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하늘에 접속했다. 팝업이 뜬다. 또 팝업이 뜬다. 메뉴가 나타난다. '장사정보서비스', '화장예약', '장사시설서비스', 'e스카이 에듀'. '하늘e 챗봇' 뭘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e스카이 에듀'는 뭐지? 교육시스템...? 화장예약을 누르니 이번엔 구분이 나온다. 시신, 태아, 개장. 그리고 개인정보 동의, 인증... 무슨 기차표...나는 지금 기차표를 예매하는 게 아니라 화장 날짜를 잡으려는 것이다.
애초에 업체용으로 만든 것이다
e하늘이 만들어진 목적은 '부정 예약 방지'와 '통합 예약 창구 단일화'다. 화장 날짜를 특정 장례업체가 독점 선점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목적 자체는 좋다. 그런데 그 목적을 이루려다 보니 시스템이 업무 관리 툴처럼 설계됐다. 사망정보 등록, 연고자 확인, 본인 인증, 팝업 동의. 일반 유족이 쓰는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장례지도사가 업무 처리하는 백오피스처럼 생겼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현장을 보면 안다. 경황없는 유족이 저 복잡한 절차를 직접 뚫기 어려우니 결국 장례지도사에게 예약을 맡긴다. 국가가 직접 예약으로 공정성을 확보하겠다고 만든 시스템이, 그 복잡함 때문에 스스로 그 목적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화로는 예약이 안 된다
서울시설공단 공식 FAQ에 명시돼 있다. 화장예약은 인터넷 예약만 가능하며 전화 및 방문 예약은 불가하다고. 인터넷을 못 쓰는 유족은 어떻게 하나. 60~70대 자녀가 직접 예약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디지털 소외 계층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
그런데 2025년 9월 국가전산망 화재로 e하늘이 먹통이 되자, 정부는 즉시 전화·팩스·방문 수기 접수로 전환했다. 평소엔 안 된다던 전화 예약이 시스템 장애 때만 된다. 이게 무슨 논리인가.
사망진단서 나오기 전엔 예약도 안 된다
e하늘 예약은 사망진단서 또는 시체검안서에 기재된 사망일시를 필수로 입력해야 한다. 서류가 발급되기 전에는 예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허위 예약 방지를 위한 조치라고 하는데, 그 조치의 불편함은 고스란히 유족의 몫이다. 사망 직후 가장 정신없는 그 시간에, 서류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접속해서 처음부터 예약해야 한다.
예약을 잘못 잡으면 처음부터 다시다
예약 변경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취소하고 신규 예약을 다시 해야 한다. 문제는 인기 있는 오전 시간대는 금방 마감된다는 것이다. 취소하는 순간 그 자리는 사라진다. 처음 예약할 때 발인 시간부터 모든 것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는 뜻인데, 장례 일정 특성상 변수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더 황당한 것은 예약을 취소하면 입력해뒀던 고인의 사망정보도 함께 삭제된다는 점이다. 다시 예약하려면 모든 정보를 처음부터 재입력해야 한다.
주소지가 다르면 오후 3시 이후에만 화장이 된다
관내·관외 비용 차별은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다. 서울 시민은 10만 원대, 서울 외 지역 주민은 50만 원 이상. 소인(만 12세 이하)도 서울·고양·파주 시민은 10만 원, 그 외 지역 시민은 40만 원으로 4배 차이가 난다. 아이를 잃은 부모가 주소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4배를 내야 한다.
비용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 시간 차별이다. 서울시립승화원과 서울추모공원은 관외 지역 고인의 화장을 오후 3시 이후에만 허용한다. 아침 발인이 관례인 한국 장례 문화에서 오후 3시 화장은 하루 전체 일정을 뒤틀어 버린다. 유족은 발인을 오후로 미루거나, 장례식장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거나, 멀리 다른 화장장을 찾아야 한다. 주소지 하나로 이런 차이가 생긴다.
시스템이 한 번 죽으면 전국이 같이 죽는다
2025년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e하늘이 완전히 멈췄다. 전국 화장시설 예약이 동시에 불가능해졌다. 복구에 최소 2주에서 최대 4주 이상이 소요됐고, 그 사이 화장 예약은 전화·팩스·방문 수기로 처리됐다. 시설별로 지침이 제각각이었고, 예약 확정 여부도 재확인이 필요했으며, 일부 지자체는 아예 관외 접수를 중단했다.
서울추모공원과 승화원은 e하늘 외에 독자적인 예약 DB가 없었다. 국가 시스템이 죽자 두 시설도 함께 손을 놓았다. 통합 시스템의 장점은 평상시에 조금 편리한 것이고, 단점은 장애 시 전국이 동시에 마비된다는 것이다. 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개별 시설의 독자 운영 능력을 박탈했다.
화장장에 홈페이지가 없는 이유
'서울추모공원'을 검색하면 서울시설공단 하위 메뉴 링크가 나온다. 시설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유족 대기실은 어디 있는지, 주차는 어떻게 하는지, 진입 동선이 어떤지를 알 방법이 없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부모님 화장을 하러 처음 가면서도 그 시설에 대한 정보가 주소와 전화번호뿐이다.
일본의 화장장을 검색하면 시설만의 홈페이지가 나온다. 내부 사진, 유족 대기 공간 소개, 예약 안내, 담당자 연락처가 담겨있다. 한국 화장장에 홈페이지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분류하는 행정의 관성이 그 시설에 얼굴을 줄 생각 자체를 막고 있는 것이다. 혐오시설이니 홍보하지 않고, 홍보하지 않으니 정보가 없고, 정보가 없으니 유족은 사망 직후 처음으로 낯선 시스템과 싸우게 된다.
URL도 여러 개다
e하늘 접속 경로도 통일이 안 돼 있다. 15774129.go.kr, ehaneul.go.kr, web1.15774129.go.kr 등이 혼재한다. 전화번호(1577-4129)를 URL로 쓰는 발상 자체가 이 시스템이 누구를 위해 설계됐는지를 보여준다. 국민이 외워서 접속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관련 업무 담당자들이 내부에서 공유하는 링크로 만들어진 것이다.
진흥원 챗봇 '하늘e'는 면피 장치다
e하늘 메인 화면에는 '하늘e'라는 챗봇이 있다. 복잡한 시스템을 설명하기 어려우니 챗봇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UX를 고치는 대신 챗봇으로 설명을 떠넘기는 방식이다. 은행 앱이 불편하니 고객센터에 전화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은 매년 이 시스템 '고도화' 사업에 예산을 투입한다. 그 결과가 챗봇 하나다.
바꿔야 할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관점이다
e하늘을 고치는 방법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예약 변경 기능을 넣고, 전화 예약 채널을 열고, 모바일 UI를 정비하고, 각 시설의 독자 홈페이지를 만들고, e하늘은 데이터 동기화 백엔드 역할만 하면 된다. 서울추모공원은 그 시설의 공간을 보여주는 홈페이지가 있어야 하고, 승화원은 그 역사와 환경을 유족에게 안내해야 한다.
기술 문제 이전에 관점의 문제다. 지금 이 시스템을 쓰는 사람은 처리해야 할 민원인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막 잃고 눈물을 닦으면서 화장 날짜를 잡아야 하는 유족이다. 그 사람 앞에 팝업 여섯 개를 띄우는 것, 전화 예약은 안 된다고 안내하는 것, 예약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하는 것. 이것이 국가가 국민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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