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조에 가입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언젠가 필요한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상조는 미래의 장례서비스를 현재의 돈으로 미리 계약하는 제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소비자가 매달 돈을 납입할 때, 과연 그 돈은 미래의 장례서비스를 위해 쌓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거대한 회원 모집 조직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은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다.
상조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무엇일까. 장례식장일까. 봉안시설일까.
대부분 아니다.
장례식장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 상조업체도 많고, 봉안시설 역시 별도 사업자의 영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장례가 발생하면 상조회사는 기존 장례 인프라와 협력업체를 연결하고 의전 인력을 파견한다. 즉 상조회사가 판매하는 것은 시설이 아니라 회원과 네트워크다.
그렇다고 장례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장례는 상당한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이다. 빈소 이용료, 수의, 관, 운구, 화장 예약 대행, 49재 연계까지 한 건의 장례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작지 않다. 그럼에도 상조회사의 경영 지표는 장례 건수나 서비스 품질이 아니라 회원 수와 선수금 규모로 평가된다. 장례에서 수익이 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익을 키우는 방식이 서비스 혁신이 아니라 회원 확보라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여기서 소비자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나는 장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회원 모집 사업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인가.
상조업계는 소비자가 납입한 선수금을 보전하고 있으며 법적 보호장치도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보호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할부거래법상 선수금 보전 비율은 납입금의 50%에 불과하다. 폐업 시 소비자가 실제로 돌려받은 금액이 납입 원금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례는 반복되어 왔다. 법적 보호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소비자 자금이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수익 구조와 서비스 혁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장례에서 수익이 발생한다면, 그 수익의 일부는 서비스 개선과 연구개발에 재투자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조업계에서 연구개발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임종 돌봄 프로토콜 개발도, 유족 심리지원 체계 구축도, 새로운 장례 형식에 대한 탐구도 없다. 수익은 나지만 그 수익이 죽음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순환하지 않는다. 자동차 회사는 더 나은 차를 만들기 위해 투자한다. 병원은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연구한다. 상조는 더 나은 장례를 위해 무엇을 연구하는가. 뚜렷한 답이 없다.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나타났다.
어느 회사가 더 품격 있는 입관 서비스를 제공하는가보다 어느 회사가 더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는가가 시장 점유율을 결정한다. 장례식장에서의 경쟁보다 텔레마케팅, 방문판매, 결합상품 판매 경쟁이 더 치열하다. 상조상품은 점점 장례와 무관한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크루즈 여행.
안마의자.
가전제품.
렌털 서비스.
이것은 소비자 필요에서 출발한 설계가 아니다. 가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영업 전략이다. 소비자는 장례를 준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렌털 계약을 하고 있는 경우가 생긴다. 납입 기간이 길고 중도 해지 시 환급률이 낮기 때문에 소비자는 계약에 묶인다. 처음 계약한 금액과 실제 장례비용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민원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현재의 많은 상조상품은 장례서비스 자체보다 장례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심감을 판매한다. 그 안심감에 수십만 원씩 수년을 납입한다. 그러나 그 안심감은 반드시 상조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례비용은 별도로 준비할 수도 있고, 장례지도사를 직접 선택할 수도 있으며, 가족장이나 무빈소 장례를 선택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상조가 장례 준비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조산업은 여전히 수십 년 전의 회원 모집 모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상조가 구식 모델에 머물러 있다는 것만이 아니다. 정작 혁신이 필요한 곳에 상조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죽음의 문제는 장례 의전의 품질이 아니다. 혼자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발견하는가.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을 누가 책임지는가. 디지털 자산과 계정은 사후에 어떻게 처리되는가. 독거노인의 임종 과정을 누가 곁에서 지키는가. 이 질문들은 더 이상 복지나 행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을 업으로 삼는 산업이 스스로 답해야 할 영역이다. 연구개발을 하는 산업이라면 이 문제들을 진작에 사업 영역으로 포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조는 그러지 않았다. 수익은 회원 모집으로 확보하고, 문제는 사회에 남겨두었다.
결국 상조의 핵심 문제는 하나로 수렴한다.
죽음을 다루는 산업이 죽음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례에서 수익이 나고, 회원에서 선수금이 쌓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더 나은 죽음을 위한 투자는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는 죽음을 준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산업은 죽음을 팔고 있다. 연구하지 않는 산업은 성장하지 않는다. 다만 팽창할 뿐이다. 그 팽창의 비용을 지금 소비자가 매달 나눠 내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는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미래의 장례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회원 모집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분담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산업이라면,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상조의 미래는 더 많은 회원을 모집하는 데 있지 않다. 소비자가 납입한 돈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 증명하는 데 있다. 죽음 앞에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묻는 데 있다. 연구하고, 개발하고, 새로운 죽음의 문제에 응답하는 데 있다. 그 증명이 없는 한, 상조는 장례산업이라기보다 회원산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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