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의 출발점
공공안치시설은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 고인을 안전하게 모시는 기능 시설이다. 그래서 이 설계는 장식을 덜어 내고 위생과 안전을 건축의 언어로 끌어올리는 데서 출발했다. 차갑기만 한 병원도, 꾸밈뿐인 예식장도 아닌 곳. 장식 없는 성당처럼 고요하되 수술실처럼 철저한 곳을 그렸다. 흰색과 따뜻한 회색 바탕에 연한 오크 목재, 스테인리스와 무광 세라믹을 쓰고, 조명은 모두 간접광으로 두어 가장 무너진 순간의 가족이 마주할 공간이 날카롭지 않도록 했다.

건물 전체: 낮고 수평적인 두 얼굴
건물은 낮고 수평적인 2층 구조다. 깊게 드리운 처마와 오크 살대 파사드가 정면에 온기를 더하고, 앞마당의 조용한 정원이 방문객의 걸음을 늦춘다. 이 건물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정면은 유가족을 맞이하는 열린 얼굴이고, 후면은 차량이 드나드는 운구 전용 날개로 수목에 가려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고인을 모시는 일과 가족을 맞는 일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도록, 건물의 형태부터 둘을 나누었다. 지붕의 설비는 루버 안에 단정히 감추고 태양광 패널을 얹어 운영의 부담을 덜었다.

입구: 위생이 보이는 첫 문
입구에 들어서면 유리로 된 에어샤워 구간이 가장 먼저 보인다. 벽에 매입한 스테인리스 패널에는 비접촉 손 소독기가 있고, 작은 초록 표시등이 실내 공기압 상태를 알려 준다. 위생 설비를 숨기지 않고 입구에서부터 드러낸 것은 이 시설이 무엇을 지키는 곳인지 가족에게 말없이 보여 주기 위해서다. 휠체어가 닿는 완만한 경사로와 목재 천장은 이 엄격함이 사람을 밀어내지 않도록 받쳐 준다.

동선: 두 갈래 길은 한 곳에서만 만난다
설계의 중심은 동선이다. 유가족의 길과 운구의 길을 완전히 나누었다.
유가족 동선: 입구 → 접수 로비 → 상담실 → 작별실
운구 동선: 후면 하역장 → 인수 확인실 → 위생처치실 → 안치실
두 길은 오직 작별실에서만 만난다. 유가족은 상담 내내 고인과 마주치지 않고 차분히 절차를 정하며, 작별을 원할 때에만 고인과 대면한다. 운구 구역은 이중 인증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구역마다 CCTV와 온도 이상 경보를 두었다. 동선을 가른다는 것은 위생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존엄의 문제다.
안치실: 단독형과 일반형
안치실은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눈다.

단독형 안치실은 한 분만을 위한 독립 공간이다. 벽에 매입한 스테인리스 냉장 안치대, 개별 온도와 공기 제어, 천장의 HEPA 급기구와 UV 살균 패널을 갖추었다. 서리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자연광 아래 가족이 앉을 낮은 벤치를 두어,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나 장기 안치, 유가족이 따로 작별을 원하는 경우에 쓴다.

일반형 안치실은 여러 분을 효율적으로 모시는 공간이다. 스테인리스 냉장 캐비닛이 벽면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칸마다 개별 도어와 전자 잠금, 상태 표시등, 바코드 식별판을 갖추어 고인이 뒤바뀌거나 섞일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는다. 홀 입구에는 유리벽의 UV 살균 구간을, 바닥에는 카트 유도선을 두었다. 평상시의 단기 안치를 맡다가 재난과 감염병으로 수요가 급증하면 확장되는 시설이다.
두 유형 모두 바닥과 벽이 둥글게 만나는 코브 마감과 줄눈 없는 에폭시 바닥, 모서리 없는 항균 패널로 오염이 고일 틈을 없앴다.

상담실: 슬픔을 위한 가장 작은 방
상담실은 이 시설에서 가장 부드러운 공간이다. 둥근 오크 테이블과 따뜻한 회색의 의자, 방음 직물 벽, 대나무가 비치는 서리 유리창이 낯선 행정 절차의 긴장을 풀어 준다.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가구와 문 옆의 비접촉 소독기, 사용 중임을 알리는 작은 표시등이 위생과 사생활을 함께 지킨다. 가족이 비용과 절차를 서두르지 않고 헤아릴 수 있는 방이다.



위생처치실: 가장 엄격한 공간
위생처치실(염습, 입관, 엠바밍실)은 시설에서 가장 엄격한 곳이다. 배수 홈이 있는 높낮이 조절형 스테인리스 처치대, 수술실형 조명, 팔꿈치로 여닫는 수전, 유리 캐비닛 속 보호구 보관함, 밀폐형 의료폐기물 용기를 갖추었다. 하향식 환기와 HEPA 배기, 문 위의 음압 표시등은 공기가 바깥으로 새지 않도록 지킨다. 복도 쪽에는 서리 필름을 입힌 관찰창을 두어 안전을 확인하되 고인의 사생활은 가린다. 이곳의 철저함은 차가움이 아니라, 고인과 이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를 지키는 예의다.

자율주행 카트: 조용히 옮기는 손
고인의 이송은 운구 전용 복도를 따라 자율주행 카트가 맡는다. 둥근 흰색 차체에 오크 색조의 덮개를 얹어 존엄을 지키고, 가장자리의 라이다 센서와 바닥에 비치는 푸른 경로등이 움직임을 알린다. 이중 도어와 UV 살균 게이트를 하나씩 지나는 동안 카트는 소리 없이 미끄러진다. 사람의 손이 닿는 횟수를 줄이는 것은 감염 위험을 낮추는 일이자, 운구 인력의 신체적 부담을 덜고 이송 중 실수를 줄이는 일이다.
맺으며
이 시설의 모든 하드웨어는 하나의 질문에 답한다. 가장 약해진 순간의 가족과 고인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위생과 안전을 건축으로 보이게 하고, 동선으로 존엄을 나누고, 상담실의 온기로 사람을 맞이한다. 이 설계는 기본장제비와 함께 공공이 책임져야 할 장례의 출발점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그려 본 제안이다.
| 마지막을 책임질 때, 복지국가는 완성된다 (0) | 2026.10.28 |
|---|---|
| 죽음에는 주무 부서가 없다. '장사정책관'을 세워야 하는 이유 (0) | 2026.10.23 |
| “살아서 나가야 할 문 앞에 마지막 길이 놓여 있다” (0) | 2026.10.19 |
| 선화장 후추모의 시대③ 장례를 두 번의 작별로 나누자 (0) | 2026.10.13 |
| 마지막 옷, 내가 고른다 (0) | 2026.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