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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뉴스

케냐의 병원 장례식장, 그리고 시신을 담보로 잡는 사회


병원이 곧 장례식장인 나라


케냐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형 병원 대부분이 자체 영안실과 장례식장을 부속시설로 직접 운영한다. 나이로비의 케냐타대학교 부속병원(KUTRRH)은 병원과 다른 장례식장, 심지어 가정에서 사망한 시신까지 인수해 방부처리부터 발인까지 전 과정을 처리하는 '원스톱' 체계를 운영 중이다.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케냐타대학교 장례식장(KUFH)의 공개 요금표를 보면 24시간 이내 시신 방부·세척이 성인 기준 5,500실링(약 5만 원 남짓), 이후 하루 보관에 1,000실링, 부검실 이용료는 7,000실링 선이다.


지방으로 가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서부 케냐의 키수무에는 아예 시립 영안실이 없어서, 경찰이 각지에서 수거하는 모든 변사체가 자동으로 지역 거점병원인 조라모기 오깅가 오딩가 교육·의뢰병원(JOOTRH)으로 몰린다. 최근에서야 이 병원에 서부 케냐 최초로 시신을 개별 랙에 안치해 유족이 원하는 시신만 확인할 수 있는 현대식 영안실이 생겼다는 소식이 지역 뉴스로 다뤄질 정도로, 그 이전까지는 시신들이 뒤섞여 보관되는 방식이었다.


이런 구조의 어두운 단면은 케냐 최대 국립병원인 케냐타 국립병원(KNH)을 취재한 한 르포에서 드러난다. 취재기자가 들어선 영안실은 부패한 냄새로 가득했고, 병원 측은 유족을 위한 별도의 애도 상담 공간조차 마련해두지 않아 사람들이 건물 밖 나무 그늘 아래서 슬픔을 추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한 유족은 실종된 여동생을 찾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시신 더미를 뒤진 끝에 신체 특징 하나로 겨우 신원을 확인했다고 한다. 병원과 장례시설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죽음 처리 라인'으로 굴러가는 구조가 존엄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잠식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시신을 담보로 잡다. 케냐식 병원-영안실 유착의 진짜 문제


그런데 케냐를 들여다보며 흥미로웠던 지점은, 한국에서 익숙한 '병원이 장례 산업을 관행적으로 독점한다'는 문제와는 결이 다른 유착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미납 의료비를 이유로 병원과 영안실이 시신 자체를 담보물처럼 억류하는 관행이다.


2019년 보건부 특별조사팀이 밝힌 수치는 충격적이다. KNH 영안실에는 정원(126구)을 261구나 초과한 387구의 시신이 쌓여 있었고, 같은 시기 445명의 환자가 총 6천만 실링(약 5억 원)에 달하는 미납 청구서 때문에 퇴원하지 못한 채 병원에 발이 묶여 있었다. 이는 단순한 시설 부족 문제가 아니라, 병원이 청구서 미납을 이유로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인질처럼 붙잡아두는 구조적 관행이 만연했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2025년 케냐 고등법원의 판결로 전국적 이슈가 됐다. 닉슨 시푸나 판사는 마터 병원이 330만 실링의 미납 청구서를 이유로 두 달 가까이 억류하고 있던 한 여성의 시신을 즉시 석방하라고 명령하면서, 시신 억류가 유족을 협박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어 금전 지급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병원 측이 청구할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영안실 이용료뿐이며, 나머지 미납 의료비는 민사 채권 회수 절차를 통해 별도로 다뤄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판결이 관행을 바로 바꾸지는 못했다. 2026년 7월 보도에 따르면, 판결이 나온 지 여덟 달이 지나도록 무랑아 지역의 한 가족은 440만 실링의 미납 청구서 때문에 여전히 고인을 매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원은 다시 한번 시신을 즉각 석방하라고 명령하면서, 영안실에 안치된 이후 발생한 요금 전액이 애초에 불법 청구였다고 못 박았다. 한 가족은 2021년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이 500만 실링의 미납 청구서 때문에 무려 4년 가까이 영안실에 방치돼 있었고, 그사이 별도로 부과된 영안실 이용료만 246만 실링까지 불어난 사례도 있었다.

