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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엔딩

고립사, 유럽은 어떻게 막고 있을까

우리가 고독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고립사다

법정 스님은 고독과 고립을 이렇게 구분했다.

"고독은 자신으로부터의 분리이며, 마음이 고요한 상태이다. 홀로 있음을 기뻐하고 즐기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고독은 스스로가 선택한 기쁨이자 생산적인 시간이다. 고독은 홀로 있어도 열려 있다."

"고립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는 것으로, 그들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고립은 함께 있어도 막혀 있다."

짧은 말이지만 핵심이 담겨 있다. 고독은 내가 선택한 홀로 있음이고, 고립은 관계에서 잘려나간 상태다. 고독한 사람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고, 고립된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닫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고독사라는 말을 쓴다


2021년 시행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매년 발표되는 고독사 통계. 언론의 고독사 보도.


이 모든 곳에서 고독사로 불리는 죽음의 실제 내용을 보면, 오랫동안 가족도 이웃도 없이 단절된 채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숨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죽음이다.


이건 고독사가 아니다. 고립사다.


법정 스님의 언어로 돌아가면 더 분명해진다. 고독은 열려 있다. 홀로 있어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런 사람이 홀로 임종을 맞이했다면, 그것은 고독한 죽음일 수 있다. 슬프지만 존엄하다.


반면 고립은 막혀 있다. 관계망이 끊기고,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망 사실조차 한참 후에야 발견된다. 이것은 고립된 죽음이다. 사회가 한 사람을 놓아버린 결과다.

단어 하나가 정책의 방향을 바꾼다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고독을 막겠다고 하면, 홀로 있는 상태 자체가 문제가 된다. 혼자 사는 사람, 조용히 지내는 사람,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사람이 관리와 개입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혼자 살아도 연결되어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막아야 할 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다. 관계가 끊기는 것, 아무도 그의 안녕을 확인하지 않는 것, 위기의 순간에 손 내밀 곳이 없는 것. 그것이 문제다.


일본에서도 같은 논의가 있었다. 행정 실무에서는 孤立死(고립사)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는 내부 검토가 이루어졌고, 후생노동성은 실제로 '고립사 제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썼다. 미디어에서 고독사가 더 많이 쓰이는 건 '독(獨)'이라는 글자가 시선을 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용어의 선택이 감각적 이유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엔딩연구소는 이렇게 구분하고자 한다.


고독사(삶의 방식) — 홀로 사망했더라도 가족, 친구, 이웃 등 사람들과의 연결이 있었던 경우. 임종의 순간에 곁에 아무도 없었을 뿐, 그는 삶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고립사(사회의 실패) — 홀로 사망했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사회적 연결이 끊겨 있었던 경우. 사망 사실이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단절의 증거다. 


같은 '홀로 죽음'이지만 전혀 다른 죽음이다. 하나는 삶의 방식이고, 하나는 사회의 실패다.


지금 우리가 고독사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고립사다. 이름을 바로잡는 것이 문제를 바로 보는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유럽은 이 고립사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한국에서 고립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1년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고, 매년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숫자는 조금씩 늘어난다. 2023년 기준 3,661명. 하루에 10명꼴이다.


그렇다면 유럽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찾아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서구 유럽 국가들은 한국처럼 "고립사 발견·처리" 체계를 만드는 대신, 문제를 전혀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고립사는 결과다. 고립 자체가 원인이다."


그래서 이들의 정책은 죽음 이후가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사회적 고립 자체를 차단하는 데 집중한다.

 


영국, 세계 최초로 '고립 전담 장관'을 만든 나라


2016년,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조 콕스(Jo Cox)가 극우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생전에 지역구 주민들 사이에서 목격한 고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 콕스 고독 위원회'를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위원회는 그녀의 사후에도 활동을 이어갔고, 2017년 최종 보고서에서 정부에 한 가지를 요구했다. "고립·고독 전담 장관을 임명하라."


2018년 1월, 테레사 메이 총리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세계 최초의 고독 담당 장관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해 10월에는 세계 최초의 국가 고립·고독 감소 전략도 발표됐다. 9개 부처가 각자의 의무를 명시하는 방식이었다.


