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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뉴스

죽은 자가 산 자의 땅을 이긴다


부칙 한 줄이 25년째 재산권을 묶고, 불법 분묘 피해자에게 사후처리 비용까지 전가

당신이 땅을 샀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그 땅 한켠에 남의 무덤이 있다.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른다. 연고자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당신은 그 땅에 집을 지을 수 없다.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심지어 그 무덤을 치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조차 법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투장에서 권리로... 법이 묵인한 100년의 역사


이 문제의 뿌리는 깊다. 조선 시대에는 남의 땅에 몰래 시신을 묻는 행위를 투장(偸葬)이라 불렀다. 훔칠 투(偸), 묻을 장(葬). 명당이 탐나서이기도 했고, 그냥 묻을 땅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묘를 쓴 집안은 그 주변 산림을 금양(禁養)했다.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하고 수십 년째 관리했다. 사실상 점유였다.


근대 법체계가 들어오면서 이 관행은 법적 개념으로 굳었다. 분묘기지권(墳墓基地權)이다. 일제강점기 법원 판결에서 인정되기 시작한 이 법리는, 타인의 토지에 설치된 분묘라도 2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한 경우 그 분묘를 유지할 권리가 생긴다고 본다. 등기 없이 성립하고, 지료도 내지 않아도 됐다. 투장이 20년만 들키지 않으면 권리가 되는 구조다. 조선의 관행이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 판례로 살아남았다.


장사법 부칙 제2조... 법을 만들고 스스로 무력화하다


2001년 1월 13일,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법은 분명하게 선언했다. 묘지는 60년 이상 설치할 수 없다. 타인의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에 대해서는 연고자가 토지 사용권을 주장할 수 없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규정이다.


그런데 부칙 제2조를 보라. 단 한 줄이다.


"이 법은 이 법 시행 이후 설치된 분묘에 관하여 적용한다."


이게 전부다. 2001년 이전에 설치된 분묘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법이 바꾸고자 했던 바로 그 문제, 허락도 없이 남의 땅에 들어선 무덤들에 대해 법이 손을 놓겠다는 선언이다.


전국에 산재한 분묘는 2000만 기를 넘는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관습법의 보호를 받으며 오늘도 타인의 토지 위에 존재한다. 경기도의 한 농민은 선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산자락 논밭에서 197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분묘 수기를 발견했다. 연고자를 수소문하니 먼 친척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조상 묘를 건드릴 수 없다고 버텼다. 법원은 분묘기지권을 인정했다. 토지 소유자는 자기 땅 일부를 수십 년째 아무런 보상도 없이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입법자들은 왜 부칙에 그 한 줄을 넣었는가. 기존 분묘를 소급 적용하면 사회적 혼란이 크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 판단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2001년 이후 25년이 흘렀다. 소급 적용의 충격을 완화할 유예기간은 충분히 지났다. 그럼에도 이 부칙을 개정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제27조·제28조...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후처리 비용을 부담


연고자가 없는 무연분묘(無緣墳墓)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장사법 제27조와 제28조가 그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일간신문에 2회 이상 공고해야 한다. 공고는 3개월 이상 유지돼야 한다. 그러고 나서 관할 관청에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허가가 나면 비로소 개장(改葬)할 수 있다. 개장 후 수습한 유골은 10년간 봉안시설에 안치해야 한다. 10년이 지나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제야 처리할 수 있다.


이 절차는 합법적으로 설치된 분묘에도, 불법으로 설치된 분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법은 불법 분묘와 합법 분묘를 전혀 구별하지 않는다.


충남의 한 지주는 자신의 임야에 불법으로 설치된 무연분묘를 발견했다. 토지대장 어디에도 해당 분묘에 관한 기록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땅에서 불법으로 자리 잡은 무덤을 치우기 위해 13개월이 넘는 시간과 상당한 비용을 들였다. 신문 공고비, 봉안 비용, 행정 절차 비용까지 전부 땅 주인이 부담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사후처리 비용까지 지는 셈이다.


사자(死者)의 존엄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존엄을 지키는 비용을 왜 피해자인 토지 소유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가. 불법 매장을 한 사람이나 그 연고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법의 상식이다. 연고자가 없다면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맞다. 내 땅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무덤의 유골을, 내 돈을 써서 10년간 보관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절차가 이렇게 복잡하고 비용이 이렇게 크니, 대부분의 토지 소유자는 아예 포기한다. 무연분묘는 그대로 방치된다. 땅값은 떨어진다. 개발은 막힌다. 법이 무연분묘의 영속화를 사실상 장려하는 셈이다.


봉안당 경과규정... 같은 구조, 같은 결과


분묘기지권 부칙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사법은 봉안당(납골당)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을 썼다. 2001년 시행 이전에 허가받거나 설치된 봉안당은 신법의 시설 기준, 설치 제한, 운영 요건을 적용받지 않는다. 경과규정이라는 이름의 면죄부다.


결과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구 봉안당들은 새 법의 소방·안전·면적 기준을 통째로 피해갔다. 사업자가 도산하거나 폐업해도 신법의 유족 보호 조항이 적용되지 않았다. 실제로 사설 봉안당이 폐업하면서 수천 위의 유골이 오갈 데 없이 방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피해는 고스란히 유족들이 떠안았다. 법이 보호했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다.


분묘기지권이든 봉안당 경과규정이든 입법 논리는 동일하다. "기존 것은 건드리지 않는다." 이 한 줄이 법의 목적을 공동화(空洞化)한다. 소급 적용에 따른 혼란을 피하려는 선택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25년이 지나도 경과규정을 정리하지 않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입법 태만이 아니라 기득권 보호의 고착화다. 장사법은 시행 첫날부터 스스로 만든 구멍을 메울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메울 의지를 잃은 것인지, 어느 쪽이든 납득할 수 없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장사법 제1조는 말한다. 이 법의 목적은 보건위생상 위해를 방지하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공공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부칙 제2조는 그 목적을 2001년 이전 분묘에 대해서는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제27조와 제28조는 불법 분묘의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사후처리 비용까지 전가한다. 목적 조항은 1조에 있고, 그것을 무력화하는 조항들은 부칙과 본문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이 나라에서는 죽어서 남의 땅에 묻히면 산 자보다 강한 권리를 갖는다. 100년 전에 묻혔어도, 허락 없이 묻혔어도,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 권리의 비용은 모두 살아있는 땅 주인이 치른다.


조선 시대의 투장 관행이 일제 판례로 굳고, 해방 후에도 관습법으로 살아남고, 2001년 장사법이 시행됐음에도 부칙 한 줄로 면죄부를 받은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죽은 자의 편의를 위해 산 자의 재산권을 반세기 넘게 묶어두는 나라가 법치국가인가.


부칙 제2조를 삭제하고, 제27조·제28조의 비용 부담 주체와 절차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봉안당 경과규정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