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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여행

안치호텔 '편안'의 기적... 박명규의 도전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안산 단원구 골목 안쪽, 박명규(53)가 임대해 운영하던 장례식장은 24평짜리 빈소 두 개가 전부였다. 부속 병원은 작은 요양병원이라 임종 환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외부 수요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나마도 해가 갈수록 악화됐다. 2025년 기준 이용자의 70%가 무빈소 장례를 선택했다. 빈소를 차리지 않으니 3일 내내 음식을 준비하고 조문객을 맞을 공간이 필요 없었다. 유족들은 고인을 안치만 해달라고 했고, 발인 당일 아침에야 나타났다. 장례식장은 냉장고 역할만 했고, 매출은 안치료·입관실 사용료 정도에 그쳤다.


월 임대료 480만 원, 직원 인건비, 냉장 설비 전기요금, 용품 재고... 고정 지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박 씨는 엑셀 파일을 열 때마다 숫자가 무서웠다.


"이걸 계속 붙들고 있는 게 맞나."

 


힌트는 일본에 있었다


전환점은 유튜브 영상 하나였다. 일본 도쿄 스가모에 있는 안치호텔(安置ホテル) 사례였다. 호텔이나 맨션을 리노베이션해 고인을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안치하고, 가족이 숙박하며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공간.. 일본에서는 이미 고진호텔(故人ホテル) 혹은 안치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착 중이었다.


핵심은 단순했다. 냉장 보관만 하던 기존 안치 공간을 '머무는 이별'의 장소로 바꾸는 것이었다. 유족이 고인 옆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빈소를 차리는 비용과 수고 없이도, 이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곳.


박 씨는 무릎을 쳤다. 무빈소를 선택한 유족들이 원하는 건 절차 간소화지, 이별 자체의 포기가 아니다.

외진 모텔, 오히려 그게 맞았다


수소문 끝에 안산 외곽, 반월공단 뒤편 야산 자락에 있는 8층짜리 모텔을 발견했다. 코로나 이후 투숙률이 급락해 임대로 내놓은 상태였다. 보증금은 장례식장 권리금을 정리해 충당했다.


주변은 조용했다. 병원도 없고 번화가도 없었다. 처음엔 그게 단점 같았다. 나중엔 그게 최고의 장점이 됐다.


이별은 소란하지 않아도 됐다. 오히려 조용한 산자락,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새벽의 고요함이 유족들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리노베이션 콘셉트는 세 층위로 설계했다.

1층 이별실 : 빈소 개념을 최소화한 '이별의 방' 2개. 종교 색을 지우고 어느 가정의 거실처럼 꾸몄다. 국화 화환 대신 고인이 좋아하던 꽃을 놓을 수 있는 선반. 영정 사진 대신 생전 사진을 빔으로 띄울 수 있는 벽면. 향은 조문객용 향 대신 아로마로 바꿨다.

 


2·3층 대면안치실 : 각 층 객실은 항온항습 저온 안치 공간으로 전환됐다. 핵심 설비는 목재 프레임 저온 안치장(低溫 安置欌) 이다.


외형은 전통 목가구 형태를 취했다. 짙은 원목 프레임에 전면 강화유리 패널을 달아, 고인이 마치 편안히 누워 계신 모습 그대로 가족이 바라볼 수 있다. 냉장 기능을 갖춘 장비이지만, 스테인리스 냉장고나 병원 안치대와는 전혀 다른 인상이다. 가족들은 "냉장고에 모신다"는 거부감 없이, 고인 곁에 자연스럽게 앉을 수 있다.


내부는 흰 린넨으로 단정히 정돈되며, 온도는 2~4℃ 항온 유지된다. 전면 유리는 이중 구조로 결로가 생기지 않아 고인의 얼굴이 항상 맑게 보인다.


안치장 앞에는 낮은 제물상을 두었다. 향로, 묵주나 십자가 등 종교 용품은 유족 선택에 따라 올리거나 내릴 수 있다. 바닥엔 전통 문양 카펫과 방석이 깔려 있어 유족이 오래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다.


옆에는 작은 좌식 다탁을 두었다. 차를 마시며 고인 곁을 지키는 것이 이 공간의 기본 풍경이다.


