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지도사, 근로자로 인정받아도 왜 여전히 가난한가
지난 몇 년 사이 장례지도사를 둘러싼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결론만 보면 흐름은 분명하다. 법원은 이제 장례지도사를 근로자로 인정한다. 위탁계약이라는 형식을 걷어내고 실질을 보면 근로자라는 것, 당직 근무 중 실제 일했다면 그만큼 수당을 줘야 한다는 것. 겉으로는 승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이 판결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상한 그림이 나온다. 근로자로는 인정받는데, 임금은 여전히 근로자 대접을 못 받는다. 이 글은 그 모순의 구조를 세 겹으로 추적한다.
첫 번째 벽. 근로자성은 인정하되, 돈은 시효로 막는다
2025년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상조회사 프리드라이프와 위탁계약을 맺고 '의전팀장'으로 일한 장례지도사 A씨 등 11명의 손을 들어줬다. 프리드라이프는 2015년 11월 자회사 격인 '현대의전'을 세워 의전 업무를 넘겼는데, 대법원은 원고들이 프리드라이프에 근로를 제공한 기간만큼은 실질적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였다고 인정했다. 위탁계약이라는 종이 한 장으로 근로자성을 지울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상조업계 장례지도사의 근로자성을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그런데 정작 대법원 게시판에 올라온 제목은 이랬다. "위탁회사로 소속바뀐 장례지도사, 3년 지나 퇴직금 청구 못 해." 원고들은 계약이 종료된 지 3년 넘게 지난 2021년 6월에야 소송을 제기했다. 2심은 회사가 퇴직금 지급 의무를 제대로 안내하지 않은 채 계약 해지를 유도했으니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이라고 봤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회사가 고지를 안 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들이 3년 안에 퇴직금 청구권을 행사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결국 이 사건은 "근로자로 인정은 해주되, 돈은 시효 때문에 못 준다"는 결론으로 서울고등법원에 되돌아갔다. 근로자성 인정이라는 명분과, 실제 퇴직금 지급이라는 실리가 대법원 판결 안에서 이미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두 번째 벽. 포괄임금제, 정부는 없애려 하고 법원은 지켜준다
같은 시기 서울고등법원의 또 다른 판결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던 장례지도사 3명이 포괄임금제 무효를 주장하며 연장·야간수당 별도 지급을 청구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장례업 특성상 대기시간이 많고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며 사업주 손을 들어줬다.
흥미로운 건 이 판결의 시점이 정부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던 시기와 겹친다는 점이다. 2025년 12월 이재명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포괄임금제를 "잘 모르는 청년들에 대한 노동착취수단"이라고 직접 지적했고, 노동부는 2026년 상반기 입법을 목표로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회에는 이미 관련 개정안이 9건 발의돼 있고, 노동부는 2026년 4월 9일부터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을 시행하며 현장 점검에 들어갔다. 실근로시간을 전자적으로 기록·보관하지 않거나 법정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관행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행정부는 포괄임금제를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지목하며 없애려 하는데, 사법부는 "감시·단속적 근로처럼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라는 예외 조항을 여전히 넓게 인정하고 있다. 노동계가 "대기 공간에 묶여 자유를 박탈당한 시간"이라 호소해도, 법원은 이를 "업무 밀도가 낮은 휴식 시간"으로 판단하는 논리를 최근까지도 유지했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 법원의 판단 기준 사이에 뚜렷한 엇박자가 존재하는 셈이고, 장례지도사는 정확히 그 엇박자의 틈새에 끼어 있다.
다만 이 흐름이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다. 노동부의 새 지침과 법 개정이 실제로 자리잡으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다"는 요건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그 변화가 법 개정과 판례 축적을 거쳐야 하는, 시간이 걸리는 싸움이라는 점이다.
세 번째 벽. 계약서가 정교해지는 속도
근로자성 인정 판결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그걸 우회하는 계약 기술도 함께 정교해진다. 법원이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보는 기준은 대체로 이렇다.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정하고 그에 구속되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도구를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시킬 수 있는지, 노무제공 관계가 특정 사업자에게 얼마나 지속적·전속적인지,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하는지.
이 기준들을 뒤집어 보면 그대로 계약서 설계 매뉴얼이 된다. 근무 대체를 허용하는 조항을 넣으면 '전속성'이 흐려지고, 장비를 회사 명의가 아니라 개인 비용으로 처리하게 하면 '독립적 사업 수행' 요건에 가까워진다. 이건 장례업만의 특수한 꼼수가 아니라, 위탁계약 형태로 일하는 여러 직종(정수기 수리기사, 배움터지킴이, 플랫폼 노동자 등)에서 이미 반복적으로 확인된 계약 설계 패턴이다. 법원이 실질을 보고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례가 쌓일수록, 사업주 쪽에서 그 실질 자체를 흐리는 계약 문구를 정교화하는 대응도 함께 진화한다. 이건 이 영역의 판례 흐름 전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경향이며, 장례업계에도 같은 압력이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프리드라이프 사건에서 회사가 자회사를 세워 계약 주체를 바꾼 것도 이런 흐름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법원이 이번엔 그 우회를 뚫었지만, 다음 세대의 계약서는 이미 이 판결을 학습한 형태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리하면
세 겹의 벽이 이렇게 쌓여 있다.
☞ 근로자성은 인정하지만 소멸시효로 막는다 (프리드라이프 사건)
☞ 포괄임금제는 정부가 없애려 하지만 법원은 여전히 지켜준다 (서울고법 사건과 정부 정책의 엇박자)
☞ 판례가 쌓일수록 계약서가 그 판례를 우회하도록 정교해진다 (근로자성 판단 기준의 역이용)
근로자성 인정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장례지도사는 근로자다"라는 선언을 얻어내도, 그 선언이 소멸시효·포괄임금제·정교해진 계약서라는 2차, 3차 방어선에 차례로 막힌다.
이제 필요한 싸움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통계 분류 체계에 '장의 서비스업'이라는 고유 명칭을 부여해 이 업종의 실제 노동 강도를 국가 통계로 포착하는 것, 포괄임금제 폐지 입법이 실제로 통과되도록 여론과 근거 자료를 축적하는 것, 그리고 장례업계 원청-하청 수수료 구조를 표준계약으로 규율해 임금 인상의 여지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
법원이 장례지도사를 근로자라고 불러주는 것과, 장례지도사가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사는 것 사이에는 아직 메워지지 않은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메우는 일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진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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