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차례상' 앞에 선 중년 남성들
연휴는 길어졌지만 명절은 짧아졌다. 올해 추석에도 누군가는 혼자 상을 차린다.
추석 전날인 24일 저녁, 수도권의 한 대형마트 신선식품 코너. 김모(53) 씨는 포장 과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사과 여섯 알, 배 세 알. 어느 것을 집어도 '4인 가족용'이었다.
"혼자 먹을 건데 이 많은 걸 어떻게 사요. 근데 차례상에 과일이 없을 순 없잖아요."
그는 낱개로 파는 사과 두 알과 배 한 알, 밤 한 봉지, 송편 한 팩을 담았다. 전은 냉동 코너에서 가장 작은 포장을 골랐다. 계산대에서 찍힌 금액은 3만 원 남짓이었다. 장바구니는 가벼웠다.

숫자로 본 '혼자 맞는 명절'
올해 추석 당일은 25일 금요일이다. 연휴는 9월 24일부터 26일까지이며, 27일 일요일까지 포함하면 주 5일 근무자는 나흘을 쉴 수 있다. 명절 풍경은 예전과 다르다. 가족이 모이는 것이 기본값이던 시대에서 혼자 보내는 사람이 흔한 시대로 바뀌었다.
2025년 11월 1일 기준 1인 가구는 82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36.6%를 차지했고, 전년보다 2.5% 늘었다. 1인 가구는 역대 최고 비중으로 가장 큰 가구 유형이 됐다. 그중 중년의 위치는 눈에 띈다. 2024년 기준 일하는 1인 가구 510만 가구 가운데 50~64세가 26.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명절 연휴가 아니면 이들은 일터에서 하루를 보내고 원룸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다.
다만 혼자 산다는 것이 곧 외롭다는 뜻은 아니다. 1인 가구의 절반가량(51.1%)은 전반적인 인간관계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 그리고 평소에는 만족하다가도 명절 같은 특정 시기에만 공백이 커지는 사람들이다. 19세 이상 국민 3명 중 1명이 도움받을 곳 없는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가장 조용히 무너지는 이들
이 공백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통계가 고립사다. 2024년 고립사 사망자는 3,924명으로 전년(3,661명)보다 7.2% 늘었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도 2023년 7.2명에서 2024년 7.7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성별과 연령의 쏠림도 뚜렷하다. 남성이 81.7%로 여성(15.4%)의 5배를 넘고, 60대 남성(1,089명, 27.8%)과 50대 남성(1,028명, 26.2%)이 가장 많았다.
발견 경로도 달라지고 있다. 가족이나 지인에 의한 발견 비중은 최근 5년간 줄었고, 임대인이나 보건복지서비스 종사자에 의한 발견 비중은 늘었다. 쓰러진 사람을 가장 먼저 찾아내는 이가 가족이 아니라 집주인이나 복지 담당자가 되어 간다는 뜻이다.

함께 절할 사람 없는 명절
박모(49) 씨는 미혼 장남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제사는 자연스레 그에게 넘어왔다. 동생 부부는 처가 일정을 이유로 몇 해째 오지 않는다.
"서운하다고 하면 좀스러워 보일까 봐 말을 안 했죠. 그러다 보니 저도 안 부르게 되더라고요."
그는 올해 차례를 어머니 사진 앞에서 잔 하나로 대신하기로 했다. 지방은 쓰지 않는다. 대신 동생에게 '영상통화 5분'을 제안하는 문자를 세 번 썼다 지웠다.
이모(57) 씨의 사정은 다르다. 두 해 전 실직한 뒤 가족과 연락이 뜸해졌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아내와는 '따로 사는 중'이라는 말로 상황을 정리한다. 그에게 명절은 일정이 아니라 공백이다. 연휴 동안 그가 하기로 한 일은 세탁기를 한 번 돌리는 것과 봉안당에 다녀오는 것이다.
김 씨는 이혼 후 두 해쯤 본가를 다녔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갈 곳이 사라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결혼했을 땐 '아들, 남편'이란 이름으로 명절에 자리가 있었어요. 그 자리가 다 빠지고 나니 상 앞에 서 있는 나만 남더라고요."
왜 하필 중년 남성인가
통계는 누가 취약한지는 보여주지만, 왜 그런지는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이런 해석은 가능하다. 지금의 50~60대 남성 다수는 관계를 직장 중심으로 쌓았고, 친척과 이웃, 친구와의 연락은 배우자나 어머니에게 맡겨온 세대다. 그 매개가 사라지면 관계망도 함께 줄어든다. 이혼, 별거, 사별, 실직이 겹치면 '아들, 남편, 아버지, 직장인'이라는 역할이 한꺼번에 빠진다.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화 한 통이 가장 어렵다.
여기에 차례라는 의례의 성격이 겹친다. 차례는 원래 여럿이 모여 지내는 의식이다. 혼자 지내면 '제대로 못 지낸다'는 부담이 남고, 지내지 않으면 마지막 끈을 놓는 것 같은 죄책감이 남는다. 그래서 혼자 사는 남성들은 명절 전에 오히려 말수가 줄어든다.
상 위에 올라온 작은 변화들
그런데 혼자 차리는 상은 형식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일 두 알에 술 한 잔, 사진 한 장으로 차례를 대신하고, 그 시간을 부모님과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 쓴다. 가족과 영상통화를 붙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웃이나 옛 동료와 차례 후 식사를 약속한다. 차례의 무게 중심이 '얼마나 갖춰 지냈나'에서 '누구와 이어지나'로 옮겨 가는 것이다.
제도의 시선도 바뀌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5월 13일 협의회에서 사후 대응 중심의 정책을 '사회적 고립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향안을 논의했다. 복지부 제1차관을 사회적 고립 전담차관으로 지정해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맡기고, 현행 법을 전면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지난 10일 '고독사'를 '고립사'로 바꾸고 정책 범위를 사회적 연결 강화까지 넓히는 전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고독이라는 개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면 죽음의 사회구조적 원인이 가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책이 닿는 곳은 아직 '위험군 명단'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까지다. 명절 연휴에 조용히 앓는 다수는 명단 밖에 있다. 이들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사람의 안부다.

연휴 뒤의 월요일
올해는 대체공휴일이 없다. 28일 월요일은 평일 출근일이다. 27일 일요일 밤이 지나면 세상은 다시 바쁘게 돌아간다. 명절의 공백이 가장 깊은 사람들은 오히려 연휴가 끝난 뒤에 더 오래 혼자가 된다.
25일 아침, 김 씨는 사진 앞에 사과 두 알과 배 한 알, 송편 한 접시를 올릴 예정이다. 술은 소주 반 잔이다. 절은 두 번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형에게 전화를 걸어 볼 생각이다. 받지 않으면 문자라도 남길 계획이다.
"안 받아도 돼요. 걸었다는 게 중요하죠."
상 앞에 선 사람은 혼자였다. 그러나 그가 절을 올리는 순간만은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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