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 원짜리 존엄, 공영장례의 비정한 역설

고립된 죽음의 시대, 우리가 마주한 낯선 풍경
누구에게나 삶의 끝은 찾아오지만, 그 끝을 배웅하는 풍경은 기괴할 정도로 쓸쓸해지고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9년 2,655명에서 2023년 5,134명으로 불과 4년 사이 두 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과거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치러지던 '애도'의 영역이 이제 '행정'의 영역으로 급격히 편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공영장례'의 시대, 국가가 죽음의 마지막을 책임진다는 선언은 일견 인도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존엄'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행정적 편의주의와 마주하게 됩니다.
가족 73%가 외면한 죽음, 누구를 위한 '추모의 연극'인가
공영장례의 가장 시린 단면은 무연고 사망자 상당수에게 사실 '연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 중 연고자가 있음에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비율이 무려 73%에 달합니다. 가장 가까웠던 혈육조차 등을 돌린 죽음 앞에, 생판 모르는 타인들이 모여 시민의 세금으로 향을 피우고 헌화하는 행위는 진정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고인과 생전에 단 한 번의 눈맞춤도 없던 이들이 치르는 형식적인 예우는 자칫 살아남은 자들의 부채감을 덜기 위한 '사회적 연극'으로 전락할 위험이 큽니다.
"가족이 거부한 시신을 국가가 예산을 들여 '존엄한 마무리'라고 명명하며 의례를 치르는 것은, 죽음의 본질적인 고립을 해결하기보다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행정적 장치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존엄은 화려한 제사상이나 보여주기식 조문객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이 끝까지 고립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의례화는 죽음의 구조적 원인을 외면한 채 국가가 면피용으로 제공하는 사후 서비스에 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후 복권'이 된 존엄, 당신이 죽는 지역에 따라 매겨지는 가격표
국가는 2023년 '장사법(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며 지자체의 공영장례 수행을 법적 의무로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법이 보장한다는 그 '존엄'의 가치는 당신이 어디에서 숨을 거두느냐에 따라 철저히 차별화되는 '버려짐의 지리학'을 따릅니다.
현재 공영장례 지원 단가는 서울이 234만 원인 반면, 강원 영월은 단 25만 원에 불과합니다. 무려 19.8배에 달하는 '존엄의 격차'입니다. 예산이 풍족한 곳에서는 빈소를 차리고 추모의 시간을 갖지만, 재정이 열악한 곳에서는 법적 의무가 무색하게 여전히 화장장으로 직행하는 '처리'의 문법이 작동합니다. 25만 원이라는 금액은 법의 정신을 실현하기는커녕, 국가가 스스로 선포한 보편적 가치를 비웃는 수준입니다. 돈이 있으면 '추모'를 받고, 돈이 없으면 '처리'되는 이 구조는 공영장례가 표방하는 인도주의의 허구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사후의 향 한 번보다 시급한 '살아있을 때의 손길'
현행 공영장례의 근본적인 결함은 이것이 철저히 '사후 수습'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1인 가구의 고립사와 무연고 사망은 경제적 빈곤, 건강 악화, 관계의 단절이 빚어낸 비극적 결과물입니다. 즉, 공영장례라는 결과값이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전 돌봄' 시스템이 처참하게 실패했음을 증명하는 기록지입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왜 그들이 생전에 겪어야 했던 사회적 고립에는 인색하면서, 죽고 난 뒤의 빈소 설치에는 선뜻 세금을 쓰는가? 이것은 명백한 '우선순위의 오류'입니다. 죽은 뒤에 제공되는 '사후 서비스'보다 간절한 것은 그들이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존엄하게 숨 쉴 수 있게 하는 '사전 케어'입니다. 장례라는 결과물을 포장하기보다, 고립사 예방이라는 과정에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국가가 진정으로 죽음을 대하는 예의일 것입니다.
'처리'를 넘어선 '연대'의 장례를 향하여
공영장례는 단순히 이름 없는 시신을 치우는 행정 서비스나 국가의 면피용 의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한 개인의 삶을 기억하고, 그 죽음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연대적 약속'이어야 합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되지 않는다"는 말처럼, 진정한 장례의 완성은 예산의 집행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회복에 있습니다. 지자체 형편에 따라 존엄의 높낮이가 결정되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생전의 고립을 막는 통합적 복지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금으로 치르는 이 장례가 단지 죽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행정적 수단인지, 아니면 떠난 이의 자취를 진심으로 배웅하는 연대의 손길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금으로 사는 것이 진정 고인의 존엄인지, 아니면 우리 자신의 편안한 양심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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