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그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무덤과의 약속을 깼다

2015년 12월 29일. 국회는 조용히 법 하나를 고쳤다.
특별히 시끄러운 뉴스는 아니었다. 여야 합의로, 본회의 안건 중 하나로, 별다른 저항 없이 통과됐다. 그런데 이 개정안이 손댄 대상은 다른 것도 아닌, 전국 수십만 기의 무덤이었다. 그리고 이 법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딱 2주 뒤인 2016년 1월 13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무덤을 강제로 파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될 참이었다.
이건 오래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다시 마주할 이야기의 원본이다.
15년, 그리고 약속
시계를 2001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1월 13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한국에 처음으로 '한시적 매장제도'가 도입됐다. 골자는 간단했다. 이날 이후 새로 조성되는 무덤은 15년만 그 자리를 쓸 수 있다. 연고자가 원하면 15년씩, 최대 세 번까지 더 연장할 수 있다. 다 합치면 최장 60년. 그 뒤로는 개장해서 화장하거나 봉안해야 한다.
이 제도는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당시 한국의 화장률은 38.5%. 매장이 여전히 다수였고, 산과 들에 흩어진 봉분이 국토를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무덤을 영원히 점유되는 땅이 아니라, 일정 기간만 쓰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게 이 법의 취지였다. 나쁘지 않은 설계였다. 다만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있었다. 15년 뒤, 실제로 그 법을 집행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전제.
그 15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015년 12월, 첫 시한을 코앞에 두고 정부와 국회 앞에 놓인 현실은 이랬다. 2001년 이후 조성된 분묘 가운데 15년 기한이 도래하는 무덤이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이 중 상당수는 연고자가 불분명하거나 이미 끊긴 무연분묘였다. 이걸 확인하려면 전국 단위 실태조사가 필요했고, 그것만으로도 최소 2,221억 원이 든다는 계산이 이미 나와 있었다. 실제로 파내서 화장하고 봉안하는 집행 비용은 여기에 수조 원이 더 얹히는 규모였다.
행정 인프라도, 예산도,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15년 전 법을 만들 때는 "15년 뒤엔 어떻게든 되겠지"였는데, 15년이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어떻게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국회가 택한 방법은 하나였다. 법을 집행하는 대신, 법이 적용되는 시점 자체를 미루는 것.

15년이 30년 된 날
2015년 12월 29일 개정된 장사법 제19조는 이렇게 바뀌었다.
개정 전: 분묘 설치기간 15년. 연고자 신청 시 15년씩, 최대 3회까지 연장 가능 (최장 60년).
개정 후: 분묘 설치기간 30년. 연고자 신청 시 딱 1회, 30년 연장 가능 (최장 60년, 동일).
숫자만 보면 최장 사용 기간은 60년으로 똑같다. 그런데 구조는 완전히 달라졌다. 원래는 15년마다 한 번씩, 네 번에 걸쳐 나눠서 판단할 수 있었던 문제가, 이제는 30년마다 딱 두 번, 그러니까 사실상 '30년 뒤 한 번에' 몰아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로 바뀌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15년 체제였다면 2016년, 2031년, 2046년, 2061년에 걸쳐 문제가 조금씩 나눠서 터졌을 것이다. 그런데 30년 체제로 바뀌면서, 2016년에 터졌어야 할 문제와 그다음 문제까지 한꺼번에 2031년으로 밀려버렸다. 분산돼 있던 폭탄을 하나로 합쳐서 더 뒤로 던진 셈이다.
그리고 그 2031년 1월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한이다.
왜 아무도 막지 않았나
이 개정안이 통과될 당시, 이걸 정면으로 반대한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법의 이해당사자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덤을 강제로 파내야 하는 건 '먼 미래의, 특정되지 않은 누군가'의 일이었다. 반대로 당장 법을 집행하지 못해 곤란해지는 건 지금 이 순간의 정부와 지자체였다. 전자는 추상적이고 분산돼 있고, 후자는 구체적이고 코앞에 닥쳐 있다. 이런 구도에서 "일단 미루자"는 선택은 거의 저항 없이 통과된다. 피해는 훗날 흩어진 누군가에게 가고, 편익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이 법을 어겼을 때의 처벌 조항(1년 이하 징역,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실제로 적용하는 순간, 정부는 "조상 묘를 못 옮겼다고 국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나라"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법대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법 자체를 늦추는 게 정치적으로 훨씬 쉬운 선택이었다.

다시, 2주 앞으로 돌아온다면
지금부터 2031년 1월까지 남은 시간은 4년 4개월. 2015년 그날처럼, 마감을 2주 앞두고 또 한 번 법을 고치는 장면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2015년과 지금은 놀랄 만큼 닮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지자체와 협의해 사전 준비를 마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정작 지자체 반응은 회의적이다. 묘지 정비에 예산을 쓰겠다고 하면 "그 돈으로 차라리 다리를 놓지"라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2001년에 만든 법을, 2015년에 한 번 미뤘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2031년에 또 한 번 미룰 준비를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셈이다.
법 조문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30년을 한 번 더 연장하면 60년까지 늘릴 수 있다는 조항. 2031년이 코앞에 닥쳤을 때, 국회가 가장 쉽게 꺼내들 카드는 또다시 이 조항을 붙잡고 기한을 늘리는 일일 것이다. 2주 앞두고 법을 고쳤던 그 장면을, 그저 연도만 바꿔서 반복하는 일.
반복은 해결이 아니다
2015년의 개정은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미룬 것이었다. 15년 뒤로. 그리고 그 15년의 유예는 이제 4년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을 향해 가고 있다.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30년을 벌게 될 뿐이다. 그사이 정리해야 할 무덤은 계속 쌓이고, 정리할 방법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채로, 다음 세대가 또 한 번 이 숙제를 물려받는다.
2015년 12월 29일, 그날 국회의사당에서 있었던 일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날의 결정이 만들어낸 시한은 지금도 정확히 작동하고 있다. 법은 미룬 것을 잊지 않는다. 2031년 1월은, 이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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