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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노트

묘지에 태양광을 올리면 법적으로 괜찮은가

묘지에 태양광을 올리면 법적으로 괜찮은가 — 세 가지 쟁점과 답

엔딩연구소 | 2026년 4월 26일

 

 

묘지 위에 태양광 패널을 올리자는 제안을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있다. "그게 법적으로 되는 거야?" 그다음은 이것이다. "고인한테 실례 아닌가?"

두 질문 모두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특히 두 번째는 법보다 더 깊은 데 닿아 있는 질문이다.

 

첫 번째 쟁점 — 장사법이 막고 있다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묘지 안에 설치할 수 있는 시설물을 제한하고 있다. 비석, 상석처럼 전통적인 석물(石物) 위주다. 태양광 패널은 그 목록에 없다. 그러니 지금 당장 묘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이걸 어떻게 풀 것인가.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태양광 캐노피를 "발전 설비"가 아니라 "분묘 보존 및 성묘객 편의를 위한 친환경 가림막"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실제로 캐노피는 비를 막고 햇볕을 차단해서 성묘객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기능적으로 가림막이 맞다. 법률의 목적이 묘지의 무분별한 비대화를 막는 것이라면, 지면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상부 공간만 활용하는 캐노피는 그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

 

또 하나는 규제 샌드박스다. 산을 깎고 숲을 밀어내는 대규모 태양광 사업과 달리, 이미 개발된 공원묘지 상부 공간을 활용하는 것은 추가적인 환경 파괴가 없다.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맞닿아 있는 사업을 기존 법령의 공백 때문에 막는 것은 법의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 장사시설 에너지 혁신 구역으로 지정해 실증 특례를 부여하는 것이 현실적인 첫걸음이다.

 

두 번째 쟁점 — 형법상 분묘손괴와 오욕

더 날카로운 질문이다. 형법에는 분묘손괴죄와 사체등오욕죄가 있다. 묘역 위에 구조물을 올리는 것이 고인에 대한 모독이 되거나, 분묘의 평온을 해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기술적 답부터 말하면, 이 공법은 처음부터 유해 안장 공간에 1cm도 닿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둥은 묘지 구획의 경계선 위에 세워지고, 봉분과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된다. 지면을 훼손하지 않으니 분묘손괴의 구성요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오욕 문제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형법상 오욕은 비방이나 모독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정반대다. 고인이 잠든 공간에서 만들어진 에너지가 이웃의 난방비가 되고, 홀로 사는 노인의 전기요금이 된다. 그걸 모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한국에는 음덕(陰德)이라는 말이 있다. 조상의 덕이 후손과 주변을 살핀다는 뜻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 개념을 물리적으로 구현한다. 조상이 잠든 땅 위에서 햇빛이 전기가 되고, 그 전기가 소외된 이웃에게 간다. 음덕의 현대적 형태다.

 

세 번째 쟁점 — 유가족 동의는 어떻게 받나

법적 안전망의 마지막 고리는 동의 절차다.

 

신규로 조성되는 묘역이라면 분양 계약 단계에서 선택지를 준다. '에너지 나눔 묘역'으로 계약할지 여부를 처음부터 선택하게 한다. 기존 묘역은 제사주재자와 유가족 전체의 서면 동의를 법적 필수 요건으로 설정한다. 동의 없이는 진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고인과 유가족의 추모 방식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과정이다. 나는 이것을 '추모 주권'이라고 부른다. 어떤 방식으로 기억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후손과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다. '태양광 아래 잠드는 것'이 하나의 장례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다.

 

결국 이 제안이 요청하는 것

패널 설치 허가가 아니다. 묘지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다.

 

지금까지 묘지는 소비하는 공간이었다. 땅을 쓰고, 예산을 들이고, 관리 비용이 나가는 곳. 이 제안은 그 공간을 생산하고 나누는 공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법적 규제 완화는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이정표다.

 

기후 위기 시대에 죽음의 공간이 에너지 복지의 거점이 되는 것. 그것이 이 제안이 그리는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