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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뉴스

2031년, 온 산에서 파묘가 시작된다

 

장사법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항이 하나 있다. 시한부 매장 제도다. 국내에서 매장은 30년까지만 허용되고, 1회 연장해도 최장 60년이 한계다. 기한이 끝나면 파내어 화장한 뒤 봉안하는 것이 법이 정한 수순이다.


지금 당장은 실감이 잘 안 된다. 그러나 사용 기한이 2015년 12월에 30년으로 연장되면서 첫 만료 기한은 2031년 1월로 확정됐다. 연장 신청을 하지 않은 묘부터 파묘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시적 매장 제도의 적용 대상이 되는 묘는 전국에 64만 5000여 기로 파악된다. 이는 합법적으로 신고된 수치이고, 신고되지 않은 묘나 연고가 끊긴 무연분묘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2031년부터 그 자리들이 법 앞에 강제로 열린다. 파묘전쟁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이 조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한부 매장 제도는 화장률이 35% 수준이었을 때 매장 묘지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다. 2001년 당시 화장률은 38.5%였다. 지금 한국 화장률은 94%다. 이미 자연스럽게 화장이 주류가 된 사회에서, 남은 6%를 법으로 강제 정리하겠다는 제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행정 편의와 국토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죽음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구조다. 죽음의 철학도,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고려도 없이 만들어진 조항이 지금 수십만 개의 마지막 자리를 흔들고 있다.


왜 이런 법이 유지되는가. 간단하다. 죽은 사람은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묘는 정말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토 효율'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 번쯤 물어야 한다. 효율, 누구를 위한 효율인가.


30년, 60년의 시한을 걸어두고 묘지를 비워내는 논리의 끝에는 언제나 개발이 있다. 산 중턱의 공원묘지, 도시 외곽의 선산 부지, 한때 조상의 자리였던 그 땅은 비워지는 순간 개발 가능 토지가 된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물류센터가 생기고, 도로가 뚫린다. 망자의 자리를 강제로 정리하는 법이 결과적으로 부동산 개발업자와 건설 자본에 가장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죽은 자의 자리를 비워내는 것은 산 자의 욕망을 위한 공간 확보다. 장사법의 시한부 매장 조항은 문화 정책이 아니라 개발 논리의 산물이다. 망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망자의 땅을 노리는 자들에게 유리한 법이다.

왜 굳이 파야 하는가.


이미 묻혀 있는 자리, 그 자리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안 되는가. 방법은 세 가지다. 이미 세계가 먼저 실험하고 있다.


첫 번째. 그 자리 그대로 수목장, 자연장으로 전환한다.


굳이 파낼 이유가 없다. 30년이 지난 유해는 이미 상당 부분 자연으로 돌아가 있다. 그 위에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된다. 납골당으로 옮기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비용도 적게 들고, 남겨진 가족에게도 덜 폭력적이다. 파묘는 산 사람이 치러야 할 감당하기 어려운 의식이다. 나무를 심는 것은 그렇지 않다.


현행 자연장지 규정을 조금만 손보면 된다. 기존 묘지를 자연장지로 전환하는 특례 조항 하나면 충분하다.

 


두 번째. Lift & Deepen, 영국의 방식이다.


영국에서는 기존 묘에 있는 유해를 꺼낸 뒤 더 깊이 파고 원래 유해를 아래에 재안장하여, 위쪽 공간에 새 매장을 허용하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런던 매장 당국은 이 방식으로 75년 이상 된 개인 묘를 재활용하는 제한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 정부 차원에서는 이 제도의 전국 확대를 오랫동안 검토해 왔다. 국토가 좁다는 이유로 파묘를 강제하는 나라가, 같은 땅을 겹쳐 쓰는 방식은 왜 외면하는가. 묘지의 수직 활용이다.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 번째. 묘지 위에 태양광을 올린다.


국토 효율을 따지고 싶다면 이 방법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방치된 묘지, 관리 주체가 없는 무연고 묘역, 공원묘지의 유휴 공간에 태양광 캐노피를 설치한다. 망자의 자리를 에너지 생산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파묘하지 않아도 국토 효율 문제는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풀 수 있다는 뜻이다. 땅을 비워 팔지 않아도 그 땅은 충분히 쓸모 있다.

파묘는 해결책이 아니다.


30년 기한이 도래한다고 해서 유해를 강제로 꺼내 화장하고 납골당에 밀어 넣는 것이 국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인가. 그것이 정말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그 땅을 원하는 누군가를 위한 선택인가.


자연장 전환, Lift & Deepen, 태양광 복합 활용. 세 가지 방향 모두 현행 법과 기술 안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의지와 철학이다. 죽음을 행정 처리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리고 개발 논리 앞에 망자의 자리를 지켜내려는 최소한의 용기다.


2031년까지 시간이 없지 않다.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