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전문병원의 장례식장 운영을 묻는다
암 환자는 병원 문을 들어서며 한 가지를 믿는다. 이곳에서 치료받으면 살아서 이 문을 다시 나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구토와 탈모, 끝없는 대기와 검사 결과 앞에서 환자를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힘이다. 그런데 그 병원 지하에서 장례식장이 영업 중이라면, 병원은 환자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일까.
암 전문병원만큼은 장례식장을 직접 운영해서는 안 된다. 법으로 막자는 말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병원이라면 스스로 택하지 않아야 할 일이라는 상식의 문제다.
‘암’이라는 말과 ‘죽음’이라는 말 사이
종합병원의 장례식장은 응급실과 중환자실, 노인 병동에서 맞닥뜨리는 죽음을 받는 곳이다. 암 전문병원은 다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살기 위해 왔다. 수술을 앞둔 사람, 항암 일정을 손꼽으며 버티는 사람, 재발 여부를 가려 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이 한 건물 안에 있다. 이들에게 병원은 치료의 공간이기 이전에 희망을 맡겨 둔 곳이다.
암 진단을 받은 날 밤, 환자와 가족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통계 속 생존율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두 글자다. 그런 사람들에게 병원 복도의 안내판 하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상복 입은 사람 하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곡소리 하나는 가볍게 지나가지 않는다. 환자는 그 하나하나를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위로가 되어야 할 병원의 풍경이 그대로 상처가 될 수 있다.
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항암 주사를 맞고 나온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로비를 지난다. 옆으로 검은 상복을 입은 가족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지하 층 버튼 곁에는 ‘장례식장’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곁을 지키는 보호자는 안다. 환자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렀는지를.
병원이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해도, 환자에게는 이렇게 읽힌다. ‘이곳은 그 끝까지 준비된 곳이구나.’ 보호자의 마음은 더 시리다. 병상 곁에서 이미 최악의 경우를 수없이 상상하는 사람에게, 병원은 그 상상을 건물 구조로 보여 준다. 위로해야 할 병원이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리는 셈이다.
마지막 길을 안내하는 병원
문제는 마음의 풍경만이 아니다. 병원이 직접 장례를 운영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한 물음을 낳는다.
한국장례협회 자료를 인용한 2022년 5월 비즈한국 보도에 따르면 전국 장례식장 1,102곳 가운데 병원 장례식장은 637곳으로 약 57.8%를 차지한다. 같은 보도는 병원의 의료외수익에서 장례식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68.9%에 이른다고 전했다. 병원 경영이 장례식장 수익에 적지 않게 기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숫자를 암 전문병원에 겹쳐 놓으면 어색함이 선명해진다. 환자를 살리겠다고 약속하는 병원이, 환자를 떠나보내는 일에서 상당한 수익을 거두는 구조로 보일 수 있다. 병원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일하든, 환자와 가족의 눈에는 이 구조가 불편한 이해관계로 비치기 쉽다. ‘사람 살리는 곳에서 장례라니’라는 한 경제매체의 기사 제목이 나온 까닭이다.
신뢰의 문제도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8년 조사한 결과, 병원 장례식장이 게시한 가격과 장사정보시스템에 등록된 가격이 일치하는 비율은 63.9%에 그쳤다. 임종 직후의 유족은 가격을 따지고 비교할 경황이 없다. 그 가장 약한 시간에 가격 정보마저 믿기 어렵다면, 치료 과정에서 쌓은 병원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흔들릴 수 있다.
국립암센터 18년이 말해 주는 것
국립암센터의 사례는 이 논의에 또 다른 증거를 보탠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센터는 2001년 6월 병동 지하에 21억 2,395만 원을 들여 연면적 2,454㎡ 규모의 장례식장을 지었다. 빈소는 9실이었다. 그러나 개장 직후 인근 단독주택 주민 4명이 장례차량 출입과 곡소리 등으로 주거환경이 훼손된다며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08년 12월 주민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후 2009년 4월 법원이 금지 행위가 있으면 하루 500만 원을 물리도록 결정하자 센터는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개장 7년 10개월 만이었다.
