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발견된 건 목요일 오후였다.
관리인 최씨가 반지하 201호의 문을 두드린 건 순전히 우편함 때문이었다. 일주일치 고지서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두 번째도 그랬다. 세 번째 날, 그는 마스터키를 집어들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묵은 공기가 먼저 나왔다.
경찰이 현장을 정리하는 동안 복도에 서 있던 최씨는 방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눈은 어쩔 수 없이 그쪽을 향했다. 낡은 장판 위에 소주병이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 로또용지 몇 장. 번호가 꼼꼼히 적힌.
경찰관 하나가 수첩에 무언가를 받아 적으며 중얼거렸다.
"향년 쉰셋."
그의 이름은 이진수였다.
어릴 때 아버지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 했다. 이기고 이기고 또 이겨라. 이름에 이길 승(勝)자 같은 건 없었지만 아버지는 늘 그렇게 설명했다. 진수는 그 이야기를 좋아했다. 적어도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서른 중반까지 그는 평범했다. 인쇄소에서 일했다. 결혼 이야기도 한번 나온 적 있었다. 여자 쪽에서 먼저 연락을 끊었지만, 그 일을 두고 그는 오래 삐쳐 있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오래 붙들지 않는.
문제는 마흔이 되던 해였다.
인쇄소가 문을 닫았다. 사장이 야반도주했고, 임금 두 달치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재취업을 시도했다. 서류에서 걸렸다. 나이란에 적힌 숫자가 문제였다. 당시엔 그게 이유인지도 몰랐다. 그냥 계속 안 되는 것들이 쌓여갔다.
아버지는 그 즈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전에 이미 떠나셨다. 형은 지방에 살았고 명절마다 연락이 뜸해지다가 어느 해부턴가 아예 없어졌다.
진수는 그 과정을 격렬하게 체감하지 못했다. 하나씩, 천천히, 물이 빠지듯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반지하 201호로 이사 온 건 마흔네 살 때였다.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오. 창문 아래로 사람들의 발목이 지나다니는 방. 여름엔 습했고 겨울엔 냉골이었다. 그는 그 방을 특별히 싫어하지 않았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 겨울, 처음으로 주민센터에 갔다.
일용직도 끊겼고, 허리가 나빠져 며칠째 밖에 나가지 못하던 때였다. 복도에 붙은 현수막을 어쩌다 눈여겨봤다. 차상위계층 지원 신청 안내. 글자를 몇 번이나 읽었다. 자신이 해당되는지도 몰랐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창구에 앉은 직원이 서류 목록을 내밀었다.
사회보장급여 제공 신청서, 금융정보제공동의서, 소득재산신고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임대차계약서, 1년치 통장 거래내역. 그리고 몇 가지를 더 말했는데, 진수는 세 번째부터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걸 다 가져와야 합니까."
"네. 다 있어야 접수가 돼요."
진수는 목록을 내려다봤다. 혼인관계증명서. 그 글자에서 눈이 잠깐 멈췄다. 배우자가 없다고 말해야 하나 싶었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혼자라는 걸 증명하는 서류도 따로 있다는 게, 무언가 우습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지만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가 귀찮았다.
가족관계증명서는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건 괜찮았다. 문제는 금융정보 동의서였다. 직원은 복지로 사이트에서 공인인증서로 먼저 동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공인인증서가 없었다. 은행에 가서 만들어야 했다. 은행에 가니 이제는 공동인증서라고 불린다 했다. 발급하려면 신분증과 통장이 필요했다. 통장은 있었다. 신분증도 있었다. 그런데 등록된 휴대폰 번호로 인증을 해야 했는데 그의 번호는 요금 미납으로 정지되어 있었다.
요금을 먼저 내야 했다.
요금을 낼 돈이 없어서 지원을 신청하러 온 것이었다.
진수는 은행 의자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무언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며칠 뒤, 복지관에서 찾아왔다.
동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갔던 모양이었다. 방문 복지 서비스라고 했다. 사회복지사였다. 이름은 박 씨라고 했다. 젊은 여성이었고 말투가 조심스러웠다.
