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물로 화장한다.'
처음 들으면 농담처럼 들린다. 화장(火葬)은 말 그대로 불로 시신을 태우는 장례 방식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지금, 불 대신 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장례 방식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아쿠아메이션(Aquamation)' 또는 '워터 크리메이션(Water Cremation)'이라고 부르고, 학술적으로는 알칼리 가수분해(Alkaline Hydrolysis)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아직은 일반인에게 낯선 기술이지만, 친환경 장례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호주에서는 새로운 선택지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알칼리 가수분해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분해 과정을 인위적으로 빠르게 재현한 기술이다. 밀폐된 스테인리스 용기에 시신을 안치한 뒤 물 약 95%와 수산화칼륨 등 알칼리 용액 약 5%를 넣고 가열하면 연조직은 수 시간 안에 분해되고 뼈만 남는다. 저압식 장비는 약 93℃에서 10시간 이상, 고압식은 150℃ 안팎에서 4~6시간 정도 처리한다. 이후 남은 뼈를 세척·건조해 곱게 분쇄하면 유가족에게 전달되는 유골분이 된다. 최종 결과물은 일반 화장 후 유골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과정에서는 화염도, 연기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이 기술이 처음부터 장례를 위해 개발된 것은 아니다. 1888년 영국에서는 동물 사료 제조를 위한 공정으로 알칼리 가수분해 기술이 특허를 받았고, 이후 수의학과 연구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반려동물 장례 시장이 성장하면서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고, 사람을 위한 장비는 2005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다. 호주에서는 2010년 장례업계 종사자인 존 험프리스가 이 기술을 소개하며 '아쿠아메이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관련 산업이 조금씩 성장했다.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진 계기는 2021년 12월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자신의 장례 방식으로 알칼리 가수분해를 선택한 것이다. 평소 환경보호를 강조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 선택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장례업계에서는 "투투 대주교 한 사람의 선택이 수년간의 홍보보다 더 큰 효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렇다면 현재 호주에서는 어디에서 물화장을 이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호주의 장례 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호주는 연방정부가 아니라 각 주(State)가 장례와 묘지 관련 법률을 따로 관리한다. 따라서 어느 주에서는 합법이고 어느 주에서는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으며, 법적으로 허용됐더라도 실제 시설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자료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 보이는 것이다.
현재 가장 앞서 있는 지역은 빅토리아주(Victoria)와 태즈메이니아주(Tasmania)다. 빅토리아주는 2019년 관련 법을 개정해 알칼리 가수분해를 공식적인 화장 방식으로 인정했고, 멜버른을 중심으로 실제 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다. 태즈메이니아는 호주 본토 남쪽에 위치한 섬이자 하나의 주(State)로, 청정 자연과 친환경 정책으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2023년 브렌던 쿠퍼와 루크 크립스가 주 최초의 물화장 시설을 열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SBS와의 인터뷰에서 루크 크립스는 "자연에서는 흙 속에서 수십 년 동안 일어나는 분해 과정을 몇 시간 안에 재현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뼈를 고온으로 태우지 않기 때문에 화염식보다 유골이 20~30% 더 많이 남고, 색도 더 희며 입자가 곱다는 점도 특징으로 소개했다.
반면 뉴사우스웨일스(NSW), 퀸즐랜드, 남호주는 다소 애매한 상황이다. 법적으로는 알칼리 가수분해를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 시설은 매우 제한적이거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NSW는 2013년부터 제도적으로 허용됐지만,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상당수는 시신을 빅토리아주의 시설로 운구한 뒤 처리하고 유골만 가족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가장 큰 이유는 폐수 처리 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물화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액체는 안전하게 처리된 뒤 하수도로 방류되지만, 이를 위해서는 지방 수도 당국의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부 업체에서는 이러한 운송과 행정 절차 때문에 '시드니워터 부담금'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업체 홈페이지에 'NSW에서도 서비스한다'고 적혀 있더라도, 반드시 그 지역 안에 시설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호주(Western Australia)와 노던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는 아직 물화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종합하면 현재 호주는 빅토리아와 태즈메이니아가 실질적인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부 주는 제도는 마련됐지만 시설이 부족한 과도기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용은 아직 일반 화장보다 높은 편이다. 호주에서 화염식 직접 화장은 평균 3,500호주달러 정도지만, 물화장은 가장 단순한 형태도 3,500~6,000호주달러 수준이다. 다른 주로 운구해야 하는 경우에는 8,000호주달러를 넘는 사례도 있다. 장비 가격이 비싸고 운영 업체 수가 적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장비 보급이 확대되고 시장 규모가 커지면 비용도 점차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물화장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환경이다. 화염식은 고온 연소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치아 충전재에 포함된 수은이 대기 중으로 방출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알칼리 가수분해는 연소 과정 자체가 없어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으며, 심박조율기나 금속 삽입물도 폭발 위험 없이 회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처리 후 남는 액체를 어떻게 관리하고 방류할 것인지는 여전히 규제의 핵심 쟁점이며, 엄격한 수질 기준과 허가 절차는 사업자들에게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호주의 사례는 단순히 새로운 장례 기술 하나가 등장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도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직 물화장이 화염식을 대체할 단계는 아니지만, 반려동물 장례에서 시작된 변화가 인간 장례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는 적지 않다. 불이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마지막 길을 밝혀왔다면, 이제는 물이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을지 호주의 실험은 조용히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 이 내용은 2026년 7월 기준 호주 각 주 정부 자료, 언론 보도, 장례업계 협회 및 관련 업체 정보를 교차 검토해 작성했습니다. 관련 법령과 서비스 운영 현황은 주별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해당 주 정부와 서비스 제공업체의 최신 안내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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