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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의 결혼식 ① 세계편

고독한 엔딩

by 다비코 2026. 9. 29.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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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혼, 처녀귀신 시집보내기부터 프랑스 사후혼인·누어족 고스트 매리지·프레타 칼리야남까지

 

 

길가에 떨어진 빨간 봉투 하나. 무심코 주웠다가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도 있다. 옛 대만 농촌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봉투 안에는 지폐와 저승돈, 그리고 낯선 여성의 생년월일시가 적힌 종이가 들어 있다. 그 봉투를 주운 남성은 오래전에 죽은 여인의 '남편'이 되어야 했다. 죽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이 낯선 풍습은, 알고 보면 중국과 한국을 넘어 아프리카 초원과 프랑스 법전, 일본의 산사에까지 뻗어 있는 인류의 오랜 습관이다.

 

시신 한 구에 3천만 원, 중국의 그림자 결혼시장

중국에서는 이를 명혼(冥婚)이라 부른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야 죽은 이의 영혼도 편안해진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미혼으로 죽은 사람은 저승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산 사람에게 해코지를 한다고 여겨졌고, 그 두려움이 3천 년을 이어온 풍습을 만들었다. 3세기 문헌 《삼국지》에는 조조가 열세 살에 요절한 아들 조충을 위해 죽은 딸을 가진 집안을 수소문해 합장시켰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문제는 화북 농촌에서 이 믿음이 실제 '시신 시장'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산시성·산둥성 일대에서는 1990년대 초 5천 위안이던 명혼 비용이 2016년에는 15만 위안 아래로는 뼈 한 조각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고, 한 시신은 최고 20만~30만 위안, 한화로 5천만 원 넘게 거래됐다. 이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도굴, 시신 절도, 심지어 지적장애 여성을 속여 살해한 뒤 팔아넘긴 사건까지 판결문으로 확인된다. 2016년에는 정신질환을 앓던 여성 둘을 살해해 명혼 시장에 판 남성이 붙잡혔고, 2021년에는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한 여성 인플루언서의 유골이 장례식장 직원들에 의해 도난되어 팔려나갈 뻔한 사건이 알려지며 병원·장례식장에 뿌리내린 밀매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다.

한편 대만과 화남 지역은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산 남성과 죽은 여성이 짝을 이루는 '취신주(娶神主)'가 중심이다. 미혼으로 죽은 여성은 친정 조상 위패에 함께 모셔지지 못하는 서러운 존재였고, 그 서러움을 풀어줄 남편감을 찾아 홍바오를 길에 흘렸다. 봉투를 주운 남성은 조상 앞에서 점괘를 던져 허락을 구하고, 새벽 서너 시나 해질녘 같은 이례적인 시간에 혼례를 치렀다. 이미 아내가 있어도 죽은 여인을 본처로 예우해야 했고, 산 아내는 그녀를 '언니'라 불러야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그리고 스무 살 발레리나의 선택

한국의 명혼은 결이 조금 다르다. 무속에서는 이를 사혼굿이라 부르는데, 목적은 결혼 그 자체가 아니라 제자리를 찾지 못한 원혼을 정식 조상신으로 승격시키는 데 있다. 실제 시신 대신 인형이 신랑·신부의 몸을 대신하고, 굿을 통해 한을 풀어낸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역사의 한 장면과 겹쳐 있다. 1982년 2월 20일, 광주 망월동 묘역.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전남도청에서 마지막을 맞은 윤상원과, 1년 반 앞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열렸다. 이 결혼식을 기리려 그해 봄 노래굿 '넋풀이'(빛의 결혼식)가 만들어졌고, 그 마지막 곡이 오늘날까지 불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산 사람이 실제로 죽은 사람과 결혼한, 더 드물고 극적인 사례도 있다. 1984년 1월,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의 아들 문흥진이 뉴욕에서 교통사고로 열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스무 살 프리마 발레리나 박훈숙. 문선명은 처음엔 파혼시키려 했지만, 박훈숙은 영혼의 세계를 믿는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사망 한 달여 만인 그해 2월 20일, 영혼결혼식이 거행됐다. 그녀는 성을 문씨로 바꿔 문훈숙이 되었고, 이후 평생 재혼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그의 아내라 소개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적 인물로 활동 중인, 실존하는 이야기다.

지구 반대편의 결혼식들

명혼이 동아시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 곳곳을 뒤져보면, 죽음 앞에서 인간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붙잡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지 드러난다.

남수단의 딩카족과 누어족에게 '고스트 매리지'는 전혀 다른 의미다. 후사 없이 죽은 남성을 대신해 그 형제가 대리 신랑이 되어 결혼식을 치르고, 태어난 자녀는 법적으로 죽은 형의 자녀가 된다. 누어족 사회에서는 이 결혼이 산 사람과의 결혼만큼이나 흔했다. 누어족에게는 여성이 '남편'이 되는 결혼도 있었다. 소를 가진 여성이 신부값을 치르고 다른 여성을 아내로 맞으면, 친족이나 이웃 남성이 아이를 갖게 해주고 그 아이들은 이 여성 '남편'의 자녀로 인정됐다. 

 

프랑스는 이 모든 나라 중 유일하게 사후혼인을 국가 법률로 인정한다. 1959년 프레쥐스의 말파세 댐이 무너져 약혼자를 잃은 한 여성의 사연을 계기로 만들어진 법이다. 지금도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면 결혼이 성립되는데, 신청자 넷 중 하나는 거절당한다. 목적은 낭만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다, 혼외자로 남을 뻔한 아이에게 적법한 신분을 만들어주는 것.

일본 도호쿠 지방, 야마가타현의 작은 절에는 결혼식 대신 그림이 걸려 있다. 미혼으로 죽은 자녀를 위해 화가에게 부탁해 고인과 가상의 신랑·신부를 나란히 그린 봉납 그림, '무카사리 에마'다. 흥미로운 지점은, 대부분의 명혼이 실재하는 특정 인물을 짝지어주는 것과 달리 이 그림 속 배우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인물이라는 것. 결혼을 완성시키는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형식'만으로 마음을 달래는 방식이다.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와 케랄라 카사라고드 지역에는 '프레타 칼리야남', 즉 '죽은 자의 결혼'이라는 의례가 남아 있다. 18세가 되기 전에 숨진 아이들의 인형을 신랑·신부로 삼아 혼례를 올려주는 풍습이다. 결혼하지 못한 영혼이 떠돌고, 그것이 남은 가족의 액운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2024년에는 30년 전 죽은 딸의 신랑감을 구한다는 신문 광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른 얼굴, 같은 마음

시신을 사고파는 중국의 암시장, 조상신을 완성시키는 한국의 굿, 혈통을 지키는 아프리카의 대리혼, 서류 한 장으로 완결되는 프랑스의 법, 상상의 신부를 그려 넣는 일본의 그림. 형태는 이렇게나 다르지만, 그 밑바닥에는 공통된 하나의 마음이 흐른다. 남겨진 사람은 죽음이 모든 걸 끝내버렸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결혼식이라는, 인간이 가진 가장 오래된 완결의 의식을 빌려서라도, 떠난 이의 이야기에 마침표 대신 다음 줄을 이어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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