"어르신, 차상위계층 신청 생각 있으시다고요."
어르신. 진수는 그 단어가 귀에 걸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박 씨는 서류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인증서 문제는 복지관 컴퓨터를 쓰면 된다고.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복지관으로 왔다.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복지로 사이트 접속은 됐다. 그런데 차상위계층 신청 화면으로 넘어가자 일부 항목은 온라인으로 제출이 안 된다고 했다. 임대차계약서 원본은 직접 방문 제출이어야 했다. 가족관계증명서도 발급 후 삼 일 이내의 것이어야 했다. 진수가 이미 뽑아온 것은 나흘 전 것이었다.
"다시 받아오셔야 해요."
박 씨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민센터로 다시 가야 했다. 거기서 증명서를 다시 뽑아서, 그날 안에 복지관에 가져오고, 복지관에서 온라인 신청을 하고, 그러고 나서 임대차계약서 원본을 다시 주민센터 창구에 직접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주민센터 복지 담당 창구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만 열렸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그럼 목요일에…"
진수는 말하다 멈췄다.
목요일 오전에는 드물게 잡힌 일용직 일감이 있었다. 그걸 빠지면 그 주는 없었다. 일이 먼저였다. 서류는 다음 주로 미뤘다.
다음 주 목요일, 창구에 갔다.
직원이 서류를 훑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금융정보 동의가 온라인으로 완료됐어야 하는데, 시스템에 아직 반영이 안 됐다고 했다. 복지로 서버 연동이 가끔 늦어진다고. 다음 주에 다시 오면 될 것 같다고.
"다음 주에도 됩니까."
"아마도요. 보통은 돼요."
아마도. 보통은. 진수는 그 말들을 들으며 창구 앞 의자에 앉았다. 번호표가 손에 들려 있었다. 이미 쓴 번호표였다.
다음 주에 다시 왔다. 이번엔 가족관계증명서 유효기간이 또 지나 있었다. 삼 일이라는 기간은 이 모든 과정을 삼 일 안에 끝낼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진수는 서류 묶음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자꾸 한 장면이 떠올랐다. 복지로 화면에서 파란 글씨로 적혀 있던 문구. 국민 누구나 쉽게 신청할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그리고 로또 한 장.
그날 밤은 두 잔만에 잠들었다.
박 씨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진수는 전화를 받았지만 말이 적었다. 박 씨가 다시 한번 같이 해보자고 했다. 서류 준비를 옆에서 도와주겠다고. 진수는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괜찮으시다고요?"
"네. 그냥 됩니다."
그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진수가 포기한 건 서류가 아니었다. 그 과정 내내 자신이 느꼈던 어떤 감각이었다. 창구 앞에 서 있을 때마다 몸이 작아지는 느낌. 번호표를 뽑을 때마다 자신이 무언가를 구걸하러 온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구걸조차 자격을 증명하지 못해 계속 돌려보내지는 느낌.
그는 그 감각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이후로 행정기관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기초수급자 상담 안내 문자가 왔을 때도 읽지 않고 지웠다. 복지관에서 반찬 지원을 해준다는 현수막을 봤을 때도 발걸음을 돌렸다.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서류를 준비하고, 창구 앞에서 기다리는 그 일련의 과정을 몸이 먼저 거부했다.
도움을 거절한 게 아니었다. 그 문 앞에 다시 서는 것을, 그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일용직은 불규칙했다. 건설 현장, 이삿짐, 설 연휴 전 택배 분류. 몸이 버텨주는 날은 일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은 없었다. 허리가 나빠지면서부터는 건설 현장 일감도 끊겼다.
돈이 생기면 그는 편의점에 들렀다.
소주 한 병, 그리고 로또 한 장.
처음엔 의식이 아니었다. 그냥 오가다 들른 것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순서가 고정되었다. 소주부터, 그다음 로또.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이 바뀌어도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로또는 매번 직접 번호를 골랐다.
7, 13, 24, 31, 38, 42.
