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례문화진흥원과 노인인력개발원 통합이 추진되는 지금, 연 36만 명이 사망하고 무연고 사망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죽음을 책임질 독립 조직 '장사정책관'이 왜 필요한지 짚는다.
들어가며: 합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지난 9월 3일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을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합쳐 가칭 '한국노인복지개발원'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관과 자회사를 524개에서 415개로 줄이는 대규모 개편의 일부이며, 명분은 유사·중복 기능의 정리다.
공공기관 효율화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번 통합에는 기관 수를 줄이는 문제 이전에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죽음의 행정을 책임지는 정책 주체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통합은 개혁이 아니라 책임의 분산이다.
다행히 아직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정부는 통합 시기와 조직 재편안을 복지부가 세부 방안으로 마련하고,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와 법률 제·개정을 거쳐 순차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세부 설계가 비어 있는 지금이 장사 기능을 어떻게 지킬지 요구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이다. 이 글은 통합 찬반을 넘어, 왜 '장사정책관'이라는 독립 조직이 필요한지를 논증하려는 시도다.
1. '유사·중복'이라는 말의 허구
두 기관이 실제로 하는 일을 나란히 놓으면 대상부터 다르다. 노인인력개발원은 일자리를 찾는 노인을 지원한다. 장례문화진흥원은 장사지원센터 업무를 수행하며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재해·재난 장례지원, 무연고 장례지원, 장사시설 종사자 교육을 맡아 왔다. 한쪽은 살아서 일하려는 사람의 문제이고, 다른 쪽은 가족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과 재난 사망자의 문제이다.
겹치는 것은 교육, 연구, 정보시스템 운영이라는 형식적 틀뿐이다. 형식이 닮았다고 기능이 같아지지는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유사·중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제시되지 않는 한, 이번 통합은 명분이 비어 있다.
절차도 매끄럽지 않다. 10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노인인력개발원장은 통합 발표 전에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고, 직원 의견수렴이나 관계기관 협의도 없었다고 밝혔다. 통합 후 조직 화합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의견수렴 절차가 생략된 채 방향이 먼저 정해진 것이다.
2. 숫자는 이미 경보를 울리고 있다
장사정책이 왜 독립된 국가정책이어야 하는지는 통계가 말해준다.
2025년 사망자는 362,968명으로 전년보다 1.2% 늘었고, 하루 평균 994명이 세상을 떠났다. 화장률은 94%로 사실상 장사의 표준이 되었다. 장사는 가족의 사적 영역을 벗어나 국가 인프라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다.
더 무겁게 읽어야 할 숫자는 혼자 떠나는 사람들이다.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로 처리된 시신은 2021년 3,603명에서 2022년 4,842명, 2023년 5,543명, 2024년 6,366명으로 해마다 늘었고, 2025년에는 7,171명에 이르렀다. 4년 만에 99% 늘어 사실상 두 배가 되었다. 서울만 보아도 2020년 670명이던 무연고 사망자가 2024년 1,396명으로 불어났다.
4년 만에 99% 늘어 사실상 두 배가 되었다. 서울만 보아도 2020년 670명이던 무연고 사망자가 2024년 1,396명으로 불어났다.
이 숫자의 성격도 짚어야 한다. 2025년 무연고 사망자 7,171명 가운데 연고자가 없는 경우는 1,338명(18.7%),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는 463명(6.5%)이었고, 연고자가 있는데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가 5,370명(74.9%)이었다. 지난 4년간 늘어난 3,568명 가운데 79%(2,819명)가 인수 거부·기피의 증가분이다. 65세 이상은 2021년 1,845명에서 2025년 4,310명으로 늘어 전체의 60.1%를 차지한다.
무연고 사망의 핵심은 가족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끊어진 사회의 문제다. 1인 가구가 늘고 고령화가 깊어질수록 이 숫자는 구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3. 죽음의 행정은 '노인정책관의 업무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지금 이 문제를 책임지는 정책 주체는 누구인가. 공개된 복지부 직제를 보면 장사시설의 확충·지원 및 제도개선 사무는 인구정책실 산하 노인정책관의 소관이다. 노인 종합계획 수립, 경로우대, 노인일자리, 장기요양보험 같은 업무와 한 목록에 장사가 한 항목으로 들어 있다. 연 36만 명이 사망하고 무연고 사망이 7천 명을 넘은 나라에서, 죽음의 정책은 노인정책이라는 큰 업무 묶음의 한 줄이다.
