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과 리본... 슬픔을 몸에 새기는 인류의 오랜 몸짓, 그리고 근조기
장례식장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상주의 팔에 감긴 검은 완장, 가슴에 다는 리본, 그리고 입구에 세워진 근조기. 우리는 이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막상 "이게 왜 생겼나요?"라고 물으면 선뜻 답하는 사람이 없다.
이 글은 완장과 리본 각각의 기원을 추적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유사 관행과 비교한 뒤, 장례식장 입구에 흔히 세워지는 근조기에 대해서도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다.
완장(喪章)... 슬픔을 팔에 두른 오랜 전통
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완장은 한국 장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적어도 17세기부터 사망 후 남성이 수개월, 심지어 1년까지 검은 완장을 착용하는 관행이 있었고, 1614년 영국 보헤미아 여왕의 초상화에서 그 최초 시각 기록이 확인된다. 오늘날에도 유럽 축구 팀은 팀원이 사망하면 다음 경기에 검은 완장을 착용하며, 경찰관도 동료가 사망하면 일정 기간 완장을 착용한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흰색 완장을 사용한다. 1908년 서태후 사망 당시 중국 군인들이 왼팔에 흰색 상장(喪章)을 착용한 사진 기록이 남아 있다. 현대 중국 장례에서도 직계 가족은 완장을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가족 관계에 따라 색이 다른 비단 완장이나 머리 리본을 착용하기도 한다.
필리핀에서는 제복 착용자와 전통 바롱 타갈로그를 입은 남성 조문객이 왼쪽 팔꿈치 위에 검은 완장을 착용한다. 다른 복장의 유족은 왼쪽 가슴에 검은 리본이나 검은 핀을 부착한다.
한국의 완장
한국 장례에서 상주(喪主)는 완장을 착용하고, 여성은 흰색 리본 머리핀을 꽂는다. 이 관행이 1934년 의례준칙 이후 일본식 장례 교육을 통해 형식화되었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완장이라는 행위 자체는 동서양 공히 "슬픔을 몸에 표시"하는 인류 보편의 몸짓이다.
완장은 검은색 천 조각이어야만 할 이유가 없다. 고인과 나눈 관계의 색깔을, 우리 전통의 색 - 청(靑)·홍(紅)·황(黃)·백(白)·흑(黑)의 오방색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완장의 형태도 군복식 밴드에서 벗어나, 한국 매듭이나 고름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형태를 탐색해볼 수 있다.

리본(ribbon)... 슬픔의 언어, 리본의 역사
유대교의 크리아 리본에서 빅토리아 시대까지
리본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전통은 다양한 문화권에 뿌리를 둔다. 유대교에는 '크리아'(Kriah)라는 오래된 의식이 있다. 유족이 슬픔의 표시로 옷을 찢는 관행이었는데, 현대에는 대신 검은 리본을 가슴 부위에 달고 랍비가 가위로 상징적인 절개를 가한다. 이 리본은 시바(shiva), 즉 7일 애도 기간 동안 착용한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애도가 사회적 의무이자 정교한 의례였다. 검은 장갑, 베일, 고인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장신구가 유행했으며, 리본은 이 애도 문화의 핵심 아이템이었다. 빅토리아 여왕 자신이 남편 앨버트 공 사후 40년간 검은 옷을 입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현대에도 검은 리본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비 사망,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 2024년 시드니 본다이 정션 흉기 난동 사건 등에서 추모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구글은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 로고에 검은 리본을 표시한다.
이렇듯 가슴이나 머리에 리본을 다는 행위 자체는 세계 각지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보편적 애도 표현이다.

근조기(弔旗)... 조사가 필요한 또 하나의 형식
장례식장 입구나 빈소 양옆에 검은 띠를 두른 "근조(謹弔)" 깃발이 세워진 모습은 한국에서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다만 이 근조기의 정확한 유래나 도입 시점에 대해서는, 조사한 범위 내에서 명확한 문헌 자료를 찾지 못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개념인 국가 차원의 "조기(弔旗)" 제도다. 이는 국가나 단체가 국기를 평소보다 내려 다는 의례로, 깃발을 최상단까지 올렸다가 다시 절반 위치까지 내려 게양하는 방식이다. 이 조기 게양 제도는 서구에서 유래해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채택하고 있는 의전이며, 한국에서도 국가장 기간이나 현충일에 이 방식으로 태극기를 게양한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세워지는 "근조기"는 이 국기 조기 게양과는 다른 물건이다. 검은 리본이나 띠를 두른 별도의 조의 깃발 형태로, 화환과 함께 세워지는 한국 특유의 장례 용품에 가깝다. 이것이 언제, 어떤 경로로 자리 잡았는지는 영정 액자의 검은 리본이나 완장의 경우처럼 명확한 기원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의 공적 弔旗 문화가 메이지 시대 전쟁과 함께 제도화되고, 이것이 1934년 의례준칙 등을 경유해 한반도로 이식되는 과정에서 장례식장용 근조기 문화도 함께 유입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마치며
완장과 리본은 한국 고유의 발명품이 아니라, 인류가 오랫동안 공유해 온 애도의 몸짓이다. 다만 한국에서 쓰이는 구체적인 형식(색상, 착용 방식)에는 일제강점기 의례준칙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위 자체의 보편성과, 그 행위가 취하는 특정 형식의 기원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 이 조사가 보여주는 결론이다.
근조기처럼 출처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영역도 있다. 죽음문화의 형식 하나하나를 더 정확히 추적하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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