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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여행

병원이 죽음을 점령했다


대통령의 국가장이 OO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5일 동안 38만 명이 다녀갔다. 카메라가 병원 장례식장 정문을 비췄다. 전국이 그 장면을 봤다.

 

병원 장례식장도 국가장을 치를 수 있구나.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 공간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그해 가을, 주요 대형병원들이 일제히 장례식장 증축 계획을 발표했다.

병원은 원래 치료하는 곳이었다.


환자가 오면 의사가 봤다. 청진기를 댔다. 혈액을 뽑았다. 영상을 찍었다. 판독했다. 처방했다. 수술했다. 그 모든 행위에 수가가 붙었고 수가가 매출이 됐다. 병원은 그렇게 돌아갔다. 수십 년 동안.


AI가 들어오면서 그 구조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졌다.


처음엔 판독이었다. 흉부 X선, 안저 사진, 피부과 병변. AI의 정확도가 전문의를 넘어섰다는 논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병원들은 AI를 보조 도구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오래가지 않았다.


2033년, AI 진단 정확도가 99.3퍼센트를 기록했다.


인간 의사의 평균은 여전히 78퍼센트였다.


보험사가 먼저 움직였다. AI 진단 결과를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이의가 있으면 인간 의사의 소견을 첨부하라고 했다. 순서가 뒤집혔다. 의사의 소견이 참고자료가 됐다.


외래가 한산해졌다. 처방전 발급 건수가 줄었다. 수술 건수도 줄었다. AI가 달린 로봇이 절개하고 봉합했다. 합병증이 적었다. 재원 기간이 짧아졌다. 병상 회전율이 떨어졌다. 매출이 떨어졌다.


병원 재정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자구책이 나왔다.


호스피스 사업을 시작했다.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일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AI는 통증 조절 타이밍을 더 정확하게 잡았다. 활력징후를 실시간으로 읽었다. 보호자에게 전화를 언제 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인력이 줄었다.


방문 의료를 했다. 의사나 간호사가 집으로 갔다. 수요는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가 이미 환자의 집 안에 들어와 있었다. 혈압, 혈당, 산소포화도, 심전도.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병원 서버가 아닌 AI 플랫폼으로 갔다. 병원이 중간에 낄 이유가 줄었다.
하나씩 줄었다. 내과 외래, 소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문을 닫은 게 아니었다. 그냥 환자가 없어졌다.


남은 건 한 곳이었다.


장례식장.

죽음은 AI가 대신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AI는 죽음을 예측했다. 언제 죽을지 알았다. 어떻게 죽을지도 알았다. 그러나 죽음을 처리하는 일, 시신을 씻기고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고 빈소를 꾸미는 일, 유족의 서류를 받고 화장 일정을 잡는 일. 이것들은 여전히 건물이 필요했다. 공간이 필요했다. 냉장 시설이 필요했다. 허가가 필요했다.


병원은 그 허가를 이미 갖고 있었다.


장례식장 매출이 처음으로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긴 건 2035년이었다. 다음 해에는 60퍼센트가 됐다. 2038년에는 73퍼센트.
병원 이사회 회의록에서 '장례사업부'라는 단어가 '의료사업부'보다 앞에 놓이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다.

건물이 바뀌었다.


외래 진료동 일부가 빈소로 전환됐다. 처치실이 안치실이 됐다. 주차장이 넓어졌다. 문상객 때문이었다. 구내식당은 24시간 운영으로 바뀌었다. 유족이 밤을 새우기 때문이었다.


병원 로비에 헌화대가 상설로 설치됐다. 입원 안내 표지판 옆에 빈소 안내 표지판이 나란히 붙었다. 지하에는 꽃집과 상복 대여점이 들어왔다.


병원은 냄새도 바뀌었다. 소독약 냄새보다 국화 냄새가 강해졌다.

2040년대에 지어진 신축 병원들은 처음부터 다르게 설계됐다.


장례식장이 저층부 중앙에 배치됐다. 접근성을 고려한 설계였다. 임종실은 자연채광이 들어오는 곳에 만들어졌다. 의료장비 창고로 쓰이던 공간은 유족 대기실이 됐다. 수술실은 줄었다. 빈소는 늘었다.


건축 인허가 서류에는 여전히 '종합병원'이라고 적혔다. 의료법이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건물이 무엇인지는 법이 정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가. 어디서 돈이 오는가. 누가 가장 많이 드나드는가.


그 기준으로 보면 병원은 이미 오래전에 바뀌어 있었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었다.


지금은 사람을 보내는 곳이다.


간판만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