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흥원은 왜 만들었나
2013년 5월, 보건복지부는 재단법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을 출범시켰다. 설립 근거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33조의4다. 정부는 출범 당시 진흥원을 "성숙한 장례문화 조성의 컨트롤타워"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설립 배경에는 현실적 필요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 화장률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장사 관련 민원과 행정 수요가 폭증했다.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처럼 전국 화장장 예약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도 운영 주체가 필요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지원, 재해재난 사망자 처리, 장사시설 종사인력 교육까지 노인지원과 몇 명이 직접 처리하기에는 업무량이 한계를 넘어섰다. 전담 집행기관이 필요했고, 그 결과물이 진흥원이다.
진흥원의 주요 업무는 이렇다.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운영, 장사정책 및 장례문화 연구·개발, 장사시설 종사인력 교육, 무연고사망자 장례지원, 국내외 재해재난 사망자 장례지원, 장사 관련 상담서비스, 친자연적 장례문화 교육 및 홍보. 어느 하나도 가볍지 않다. 사실상 한국 장사행정의 실무 전체를 떠맡고 있다.
컨트롤타워 위에 무엇이 있는가
문제는 이 컨트롤타워의 위에 무엇이 있느냐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다.
진흥원은 보건복지부 장사지원센터 업무수행기관으로서 노인지원과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예산 지원도 노인지원과를 통해 이루어진다. 장사정책 방향도 노인지원과가 설정한다. 진흥원이 아무리 전문성을 쌓아도 정책 결정권은 노인지원과에 있다.
구조를 그려보면 이렇다.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정책 결정·예산·감독) → 한국장례문화진흥원(실무 집행)
노인일자리 수십만 개를 관리하면서 경로당 운영까지 챙기는 과가 장사행정 컨트롤타워의 상급 기관이다. 진흥원 입장에서는 전문성을 갖춘 집행기관인데 정작 지시를 내리는 주무과는 장사행정 전담이 아니다. 정책 수요를 가장 잘 아는 기관이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는 구조다.
절반짜리 개혁이 만든 역설
진흥원 설립은 분명 진전이었다. 집행 역량을 외부 전담기관에 집중시킨 것은 맞는 방향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위의 주무 부서는 손대지 않았다. 집행기관만 만들고 정책 주무 부서는 그대로 노인지원과에 둔 것이다.
이것이 절반짜리 개혁이 만든 역설이다.
진흥원이 장사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해도 그 결과물을 정책으로 전환하는 권한은 노인지원과에 있다. 진흥원이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해도 제도 개선을 추진하려면 노인지원과를 통해야 한다. 노인지원과가 노인일자리 115만 개 관리에 집중하는 동안 진흥원의 정책 제안은 대기 순번을 기다린다.
컨트롤타워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구조다.
권한은 제한적이고 업무는 방대하다
진흥원의 법적 지위도 문제다. 재단법인이다. 정부 출연 기관도 아니고, 공공기관 지정도 돼 있지 않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업무수행기관이지만 독립적 정책 권한은 없다. 장사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할 수는 있어도 결정할 수는 없다.
인력 규모도 업무량에 비해 제한적이다. 전국 화장장 예약 통합 시스템을 운영하고,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고, 재해재난 대응까지 맡으면서 조직 규모는 크지 않다. 권한은 제한적이고 업무는 방대한 구조가 고착돼 있다.
전담 주무과가 있어야 진흥원도 산다
장사정책과가 신설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우선 진흥원의 정책 제안이 실제 정책으로 전환되는 경로가 생긴다. 장사 전담 주무과가 진흥원의 현장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정책으로 빠르게 연결할 수 있다. 지금처럼 노인일자리 업무 사이에서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
진흥원의 법적 지위 강화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 재단법인에서 공공기관으로의 전환, 또는 정부 출연기관 지정이 장사정책과 신설과 연동되면 진흥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동시에 높아진다.
예산 구조도 바뀐다. 장사정책과가 독립 예산 항목을 갖게 되면 진흥원에 대한 예산 지원도 노인복지 예산과 분리된다. 노인일자리 예산의 그늘에서 벗어나 장사행정 고유의 예산 체계가 만들어진다.
컨트롤타워에 걸맞은 지휘부가 필요하다
정부는 2013년 진흥원을 만들면서 '컨트롤타워'라는 표현을 썼다. 그 표현이 맞다면, 컨트롤타워에 걸맞은 지휘부도 있어야 한다. 지금의 노인지원과는 그 지휘부가 될 수 없다. 노인일자리와 경로당과 장사행정을 동시에 챙기는 과에 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컨트롤타워를 만들어놓고 지휘부를 만들지 않은 채 10년을 보냈다. 장사행정이 더 이상 노인복지의 부록이 아니라면, 이제는 장사정책을 책임질 이름 있는 주무과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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