 

케냐의 '시신 억류' 관행은 거대 병원이 의료와 장례 권력을 동시에 독점할 때, 인간의 존엄성이 어디까지 무력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이다.

케냐의 대형 병원들은 사망 진단부터 시신 보관, 장례 서비스까지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통제한다. 문제는 이 견제 없는 통합 권력이 '미납 의료비 회수를 위한 잔인한 지렛대'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병원들은 치료비를 내지 못한 환자를 살아서도 퇴원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망 후에는 시신을 담보물처럼 영안실에 강제 구금한다. 시신이 묶여 있는 동안 영안실 이용료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유족을 기하급수적인 채무의 덫에 빠뜨린다.

2025년 고등법원이 이를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위법 행위로 판결하고, 입법부에서 선치료 후지불(Care First, Pay Later) 법안을 발의했음에도 의료계는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반발하며 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단순한 상업적 독점을 넘어, 삶의 마지막 순간(의료)과 죽음 이후의 예우(장례)를 한 기관이 모두 쥐었을 때 생과 사를 아우르는 절대적 채권 권력이 탄생할 수 있음을 케냐 사례는 선명하게 경고한다.

 

입법 전쟁. "병원은 구금시설이 아니다" vs "영안실도 유료 서비스다"


이 문제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도 뜨겁다. 키리냐가 지역구의 은제리 마이나 의원이 발의한 '선치료 후지불(Care First, Pay Later)' 법안은 응급환자에게 선지급을 요구하는 관행과 미납 의료비를 이유로 한 시신·환자 억류 관행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마이나 의원은 병원이 합법적인 구금 시설이 아니며, 존엄에 대한 권리는 죽음 이후에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케냐타 국립병원에서 지난 한 해 262구의 시신이 인수되지 않은 채 방치됐고, 그중 124구는 2025년 6월 한 달 사이에 집중됐다는 병원 측 공고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보건부와 민간병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상원 보건위원회에 제출된 의견서에서 보건부는 영안실 서비스는 승인된 요금 체계에 따른 유료 서비스이므로 이를 '억류'로 규정해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아가칸 병원 측은 한발 더 나아가, 법안이 미납 청구서로부터 민간시설의 재산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상원 보건위원장 잭슨 만다고는 헌법상 권리는 공공·민간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며,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모든 의료기관에서의 억류를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케냐 의사·치과의사협의회(KMPDC)가 병원과 영안실, 장례식장에 미납 청구서로 시신을 억류하는 행위가 위법이며 헌법 28조가 보장하는 존엄권 침해이자 형법 137조상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이 경고는 시신 석방이 병원의 채권 자체를 소멸시키지는 않는다는 단서도 함께 달았다. 2026년 4월에는 케냐타 국립병원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환자·시신 석방을 심사하는 '신용면제위원회'를 신설하고 이를 공식 정책으로 제도화하겠다고 국회 상임위에서 밝혔다.


왜 이 사례가 중요한가


한국에서 병원 장례식장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주로 '병원이 관행적으로 장례 산업을 독점하면서 유족의 선택권을 제약한다'는 구조, 즉 문화적·상업적 종속의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케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층위의 유착이다. 여기서는 병원이 장례식장을 겸영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겸영 구조를 이용해 죽은 자의 몸을 미수금 회수의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점이 핵심 문제다. 산 사람을 향한 진료비 선지급 요구와 죽은 사람을 향한 시신 억류가 하나의 법안 안에 나란히 놓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즉 케냐에서는 병원이 삶과 죽음 양쪽 모두에서 채무 담보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병원과 장례시설을 '봉송(운구·행정처리)'과 '추모(애도·의례)'라는 서로 다른 기능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 사례를 다시 보면, 케냐의 위기는 그 분리가 안 되었을 때 최악의 경우 어떤 지점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로 읽힌다. 병원이 사망 처리의 전 과정-진단, 사망 확인, 시신 보관, 행정 서류 발급, 장례 서비스 판매-을 독점적으로 통제할 때, 그 권력은 결국 유족에게 최후의 협상 카드를 요구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병원 장례식장 문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간과되는 것이, 이 '통합된 권력 구조' 자체가 잠재적으로 어떤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다. 케냐는 그 위험이 실제로 발현되었을 때의 모습을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