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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노트

죽음을 치료하는 나라

 

죽음을 치료하는 나라


한국인의 75% 이상이 병원에서 죽는다.
집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제 집에서 죽는 것도 드문 일이 됐다. 그런데 태어나는 장소가 바뀐 것과 죽는 장소가 바뀐 것은 의미가 다르다. 출산은 의료의 도움을 받아 더 안전해졌다. 임종은 과연 그런가.


수많은 튜브와 전선을 몸에 꽂고, 낯선 기계음에 둘러싸여, 중환자실 침대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그것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었을 생각이 있다. 사람 한 평생 삶의 끝이 꼭 이래야 하나.


연명의료가 작동하는 방식
병원에 가면, 죽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비마다 진단명이 붙고 치료가 시작된다. 이것은 의료의 본능이다. 병원은 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본능이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할 때 문제가 생긴다.


심장이 멈출 것 같으면 심폐소생술을 한다. 숨을 쉬기 어려우면 인공호흡기를 단다. 먹지 못하면 위루관을 삽입한다. 각각의 조치는 의학적으로 정당하다. 하지만 그 총합이 과연 환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의료 시스템의 관성인지는 다른 질문이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치료는 종종 삶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을 연장한다. 그 차이를 임상 현장에서 구분하는 것은 어렵고, 구분하더라도 멈추는 것은 더 어렵다. 한 번 시작된 연명의료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사망진단서에서 사라진 것
한국 사망진단서의 사인 분류는 WHO 국제질병사인분류 체계를 따른다. 이 분류에서 자연사, 즉 늙어서 수명이 다해 죽는 것은 공식적인 사인이 되기 어렵다. 노환은 불명확한 진단명으로 간주되어 권장되지 않는다. 누군가 죽으면 반드시 무언가가 그를 죽인 것이어야 한다. 심부전, 폐렴, 패혈증, 신부전. 죽음은 질병의 결과로만 존재한다.


이 분류 체계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학적 정확성을 위한 것임을 안다. 다만 그 정확성이 만들어내는 세계관이 있다. 죽음은 패배이고, 원인이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막을 수 있었던 일이 된다. 그 세계관 안에서 의료는 끊임없이 개입할 명분을 얻는다.


선택은 있는가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임종기에 원하지 않는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다. 제도가 생긴 것은 진전이다.


그러나 제도가 있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의향서 작성률은 여전히 낮고, 작성했더라도 임종 현장에서 그것이 제대로 확인되고 존중받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 근본적으로는,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문화 자체가 한국 사회에 얇다. 의향서는 죽음을 직면한 사람만 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쓰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 없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의료 시스템의 기본값 안에 놓인다. 기본값은 치료다. 치료는 연명이 된다.


가족이 결정한다는 것
임종기 환자가 스스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할 때, 결정은 가족에게 넘어간다. 이것이 또 하나의 문제다.


가족은 환자의 대리인이지만, 그 순간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치료를 중단하자고 말하는 것은 포기처럼 느껴진다. 더 해보자고 하는 것이 효도처럼 느껴진다. 그 감정의 구조 안에서 연명의료는 계속된다. 환자를 위한 결정인지, 가족 자신의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결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마지막을 맞게 해드려야 제대로 된 자식의 도리를 다한 것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존재한다. 그 인식이 연명의료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토대다.


비인간성은 어디서 오는가
연명의료의 비인간성은 의료진의 냉담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 포기하지 않으려는 가족, 살리도록 설계된 시스템. 선의가 겹겹이 쌓인 결과가 비인간적인 임종을 만든다.


여기에 구조의 문제가 있다. 개인의 선의가 아무리 좋아도, 시스템이 죽음을 치료해야 할 실패로 보는 한, 그 안에서의 임종은 의료적 사건이 된다. 환자는 치료 대상이 되고, 임종은 절차가 된다. 마지막 순간에 손을 잡아줄 사람 대신 알람이 울리는 기계들이 곁에 있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죽음인지 물어야 한다.


준비한다는 것의 의미
좋은 묏자리를 알아보고 수의를 마련하는 것만이 죽음을 준비하는 전부가 아니다.


자신이 어떤 임종을 원하는지 생각하는 것. 그것을 가족에게 말해두는 것.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어떤 선택지인지 알아두는 것. 이것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불길하다는 감각이 있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은 죽음은 타인의 판단에 맡겨진다. 의료 시스템의 기본값에 맡겨진다. 준비는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지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존엄한 죽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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