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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고립을 자수하라

 

고립을 자수하라

형사법에는 자수(自首) 제도가 있다. 죄를 지은 자가 스스로 나타나면 형을 감경(減輕)한다. 전국 수십 개 지자체가 운영 중인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신고 포상금'은 그 문법을 복지행정에 그대로 이식했다. 고립이라는 '죄'를 저지른 자가 스스로 신고하면 포상금으로 보상해주겠다는 것이다. 자수하면 광명 찾는다.


이것이 비유가 아님을 성동구 보도자료가 증명한다.

"이웃이나 본인이 직접 위기 상황을 알릴 수 있도록 하고, 위기가구가 실제 수급자로 선정될 경우에는 신고포상금도 지급한다."

내가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스스로 행정에 신고하면, 수급자로 확인됐을 때 돈을 받는다. 구조 요청이 아니다. 자기 고립을 증명해 제출하는 행위를 '신고(申告)'라는 언어로 설계하고, 거기에 포상금을 붙였다. 이웃이 타인을 신고하면 감시(監視)고, 본인이 자신을 신고하면 자수(自首)다. 둘 다 포상금을 준다.

 


이 제도, 성동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동구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서울 광진구(1건당 5만 원, 연 최대 30만 원), 노원구, 경기 부천시(1건당 3만 원), 김포시(1건당 5만 원), 인천 부평구·계양구·동구(1건당 5만 원), 제주특별자치도(2024년 도입, 1건당 5만 원), 경북 포항시, 전남 해남군 - 전국의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해 이 제도를 운영하거나 도입하고 있다.


모두 구조가 같다. '위험해 보이는 이웃을 알려준 행위'에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아니다. 소득·재산 조사를 거쳐 '진짜 자격이 있는 수급자'로 판명될 때만 포상금이 나간다. 철저히 적발(摘發)의 관점이다. 명예사회복지공무원이나 당사자 친족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의무가 없는 순수한 제3자의 제보, 즉 밀고(密告)를 독려하기 위한 체계다.

 


그런데 실적이 없다
이 제도의 현실은 처참하다. 인천의 일부 구는 연간 포상금 지급 건수가 2건, 3건, 6건에 불과했다. 제주시 전체에서 일 년간 단 5건이었다. 행정의 반응은 예측 가능하다. "홍보가 부족하다. 신고 절차를 더 간소화하겠다."


왜 주민들이 신고하지 않는지를 묻지 않는다. 왜 당사자들이 자수하지 않는지를 묻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에, 낙인 때문에, 혹은 이웃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복지 사각지대의 본질이다. 그 심리적 거부감이 제도의 실패를 만들고 있는데, 행정은 그것을 '홍보 부족'으로 읽는다.

 


해외의 선례는 무엇을 말하는가
비슷한 신고 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영국 DWP(노동연금부)는 복지 부정 수급을 신고하는 'National Benefit Fraud Hotline'을 운영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타깃은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 받는 경우', 즉 사기(詐欺)다. 처음부터 범죄 색출의 언어다. 그마저도 접수된 신고의 87%가 아무 조처 없이 종결됐고, Privacy International은 이 시스템이 수급자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다고 비판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범죄 색출용으로도 실패한 모델의 논리를, 취약 계층 발굴이라는 정반대의 목적에 적용했다. 방향도 틀리고, 문법도 틀렸다.

 


숫자가 보여주는 것
같은 성동구 보도자료 안에 이런 수치도 있다. 시범 사업 참여자 47명의 외로움 척도가 감소했다고. 경로당과 성당 같은 익숙한 공간을 활용해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췄다고. 그 섬세함과 자수 포상금 제도가 한 문서 안에 공존한다.


전국에서 단 몇 건의 실적을 내고 있는 이 제도에 매년 예산이 편성되고, 조례가 만들어지고, 확대 시행이 발표된다. 실패의 원인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고립은 범죄(犯罪)가 아니다. 고립사 위험은 유죄(有罪)가 아니다. 건강보험료 체납은 피의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복지행정은, 고립을 처음부터 끝까지 범죄의 언어로 다룬다. 발굴이 아니라 검거(檢擧)고, 연결이 아니라 포획(捕獲)이다.


고립사 예방의 본질은 한 사람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갖는 것'이다. 그 감각은, 내가 스스로를 신고해서 포상금을 받은 순간 소멸한다.

 

...자수해서 5만원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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