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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 안 남는 장례는 안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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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코 2026. 8. 4.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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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 안 남는 장례는 안 받습니다"... 안치실이 인질이 되는 이유

 

빈소 없이 조용히 고인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유가족의 요청 앞에서, 정작 병원 장례식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빈소를 쓰셔야 안치실을 내드릴 수 있습니다." 법 어디에도 없는 이 조건은 어느새 관행이 되어 있다.

 

전문안치센터 - AI이미지

 

빈소 없는 장례, 병원엔 '손해 보는 장사'

 

무빈소 장례가 저렴한 이유는 단순하다. 조문객을 받지 않으니 빈소 대여료가 없고, 식사·다과를 내지 않으니 접객 매출도 없다. 그런데 이 '없음'이 유가족에게는 절약이지만, 병원 장례식장에게는 고스란히 매출 손실이다. 장례식장 수익의 뼈대가 빈소 이용료와 조문객 식대인 구조에서, 안치실만 며칠 빌려주고 끝나는 손님은 반가울 리 없다.

 

그 결과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상당수 병원 장례식장이 안치·화장만 원하는 유가족에게 "빈소 최소 사용"을 조건으로 내걸거나, 아예 안치실 단독 이용 자체를 받지 않는다. 상담 전화를 걸어봐야 겨우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이는 공식 정책이 아니라 그때그때 담당자 재량과 병원 사정에 좌우되는 '비공식 장벽'이다.

 

여유가 없어서? 그 여유의 실체

 

명절 전후, 한파나 폭염철처럼 사망자가 몰리는 시기엔 안치실 자체가 만실이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한 병원의 안치실 가동률이 평소 60%에서 90%까지 치솟았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물리적 포화 상태와 '마진이 안 남아서 안 받는다'는 영업적 판단이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유가족은 "지금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도, 그것이 진짜 포화 때문인지 그냥 받고 싶지 않은 손님이기 때문인지 알 도리가 없다.

 

법이 사망 후 24시간 이내 화장을 금지하고 있다 보니, 어차피 하루 이상은 어딘가에 안치해야 한다. 이 최소한의 법적 안치 의무가, 되레 "그럴 거면 빈소도 쓰시라"는 설득의 명분으로 활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죽음 앞에서 가족은 협상력이 없다. 시간에 쫓기고, 슬픔에 지쳐 있고, 대안을 찾아다닐 여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장례식장의 조건은 사실상 통보에 가깝다.

 

틈새를 메우는 사업자들, 그러나 구조는 그대로

 

이런 공백을 파고들어 무빈소 전담을 표방하는 장례식장이나 장례·의전회사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운 좋게 그런 곳을 찾아낸' 소수 유가족의 이야기다. 대다수는 여전히 거주지 인근 병원 장례식장의 관행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선택의 폭은 병원이 정한 조건 안으로 좁혀진다.

 

안치와 장례는 분리되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안치'라는 필수적·공공적 기능과 '장례식(빈소·접객)'이라는 상업적 기능이 병원이라는 한 지붕 아래 묶여 있다는 데 있다. 안치는 시신을 부패 없이 임시 보관하는, 유족의 선택과 무관하게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서비스다. 반면 빈소와 접객은 철저히 선택 사항이며, 이걸 강제하는 순간 그것은 서비스가 아니라 끼워팔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병원 장례식장으로부터 독립된 '전문 안치센터'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안치 기능만을 전담하는 시설이 지역마다 갖춰진다면, 유가족은 병원의 매출 논리에 볼모 잡히지 않고 안치실을 이용할 수 있다. 빈소가 필요하면 그때 가서 원하는 장례식장을 고르면 될 일이고, 무빈소를 원한다면 안치와 입관, 화장 예약까지만 깔끔하게 마치면 된다. 안치와 장례가 분리되는 순간, 지금처럼 "마진이 안 남아서" 안치실을 내주지 않는 구조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고인을 어떻게 보내드릴지는 유가족의 몫이어야 한다. 그 선택이 병원의 매출표에 좌우되는 지금의 구조는, 이제는 손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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