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죽음을 파는 사람들의 '패션위크'

엔딩뉴스

by 다비코 2026. 8. 6. 12:42

본문

 

볼로냐에서 열린 세계 최대 장례 박람회

 

관이 줄지어 서 있다.

 

조명이 비추는 검은 관 앞에서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옆 부스에서는 최신 화장로를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이 한창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유골함을 진열한 쇼케이스가 나오고, 그 맞은편에서는 장례식 실시간 중계 플랫폼을 시연하는 스타트업이 투자자들과 명함을 주고받는다.

 

2년에 한번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되는 TANEXPO. 65개국에서 장례업 종사자 1만 4천여 명이 모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장례 산업 박람회다. 관 제조업체부터 화장 설비 회사, 영구차 디자이너, 묘지 운영사까지 200여 개 기업이 최신 기술과 디자인을 경쟁하듯 선보인다.

 

패션업계에 밀라노 패션위크가 있다면, 장례업계에는 TANEXPO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가 '죽음'이 아니라 '혁신'이라는 사실이다. 올해 박람회의 주인공은 관도, 유골함도 아니었다. 태블릿PC였다.

 

행사장 한쪽에는 올해 처음으로 'TANEXPO TECH'라는 공간이 생겼다.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화장장 관리 시스템, 디지털 추모관, 장례식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까지…. 분위기만 보면 CES나 스타트업 전시회를 옮겨 놓은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장례는 '직접 찾아가는 의식'이었다. 이제는 해외에 있는 가족이 스마트폰으로 접속해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시대다. 슬픔조차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세상이다.

 

친환경도 빠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관을 얼마나 튼튼하게 만드는지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화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중요한 화두가 됐다. 박람회에서는 친환경 화장 시스템과 지속가능한 묘지 운영을 주제로 한 토론이 이어졌다. 죽음을 준비하는 산업도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의 질문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가장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 건 의외의 단어였다.

 

'Pets'

 

TANEXPO Awards, 말하자면 장례업계의 오스카상에 올해 처음 반려동물 부문이 생겼다. "왜 장례 박람회에 반려동물?"

 

사람 장례 설비를 만들던 기업들이 반려동물 화장시설과 장례용품 시장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위한 장례 기술과 경험이 그대로 반려동물 장례 산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이미 그 변화를 새로운 시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낮에는 죽음과 애도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밤이 되자 정장을 차려입고 시상식에 모인다. 혁신상, 디자인상, 친환경상, 기술상, 반려동물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박수가 터지고, 행사가 끝나면 'Golden Party'라는 이름의 칵테일 파티가 이어진다. 낮에는 관을 이야기하고, 밤에는 와인잔을 부딪친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장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더 좋은 서비스를 고민하는 일상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TANEXPO를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해진다. 장례 산업은 더 이상 전통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디지털을 받아들이고, 친환경을 고민하고, 반려동물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준비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죽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산업은 지금도 누구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 최대 장례 박람회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미래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전시장인지도 모른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