아버지 기일, 어머니 생신, 인쇄소 입사일, 마지막으로 급여를 받은 날, 기억나지 않는 어떤 날, 그리고 자신의 생일. 왜 그 숫자들인지 누가 물어본 적 없었고, 그가 먼저 말한 적도 없었다. 그냥 그 숫자들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
토요일 밤 열 시가 되면 그는 TV 앞에 앉았다.
번호가 하나씩 불릴 때, 그는 용지를 꼬옥 쥐었다. 첫 번째 번호가 맞으면 심장이 한 박자 빨라졌다. 두 번째가 맞으면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세 번째부터는 숨을 참았다.
그리고 대개는 틀렸다.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실망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번호를 확인한 용지를 접어 구석에 두고, 소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불을 껐다.
다음 주에 또 사면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1등이 되리라 믿어서가 아니었다. 토요일 밤 열 시까지, 이 방에서 기다릴 이유가 생긴다는 것. 그것이 로또가 그에게 주는 것의 전부였고, 그것으로 그는 한 주를 버텼다.
소주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도왔다.
소주는 생각을 잘라냈다. 복지관 창구의 파란 형광등, 번호표를 쥔 자신의 손, 유효기간이 지난 서류 묶음. 한 잔이면 흐려지고, 두 잔이면 멀어지고, 석 잔이면 사라졌다. 그 상태에서 잠들면 꿈도 없었다. 진수는 꿈 없는 잠을 좋아했다.
마지막 일주일은 기록이 없다.
편의점 영수증으로 보아 화요일까지는 밖에 나왔던 것 같다. 소주 한 병과 로또 한 장. 영수증 날짜는 1월 셋째 주 화요일이었다. 그 뒤로 아무것도 없다.
방 안에서 발견된 것들.
이불 한 채. 옷 몇 벌. 작동하지 않는 선풍기. 달력 — 12월에서 넘기지 않은. 소주병 세 개. 로또용지 여러 장, 구석에 차곡차곡 쌓인. 맨 위에 있던 용지가 가장 최근 것이었다.
7, 13, 24, 31, 38, 42.
번호는 여전히 그것이었다.
그리고 가방 안쪽 주머니에서, 접힌 채로 오래된 종이 하나가 나왔다. 펴보니 서류 목록이었다. 주민센터 창구에서 받았던 것. 누군가의 메모가 옆에 붙어 있었다.
박 씨의 글씨였다.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시신을 수습한 건 지자체였다. 무연고 사망자 처리 절차에 따라 화장되었다. 유골은 시립묘지 무연고자 구역에 안치되었다. 행정 서류에는 '고립사 추정'이라고 적혔다.
나중에 박 씨도 그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그날 오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진수 씨를 떠올렸다. 복지관 컴퓨터 앞에서 화면을 들여다보던 옆모습. 서류 기한이 하루 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 표정도 짓지 않던 얼굴.
그녀는 신청서 한 장을 꺼내 오래 바라보았다.
서류 목록은 열두 줄이었다. 각주가 여섯 개였다. 온라인 제출 가능 항목 옆에는 별표가 붙어 있었다. 오프라인 제출 필요 항목 옆에도 별표가 붙어 있었다. 별표의 의미가 달랐지만, 그냥 보면 같아 보였다.
그녀는 신청서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창밖에 해가 지고 있었다.
봄이 되면서 반지하 201호엔 새 세입자가 들어왔다.
이십대 청년이었다. 청년은 창문 아래 사람들의 발목을 내려다보다가, 방 구석에 놓인 작은 휴지통을 발견했다. 안에 뭔가 있었다. 꺼내보니 종이 한 장이었다. 구겨지고 오래된.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7, 13, 24, 31, 38, 42.
청년은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그는 잠깐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휴지통에 넣었다.
창문 너머로 사람들의 발이 지나갔다.
※ 이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서류 목록은 실재한다. 차상위계층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제출 항목이 혼재하며, 유효기간이 제각각이다. 공인인증서가 없으면 시작도 어렵고, 창구 운영 시간은 일하는 사람의 시간과 맞지 않는다. 이진수는 게을러서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 문 앞에 서는 것이,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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