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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대통령도 병원 장례식장으로 가는 나라


한국에는 왜 국가를 대표하는 장례시설이 없는가


국립극장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있다. 국회의사당도 있고, 국립서울현충원도 있다.


그런데 정작 죽음을 위한 국가적 공간은 없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마지막은 대부분 병원 장례식장에서 시작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국가장은 국회의사당이나 광장에서 치러졌지만, 정작 조문과 안치, 입관은 병원 지하 영안실에서 이루어졌다.


국가의 이름으로 장례를 치르면서, 국가의 공간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화장률과 현대적인 장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전국에 수백 개의 민간 장례식장이 있고, 최신 시설의 공설 화장장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 애도와 집단적 기억을 담아낼 상징적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 원수의 마지막조차 병원 부속시설에 의존하는 구조가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다.


반면 일본에는 아오야마 장의소(青山葬儀所)가 있다.

 


1901년 설립된 이 시설은 1925년 도쿄시가 인수해 공영 장례시설로 운영해 왔다. 전 총리 요시다 시게루의 국장, 오히라 마사요시 전 총리의 합동장,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의 장례를 비롯해 수많은 정치인과 문화인의 마지막 길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대중문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2007년 세상을 떠난 ZARD의 보컬 사카이 이즈미의 음악장도 아오야마 장의소에서 열렸다. 「負けないで」를 비롯한 명곡으로 시대를 위로했던 그녀를 보내기 위해 수많은 팬들이 밤새 헌화 행렬에 참여했다. 장의소는 그녀를 상징하는 푸른색과 흰색 꽃들로 가득 채워졌고, 팬들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한 사람의 죽음이 단순한 장례 절차를 넘어 한 시대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문화적 사건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지금의 구조로는 불가능하다. 병원 장례식장에 팬들이 줄을 서서 밤을 새울 수는 없다. 영안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다. 공간이 없으면 의례도 없다. 의례가 없으면 기억도 흐릿해진다.


더 주목할 것은 일본의 선택이다.


1974년 건립된 아오야마 장의소가 노후화되자 일본은 시설을 없애지 않았다. 2021년 운영을 중단하고 철거한 뒤 현재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다.(올해 10월 완공 예정) 100년 넘게 이어진 국가적 추모 공간을 미래 세대에 다시 물려주기로 한 것이다. 부수고 다시 짓는 데도 국가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 의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국과 다르다.


영국에는 웨스트민스터 홀이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이곳에 안치됐고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조문했다. 방송은 나흘간 생중계했고, 전 세계가 그 공간을 함께 바라봤다. 미국에는 국회의사당 로툰다와 워싱턴 국립대성당이 있다. 프랑스에는 앵발리드가 있다. 나폴레옹이 그곳에 있고, 드골이 거기서 추모됐다. 중국에는 팔보산 혁명공묘가 있다. 공간은 곧 국가의 기억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무엇이 있는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나라, 우주 발사체를 만들고 원전을 수출하는 나라, K-컬처를 세계에 팔고 있는 나라에서 죽음만큼은 여전히 병원 지하에 종속되어 있다.


반도체 설계는 국가 의제다. BTS 공연장은 수천억 원을 투입한다. 올림픽 유치에는 국력을 건다. 그런데 국가적 죽음을 담을 공간 하나가 없다.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국가의 의제로 생각해본 적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국가가 기억해야 할 죽음, 사회가 함께 애도해야 할 죽음, 한 시대를 대표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담아낼 공간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국립극장이 있듯, 국립박물관이 있듯,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적 장례시설 또한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건물 하나를 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존중하며,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에 대한 문명의 문제다.


일본은 100년 된 장례시설을 허물고 다시 짓고 있다.


한국은 아직도 병원 지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도 병원 장례식장으로 가는 나라.


초라하고 부끄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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