조명은 전통 한지 등과 목재 스탠드 조명을 조합했다. 형광등은 없다. 병풍은 문인화·책가도 계열로 골랐다... 종교색 없이 품위 있는 배경이 되도록.


4~8층 유족 숙박 객실 : 기존 모텔 객실을 깔끔하게 리노베이션. 1박 기준 요금을 받되, 안치 계약 유족에게는 할인 제공. 조리가 가능한 객실도 두어 유족이 직접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차릴 수 있게 했다.

상호는 '편안(便安)' 으로 정했다. 편안히 보내드린다는 뜻과, 가족도 편안히 머문다는 뜻을 동시에 담았다.

첫 이용자


개업 후 첫 번째 유족은 70대 어머니를 잃은 사남매였다. 넷 다 직장이 달랐고 사는 곳도 달랐다. 장례식장 빈소는 사흘간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무빈소로 하려니 어머니를 냉장고에만 두는 것 같아 마음이 걸렸다.


편안을 선택했다. 사남매는 3박 4일을 머물렀다. 어머니 안치실 유리 앞에서 밥을 먹었고, 밤에는 각자 방에서 잤다. 막내딸은 어머니가 좋아하던 된장찌개를 객실 조리대에서 직접 끓여 가져다 놓았다.


발인 당일, 가족들은 "이렇게 잘 보낼 수 있을 줄 몰랐다"고 했다.


박 씨는 그 말을 듣고 사무실에서 혼자 울었다.

 


결과는 숫자가 말해줬다


6개월 후, 매출은 기존 장례식장 대비 3.2배였다. 안치 기간이 길어지면서 단가가 올랐고, 숙박 매출이 더해졌다. 부가 수익도 생겼다. 고인 메이크업, 꽃장식, 도시락 배달 연계, 유품 정리 패키지, 사진 영상 제작 서비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SNS에 올라온 유족 후기 몇 개가 공유되면서 안산을 넘어 수원, 시흥에서도 문의가 들어왔다. 외진 위치는 오히려 차별화 요소로 작동했다... "조용해서 좋았다"는 후기가 반복됐다.

프랜차이즈, 그다음 그림


박 씨가 노트에 적어두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다.


고인호텔은 입지 논리가 일반 상권과 다르다. 번화가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조용하고, 차로 접근 가능하며, 주차가 넉넉하면 된다. 도심 외곽의 폐업 모텔, 노후 여관이 최적 후보지다.


프랜차이즈 모델의 핵심은 세 가지로 정리됐다.


첫째, 공간 전환 패키지... 기존 숙박 시설을 안치호텔로 바꾸는 설계·인허가·시공 표준화. 일본에서는 여관업 신고 시설을 시신 안치에 활용하는 법적 해석이 정착돼 있고, 한국도 유사한 경로 검토가 가능하다.


둘째, 운영 매뉴얼... 직원 응대, 유족 상담, 안치 기술, 청결 관리. 장례지도사 자격자를 최소 1인 확보하는 것을 가맹 조건으로 한다.


셋째, 브랜드 공유와 온라인 예약 플랫폼... '편안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전국 가맹점이 하나의 예약 시스템에 연결되는 구조. 유족이 전국 어느 지역에서든 가까운 편안을 찾을 수 있게 한다.


박 씨가 상정한 1호 가맹 대상은 경기·충청권의 소도시 모텔 운영자들이었다. 숙박업 수요가 줄어 힘들어진 이들에게, 전환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이별에도 설계가 필요하다


박 씨는 요즘 이렇게 말한다.


"장례식장을 할 때는 유족을 3일 만에 내보내야 했어요. 공간이 다음 사람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유족이 원하는 만큼 있을 수 있어요. 사흘을 있는 분도 있고, 닷새를 있는 분도 있어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이별은 빠르다고 잘하는 게 아니니까."


무빈소 장례가 늘었다는 건 사람들이 이별을 포기했다는 게 아니었다. 형식을 걷어낸 이별을 원한다는 신호였다. 박명규는 그 신호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조금 다르게 읽었다.

'편안 안치호텔'은 현재 4호점 개설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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