영국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낸 가장 독창적인 제도가 바로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이다. 원리는 단순하다. 병원을 찾은 환자가 사실은 의료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고립, 빈곤, 주거 불안 때문에 온 것이라면, 의사가 약 대신 지역 사회 활동을 '처방'한다. 자전거 교실, 미술 수업, 박물관 방문, 우정 서비스 같은 것들이 처방전에 적힌다.


황당하게 들릴 수 있지만, 배경을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국 GP(가정의) 방문의 약 5분의 1은 순수한 의료 문제가 아니었다. 고립, 돈 걱정, 주거 문제로 의사를 찾아온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영국 NHS는 2024년까지 90만 명을 사회적 처방으로 연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현재 25개국 이상이 이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


물론 비판도 있다. 고립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복지 예산을 삭감하면서 자전거 교실로 고립을 해결하려 한다는 냉소도 나온다. 그럼에도 사회적 고립을 국가 의제로 끌어올린 것 자체는 분명한 성과로 평가받는다.

 


스웨덴, 복지국가에서도 고립사는 일어난다


스웨덴은 아이러니한 사례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체계, 탄탄한 사회 안전망, 높은 삶의 질. 그런 스웨덴에서 홀로 맞는 죽음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30년 전 스웨덴 장례식의 평균 참석자 수는 49명이었다. 지금은 24명이다. 스톡홀름에서는 사망자 10명 중 1명이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안장된다.


2015년 스웨덴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이 화제가 됐다. '스웨덴식 사랑의 이론(The Swedish Theory of Love)'이었다. 스웨덴이 수십 년간 쌓아온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사회적 고립을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한다. 스웨덴 사람들이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 조용히 지내는 것,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고독이다. 문제는 그 독립성이 어느 순간 연결망의 단절로 이어질 때다. 고독이 고립으로 전환되는 그 지점이 스웨덴이 직면한 과제다.


스웨덴은 이 문제를 뒤늦게 직시했다. 2024년 3월 공중보건청이 고립 실태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고, 2025년 국가 전략 발표를 예고했다. 고립을 세 가지 층위로 나눠 접근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기적으로 교류할 사람이 없는 사회적 고립,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정서적 고립, 세상과 단절된 느낌의 실존적 고립. 각각의 층위에 맞는 개입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덴마크, "2040년까지 고립을 절반으로"


덴마크는 가장 대담한 목표를 세운 나라다.


2023년, 덴마크 정부 지원 아래 115개 기관이 모여 국가 최초의 고립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적십자와 노인 단체 Ældre Sagen이 공동으로 이끄는 이 파트너십은 지자체, 기업, 시민사회를 망라한다. 목표는 선명하다. 2040년까지 16세 이상 덴마크 인구의 사회적 고립 비율을 절반으로 줄이겠다.


왜 이렇게까지 나섰을까. 2021년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 인구의 12.4%가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다. 2017년(8.3%)에 비해 4년 만에 크게 늘었다. 연간 사회적 비용은 70억 크로네, 우리 돈으로 1조 3천억 원이 넘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은 연결된 사람보다 평균 10년 일찍 사망한다.


덴마크가 가장 먼저 꺼낸 카드는 의외로 낙인 제거다. 고립을 개인의 실패나 수치스러운 일로 보는 인식부터 바꾸자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락해도 됩니다"라는 메시지가 캠페인의 핵심이다. 이와 함께 고립 연구·지식 센터 설립,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심리 문제에 대한 치료 지원도 행동계획에 담겼다.

 


이들의 공통점


영국, 스웨덴, 덴마크. 접근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인식은 하나다.


고립사는 행정 처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살아있는 사람을 얼마나 연결했느냐의 문제다.


고립사 사망자를 발견하고, 시신을 수습하고, 무연고 장례를 치르는 것. 물론 이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유럽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뒤의 수습이다. 진짜 정책은 그 이전에 있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는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


한국은 지금 이 죽음을 고독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 유럽 국가들이 막으려는 것은 고독이 아니다. 고립이다. 혼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연결이 끊긴 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막아야 하는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