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우(忘憂).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능 자리인 동구릉을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고개에 올라 "이제야 근심을 잊었구나"라고 했다는 데서 지명이 생겼다. 숙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도 기록이 있다. 왕이 죽음 걱정을 내려놓은 고개에, 600년 후 일제가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왕의 '근심 없음'이 백성들의 최후 안식처가 된 셈이다.
일제가 이 자리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조선 왕릉 9기가 모여 있는 동구릉 바로 옆에 평민들의 공동묘지를 배치하는 것은 조선 왕조의 품위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숫자로 보는 망우리
1933년 개원. 75만 평 매입, 52만 평을 묘역으로 조성. 1973년 더 이상 쓸 공간이 없어 매장 종료. 40년 동안 약 47,700기의 분묘를 품었다. 한국전쟁 때는 시내 곳곳에 가매장된 시신까지 이곳으로 옮겨왔다. 지금은 이장이 계속 진행되어 현재 묘지는 전체 공원 면적의 4%밖에 남지 않았다.

유관순이 무연고 묘로 묻힌 이유
망우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다.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후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다. 무연고 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때 일본군에 의해 사망했고, 유관순에게는 유골을 수습할 후손이 없었다. 1936년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제 택지개발로 철거되면서 무연고 묘 2만 8,000기를 화장해 망우리에 합동 안치했는데, 유관순의 유골도 그 속에 섞여 들어왔다.
지금 망우리에 있는 것은 무덤이 아니라 합장비다. 독립운동가의 마지막이 무연고 처리였다는 사실이 역사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비문이 없는 무덤 — 조봉암


조봉암은 3.1운동에 참여하고, 제헌국회의원과 농림부장관을 지냈으며,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이나 이승만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정치인이다. 1959년 간첩 혐의로 사형당했다. 마지막에 술 한 잔 달라는 소원도 거부당한 채 교수대에 섰다. 망우리에 묻힌 그의 묘비에는 지금까지 비문이 없다. 창령 조씨 문중이 비문 제작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비석은 여전히 비어 있다. 52년 만에 뒤집힌 판결보다 빈 비석이 더 많은 말을 한다.
반쪽짜리 무덤 — 이중섭
화가 이중섭의 유해는 절반만 망우리에 있다. 나머지 절반은 일본 처가묘에 합장되어 있다. 가난과 이별 속에 평생을 살다 1956년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사망한 이중섭의 묘비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일본에 있는 두 아들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죽어서도 분단된 무덤이다.

도산 안창호의 가묘
안창호는 1938년 망우리에 묻혔다가 1973년 도산공원으로 이장됐다. 그런데 가묘가 망우리에 남아 있다. 안창호가 생전에 망우리에 있는 동지 유상규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장 후에도 원래 자리에 비석을 돌려놓은 것은 그 유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다.
방정환의 숨겨진 얼굴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그런데 그가 3.1운동 직후 독립신문을 몰래 인쇄해 배포하다 체포된 사실, 이후에도 일본 경찰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묘비명 동심여선(童心如仙),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는 글씨는 옆 무덤의 오세창이 썼다. 독립운동가들이 죽어서도 서로 곁에 있다.
한용운 — 광복 1년 전에 눈을 감다


님의 침묵을 쓴 만해 한용운은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였다. 광복을 1년 남겨두고 1944년 숨을 거뒀다. 조금만 더 버텼다면. 그의 묘 옆에는 부인의 묘가 나란히 있다. 스님이면서 대처승을 주장하고 직접 실천한 사람다운 마지막이다.


망우리는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판이다. 식민, 전쟁, 독재, 죽음, 망각, 복권. 이 모든 것이 5.2km 순환 산책로 위에 누워 있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와 종종 비교되지만, 거기보다 훨씬 더 아프고 훨씬 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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