 본드로 접착한다", "폐지로 만든다"는 인식이 업계 안팎에 퍼져 있다. 모두 사실이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종이관은 천연 펄프 소재에 천연 접착제를 사용한다. 연소 후 잔재 문제는 연소 조건에 따른 것이지 소재의 결함이 아니다.
 
2022년에는 중국의 수출 규제로 오동나무 관 수급에 공백이 생기면서 종이관 사용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적이 있다. 업계에서는 이 시기 종이관이 급격히 늘면서 현장 운용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됐다는 증언이 있다. 갑작스러운 전환을 소화할 준비가 없었던 화장시설 측의 대응 미숙이 뒤섞인 결과였지만, 그 경험이 종이관에 대한 현장 불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준비 없이 닥친 변화가 오히려 구조적 저항의 빌미가 됐다.
 
정부는 권장하지만 강제하지 않는다
 
2023년 9월 서울시설공단은 친환경 장례 화장용품 권장기준을 공시했다. 관 재질은 화장 시 쉽게 연소될 수 있고 유해물질 발생이 최소화되는 친환경 소재여야 하며, 도장재료는 천연도료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크기와 두께 기준도 명시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권장이다. 의무가 아니다. 장사법 제9조는 화장 시 환경오염 발생물질을 넣어서는 안 된다고 강행법규로 규정하지만, 집성목 관에서 발생하는 포름알데히드와 니스 연소가스가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인지 어떤 기관도 판단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유족 선택권을 이유로 특정 관종 권장에 소극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친환경 장례문화 ESG 지원 사업단은 2026년까지 전국 화장장 30% 이상에서 종이관 사용을 권장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민간 단체의 운동 목표지 정부 정책이 아니다. 현재 전국 화장시설 중 친환경 화장용품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곳은 사실상 없다.
 

씨그레스 관

 
바다 건너에서는 소비자가 먼저 움직였다
 
영국에서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환경 기준이 높은 장례업체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84%는 플라스틱 손잡이 대신 목재나 로프 소재의 친환경 손잡이가 달린 관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미국 전국장례지도사협회 보고서에서는 응답자의 60.5%가 친환경 장례 옵션에 관심을 표명했다. 영국 50세 이상 1000명 조사에서는 49%가 자신 또는 가족 장례에서 환경적 영향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다. 해외에서는 소비자가 묻는다. 장례업체가 답을 준비한다. 시장이 움직인다. 판지 관, 대나무 관, 위커 관, 황마 관까지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2024년 영국 국제장례전시회에서는 대나무 프레임에 황마 천을 씌운 친환경 관이 2분 이내 조립 가능한 형태로 출시됐다. 글로벌 친환경 관 시장은 2024년 26억 달러에서 2034년 4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이 흐름에서 빠져 있다. 소비자가 묻지 않는다. 장례업체가 안내하지 않는다. 정부가 강제하지 않는다. 세 주체 모두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시장은 변하지 않는다.
 

버드나무 줄기 관

 
비대칭의 본질
 
해외의 친환경 관 확산은 소비자 수요가 공급을 끌어당기는 구조다. 먼저 알게 되고, 알면 원하게 되고, 원하면 요구하게 된다. 업체는 그 요구에 응한다.
 
한국은 반대다. 공급이 수요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구조인데 공급 측이 움직이지 않는다. 장례식장은 마진 구조상 나무관을 권한다. 정부는 선택권을 이유로 개입하지 않는다. 유족은 경황 없는 72시간 안에 모르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
 
알아야 원할 수 있고, 원해야 고를 수 있다. 그 첫 번째 고리가 끊겨 있다. 친환경 관을 모르는 것이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호는 인지 다음에 온다. 한국에서 친환경 관은 아직 인지 이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