여기에 이번 통합이 더해지면 정책 주체도 노인 라인이고 집행·지원 기관마저 노인 분야 기관이 된다. 정책도 집행도 '노인'이라는 하나의 틀에 갇히는 구조다.

다만 진흥원은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장사법 제33조의4에 따라 장사지원센터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는 기관이며, 정부의 종합계획도 국가 장사정책의 자문기구로 규정한다. 진흥원이 있었는데도 통계와 지역 격차가 풀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진흥원의 한계가 아니라 정책을 총괄해 책임지는 본부의 위상이 약했다는 증거다.
4. 국가가 세운 계획과 스스로 충돌한다
정부의 논리는 계획과도 맞지 않는다. 복지부가 수립한 제3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23~2027)은 '장례 복지 및 장사분야 재난 대응에서 국가와 지자체 역할 강화'를 표방하며, 진흥원의 기능을 확대하고 2025년까지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명시했다.
계획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그 기관을 다른 기관에 합치겠다는 것은, 국가가 세운 계획과 스스로 충돌하는 일이다. 위상을 높이겠다던 기관이 위상을 낮추는 방향으로 재편되는데, 그 사이 장사 환경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사망자는 늘었고, 무연고 사망은 두 배가 되었으며, 화장시설 문제는 여전하다.
5. 컨트롤타워 없는 장사행정이 낳은 문제들
첫째, 무연고 사망은 국가 통계로 공표되지 않는다. 이번 국감에서도 고독립사와 달리 무연고 사망은 국가 통계로 공표되지 않아 제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본 7,171명이라는 숫자도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 나온 것이다. 복지부는 2025년 국회에 가족관계, 공영장례 제공 여부 같은 정보를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확한 실태가 파악되지 않으니 정책의 목표도, 효과 측정도 불가능하다.
둘째, 마지막 의례의 질이 주소지로 갈린다. 복지부는 2013년 이후 무연고 시신 장사 매뉴얼을 배포하고 있지만 법정 의무 사안은 아니며, 처리와 정보 입력은 지자체 재량에 맡겨져 있다. 공영장례 조례는 전국에서 제정되었으나 예산 편성 편차 때문에 지원 대상과 수준의 격차가 크다.
셋째, 화장 수급 문제가 반복된다. 2024년 부산 영락공원은 화장로 1기당 하루 5회를 가동해 복지부 권고 기준인 3.5회를 넘겼다. 한 지역의 사례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화장을 치르는 '원정 화장'은 고질적 문제로 지적된다. 화장시설은 입지 갈등과 지자체 소관이 큰 영역이어서, 이를 광역에서 조정하고 재정 기준을 세울 중앙의 책임 주체가 필요하다.
넷째, 제도 설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올해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간행물에 실린 보고서는 화장이 보편화되었음에도 세부 정책과 제도 설계가 미흡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도 부족하다고 진단하며 중앙과 지자체의 역할 재정립을 제안했다.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문제다. 죽음을 총괄적으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정책 주체가 약하다는 것이다.
6. 통합이 아니라 격하가 문제다
이번 통합의 진짜 위험은 기능 소멸이 아니라 위상 하락이다. 조직의 이름과 소속은 예산의 순위이자 정책의 우선순위가 된다. 이 부분은 합리적 예측이며, 세부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직 막을 수 있는 위험이다.
'노인복지개발원'이라는 이름은 죽음을 노인의 일로 가둔다. 그러나 죽음은 연령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아이도 죽고, 산재로 청년도 죽으며, 재난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서울의 청년 무연고 사망자 중 상당수가 고립사로 추정된다는 시민단체의 분석도 있다. 노인복지라는 큰 간판 아래에서 장사 업무는 여러 사업 중 하나로 밀려나기 쉽고, 예산 심의에서 일자리 사업과 경쟁하게 되면 가시성이 높은 쪽이 앞서기 마련이다.
