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이틀 앞두고 아버지를 뵈러 봉안당을 찾았다. 명절 당일과 그 전날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람이 몰릴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평일인데도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평소 20분이면 닿던 길이 오늘은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렇게 힘겹게 도착해 아버지가 계신 안치단을 찾았다. 마침 그 앞에 놓인 의자에는 먼저 온 추모객이 앉아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한 시간이 넘도록 울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앞에 접근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겨우 리스꽃 하나를 걸어드리고, 몇 걸음 물러선 채로 인사를 올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근처 다른 칸을 찾은 추모객들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거나, 아예 복도로 나가 그곳에서 절을 올렸다.
그 사람은 누가 옆에 와도, 인기척이 나도 미동조차 없었다. 오직 고인과의 대화에만 몰두해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그 사람의 등을 계속 생각했다. 정확히는 안치단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앉아 있던 모습. 그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자세가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 그에게 필요했던 유일한 방향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방향이, 하필 오늘 이 장소에서는 다른 사람의 걸음을 막는 방향이 되어 있었다.
슬픔에는 정해진 크기가 없다. 누군가는 삼우제를 지내고 나면 조금씩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고, 누군가는 몇 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서로 다른 크기의 슬픔을, 똑같은 통로 폭과 똑같은 관람 시간에 억지로 욱여넣는다. 봉안당은 정갈하고 조용하지만, 그 정갈함은 누군가의 속도를 배려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정해진 동선을 따라 왔다가, 정해진 예의를 갖추고,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고 돌아가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유일한 문법이다.
그러니 그 추모객이 한 시간을 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건, 실은 규칙을 어긴 게 아니었다. 다만 그 규칙 자체가 애초에 그의 슬픔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을 뿐이다. 정말로 그가 원했던 건 어쩌면 아주 단순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자기 등 뒤를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재지 않고 실컷 울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는 봉안당보다 오히려 거실 한구석이, 식탁이 보이는 창가가 더 잘 마련해줄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선택지를 거의 떠올리지 못한다. 유골을 집에 둔다는 생각에는 설명하기 힘든 거리낌이 먼저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 거리낌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죽은 자와 산 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아주 오래된 감각과 만나게 된다. 씻김굿이 안방에서 시작해 기어이 마당 밖으로 망자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그 감각의 다른 표현이다.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감각은 아니다. 다만 그 감각이 지금,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사람에게서 유일하게 편안한 자리 하나를 조용히 거두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를 뵙고 오는 길, 나는 리스꽃 하나를 걸어드리는 것으로 그날의 인사를 마쳤다. 옆 칸의 그 사람처럼 오래 머물지 못했다. 누가 나를 밀어낸 것도 아닌데, 그저 그곳이 그렇게 오래 머물도록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았던 것 같다. 슬픔이 옅어질 때까지만이라도 곁에 모셔두었다가,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때 천천히 보내드리는 일. 그것이 정말 그렇게 이상한 바람일까. 나는 아직 답을 모른다. 다만 그 등을 본 뒤로, 아버지의 사진을 조금 더 자주 꺼내 보게 되었다는 것만은 안다.
| 무덤에게 남은 시간③ 반복을 끊는 법, 적층식 매장 (0) | 2026.09.21 |
|---|---|
| 무덤에게 남은 시간② 노이즈마케팅이 된 법 (0) | 2026.09.21 |
| 무덤에게 남은 시간① 2주 앞두고 뒤집힌 약속 (0) | 2026.09.21 |
| 병원은 왜 장례식장을 내려놓지 못하는가 (0) | 2026.09.16 |
| 사망진단서에서 시신까지 - 병원이 죽음 이후를 쥐면 벌어지는 일 (0) | 2026.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