그 뒤 18년 가까이 지났다. 최근 5년간 센터에서 숨진 환자는 3,568명, 연평균 714명으로 하루 두 명꼴이다. 그 이별은 병원 밖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병원 안에 장례식장이 없어도 이별은 막히지 않았다. 유족은 고인을 모셨고, 빈소는 차려졌고, 조문객은 고인을 배웅했다.
그 18년 동안 병원은 치료와 연구에 전념했다. 항암 주사를 맞고 나온 환자가 로비에서 상복 입은 가족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병동 아래층에서 곡소리가 올라올 일도 없었다. 장례는 병원 밖의 전문 시설이 맡았다. 병원 건물 안에서 장례가 치러지지 않는 병원, 그것은 상상이 아니라 18년 가까이 현실에서 작동해 온 하나의 모델이다.
물론 이 모델을 의도해서 만든 것은 아니다. 주민 소송이라는 우회로를 거쳐 얼떨결에 도달한 결과다. 21억 원을 들인 지하 시설을 비워 둔 채 18년이 흘렀다는 사실은 분명 행정의 실패다. 그러나 시설의 방치와 장례 기능의 분리는 다른 문제다. 센터는 재개장 의사를 묻는 질문에 판결이 있어 예민한 사안이라고 답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18년의 기록은 분명하다. 장례식장을 닫은 병원은 병원다움을 얻었다.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곳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을, 18년 동안 지켜 왔다.
병원 안에 장례 기능을 두었을 때 부딪친 것은 환자만이 아니었다. 병원 안에서는 환자와 유족이, 병원 밖에서는 이웃이 마주쳤고, 그 갈등은 소송으로 번졌다. 치료와 연구를 본업으로 하는 기관이 장례 시설의 입지와 분쟁까지 떠안아야 했다는 사실은, 병원이 감당할 일의 범위를 다시 묻게 한다.
“다른 병원도 하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암 전문병원에도 장례식장이 있다는 반론은 힘이 있다.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은 빈소 8실과 안치 14구, 주차 815대 규모의 장례식장을 두고 있고, 부산 기장군의 동남권원자력의학원도 빈소 5실과 안치 12구, 주차 600대 규모의 장례식장을 갖췄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같은 대형 병원들도 암병원과 장례식장을 함께 운영한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관행은 대개 사정이 있어 생기고, 그 사정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 남는다. 임종 직후의 안치와 인계가 편하다는 현실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편의가 환자의 마음과 병원에 대한 신뢰를 대가로 치러야 한다면, 암 전문병원은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다.
병원은 병원답게, 장례는 장례답게
장례를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를 존엄하게 보내는 일은 병원이 마땅히 도와야 할 책임이다. 다만 ‘직접 운영’과 ‘책임 있는 연계’는 다르다.
1. 물리적·운영적 분리. 새로 짓는 암 전문병원이라면 장례식장은 병원 부지 안에 두지 않고, 인근의 독립된 시설과 연계하는 방식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2. 공공성 있는 위탁·연계 협약. 가까운 공공·비영리 장례시설과 협약을 맺고 가격과 서비스를 공개하게 한다. 병원은 수익이 아닌 유족의 편의와 존엄만 책임진다.
3. 인계 체계의 정비. 병원 안에서는 임종 직후의 안치와 이동이 조용하고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장례 절차는 외부로 넘기는 구조다. 환자가 보는 공간에서 장례 동선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4. 이미 운영 중인 병원에는 단계적 전환 로드맵. 즉각 폐쇄가 아니라 수익 구조 공개, 동선 분리, 독립 운영 전환의 순서로 가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문 하나의 거리
병원은 사람이 살아서 나가기를 바라는 곳이고, 그렇게 보여야 하는 곳이다. 암 전문병원은 그 믿음이 가장 절실한 곳이다.
죽음이 가까운 병일수록, 그 병을 치료하는 병원은 죽음의 그림자를 건물 안에 들이지 않으려는 배려를 지녀야 한다. 그것이 환자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예의다. 우리가 병원에 바라는 것은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않는 제대로 된 의료다. 환자가 ‘나는 살 수 있다’고 믿고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 그것이 그 의료의 출발점이다.
장례는 존엄하게 치러져야 하고, 치료는 희망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두 가지를 모두 지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서로 다른 지붕 아래에 두는 것이다. 문 하나의 거리, 어쩌면 그 작은 거리가 한 사람의 마지막 희망을 지켜 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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