국감에서 제기된 연령차별주의(에이지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일자리와 장례라는 서로 다른 업무를 한 기관에 묶는 것은 정책의 대상을 연령 하나로 환원하는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이는 한 의원의 질의였으나, 제기된 문제의식은 구조적이다.
7. 시장이 대신할 수 없는 영역
일부는 장례가 이미 산업이라고 말한다. 장례식장도 상조도 민간이 운영하고, 빈소 없는 장례, 자연장, 유품정리, 디지털 유산 관리까지 시장은 빠르게 진화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시장은 수익이 나는 곳으로 움직인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재난 사망자의 신속한 수습, 화장시설의 공공성은 수익 모델이 되지 않는다. 시장은 수익을 따르고, 국가는 존엄을 지켜야 한다. 이 경계를 지키는 전문 조직이 약해지면 빈자리는 시장이 채우고, 그 비용은 가장 취약한 사람이 치른다.
8. 해법: 장사정책관
필요한 것은 기관의 합병이 아니라 정책 총괄 조직의 설치다. 다음 임무를 맡는 국장급 '장사정책관'을 두자고 제안한다.
기존 정책과의 경계도 분명히 해야 한다. 고립사의 사전 예방은 기존 복지 체계가 맡고, 장사정책관은 사후 처리, 공영장례 기준, 통계, 시설 수급을 맡는다. 그래야 통합을 '유사·중복'이라 비판하면서 같은 지적을 자초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설계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장사정책관 신설에는 대통령령인 복지부 직제 개정이 필요하다. 신규 인력을 크게 늘리기보다 노인정책관실에 분산된 장사 인력과 통합 과정에서 정리되는 행정지원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정책관은 정책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두뇌이고, 전문기관은 이를 집행하고 지원하는 손발이다. 두뇌 없이 손발만 합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영역이 생긴다.
9. 예상되는 반론에 대하여
정부와 통합 찬성 측의 논리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두 기관 모두 교육, 연구, 정보시스템을 운영하므로 행정 지원 기능을 합치면 효율이 높아진다는 주장, 통합 대상 기관 직원은 임원을 제외하고 고용승계와 처우 유지가 보장된다는 설명, 통합기관 안에 장사 담당 부서를 두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노인인력개발원장은 12개 지역본부를 활용하면 장사 업무를 지역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의견도 냈다.
이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지역 조직을 활용하면 현장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고, 행정 지원 기능의 통합은 실제 절감 여지가 있다. 그러나 두 가지 한계가 남는다. 첫째, 고용승계는 사람을 지킬 뿐 기능의 위상과 독립성까지 지켜주지는 않는다. 둘째, 기관 내 한 부서는 예산과 인사에서 큰 사업 밑에 놓이기 쉽다. 정책 총괄 기능은 집행기관의 하위 부서가 아니라 정부 본부에 있어야 한다.
반대로 장사정책관 신설이 정부의 감축 기조와 상충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는 기관 수를 줄이는 일과 정책 책임 조직을 세우는 일이 서로 다른 층위임을 설득해야 풀리는 쟁점이다. 기관은 줄일 수 있어도 책임은 줄일 수 없다.
10. 우리가 요구해야 할 세 가지
맺으며
출생은 국가전략이 되었다. 그러나 죽음은 아직 국가정책의 이름을 얻지 못했다.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사람이 혼자 죽고, 더 많은 가족이 장례를 감당하지 못하는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
기관을 줄이는 것은 개혁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의 무게까지 줄이는 순간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퇴행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장사정책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에 답할 조직, 장사정책관이 지금 필요하다.
| “살아서 나가야 할 문 앞에 마지막 길이 놓여 있다” (0) | 2026.10.19 |
|---|---|
| 선화장 후추모의 시대③ 장례를 두 번의 작별로 나누자 (0) | 2026.10.13 |
| 마지막 옷, 내가 고른다 (0) | 2026.09.30 |
| “화장하거나 봉안하라”, 유골을 정의하지 못한 장사법의 허점 (0) | 2026.09.30 |
| 죽은 자와의 결혼식 ② 한국편 (1) | 2026.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