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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거나 봉안하라”, 유골을 정의하지 못한 장사법의 허점

고독한 엔딩

by 다비코 2026. 9. 3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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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법은 봉안을 유골을 봉안시설에 안치하는 것이라고만 정의한다. 화장을 거쳐야 한다는 말은 없다.

 

묘를 쓴 지 3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0조는 설치기간이 끝난 분묘의 연고자에게 1년 안에 시설물을 철거하고 매장된 유골을 "화장하거나 봉안"하라고 정한다.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런데 이 조문에는 이상한 대목이 있다. 왜 "화장한 뒤 봉안"이 아니라 "화장하거나 봉안"일까.

 

법은 봉안을 유골을 봉안시설에 안치하는 것이라고만 정의한다. 화장을 거쳐야 한다는 말은 없다. 반면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나무나 잔디 밑에 묻거나 바다 등에 뿌려 장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정의 안에 화장이 들어 있다. 바다 등에 뿌리는 산분이 자연장에 포함된 것은 2025년 1월 24일부터다.

 

봉안 앞에는 화장이 붙지 않고, 자연장 앞에는 붙는다. 흔히 자연장을 “화장 후 봉안”의 한 갈래로 여기지만 법적으로는 다르다. 제20조 제1항은 연고자에게 “화장하거나 봉안”하도록 규정해 화장과 봉안을 나란히 놓는다. 반면 제20조 제2항은 연고자가 나서지 않을 경우 설치자가 “화장하여 봉안”하도록 순서를 명시한다. 연고자에게는 화장과 봉안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설치자가 대신 처리할 때에는 화장한 뒤 봉안하도록 절차를 정한 것으로 읽힌다. 

 

봉안당은 화장증명서를 요구한다

 

봉안당에 가면 화장증명서를 요구한다. 새로 돌아가신 분은 시신이므로 유골이 되려면 화장을 거쳐야 하고, 봉안 전에 화장 신고를 하는 것이 통상의 절차다. 하지만 이는 절차와 서류의 이야기다. 화장증명서는 화장이라는 행위를 확인해 주는 서류이지, 봉안이 성립하기 위한 법적 요건은 아니다. 시행령에 "이미 화장된 유골은 제외한다"는 문구가 있는 것도 화장하지 않은 유골이 봉안되는 경우를 전제한다.

시행령 제24조 제2항 - “공설묘지ㆍ사설묘지의 설치자, 시ㆍ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은 제1항에 따른 봉안기간이 끝났을 때에는 봉안이 되었던 유골을 화장(이미 화장된 유골은 제외한다)하여 … 뿌리거나 자연장하여야 한다.”

 

혼선의 뿌리는 '유골'이라는 단어다. 장사법은 '유골'을 정의하지 않는다('장사'도 정의하지 않는다). 자연 상태에서 육탈된 뼈도, 화장하고 남은 뼈도, 곱게 간 골분도 모두 "유골"이라는 한 단어에 담긴다. 육탈이 어느 정도 되어야 시신이 아니라 유골인지를 가르는 법적 기준도 없다. 시행령이 화장하지 않은 유골과 화장한 유골의 매장 깊이를 달리 정하는 정도로 메우고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넓게 잡았는지 밝힌 기록은 찾기 어렵다. 한국어 '유골'이 뼈와 재를 가리지 않고 쓰이고, 매장이 중심이던 시절의 표현이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일본은 시신을 묻는 것과 화장한 뼈를 묻는 것을 아예 다른 말로 쓴다. 대만은 시신, 뼈, 재를 구분한다. 독일의 일부 주는 아직 완전히 썩지 않은 신체를 시신이라 정의해, 육탈 정도를 법 개념에 넣었다.

 

장사가 두 번, 세 번

 

더 큰 문제는 '장사'가 몇 번이냐는 것이다. 법은 화장을 장사라 하고 자연장도 장사라 한다. 시신에서 자연장에 이르면 장사가 두 번이다. 시행령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무연고 시신의 경우 묻거나 봉안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화장한 뒤 뿌리거나 자연장하도록 한다. 매장, 봉안, 화장, 자연장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사실상 2차장, 3차장이다.

 

어느 단계가 끝인지 정하지 않은 채 단계마다 "장사"라 부르다 보니 개념이 꼬인다. 봉안한 유골을 화장하거나 자연장할 때 이를 무엇이라 부르고 어디에 신고하는지도 조문에서 분명하지 않다.

 

장사를 제자리로 돌려놓자

 

이제 장사의 뜻을 그 글자대로 돌려놓자. 장사는 시신을 처리하는 일이다. 매장과 화장, 두 가지면 충분하다. 봉안과 자연장, 산분은 장사가 끝난 뒤 남은 유골을 어떻게 모실 것인가의 문제로 따로 다루면 된다.

 

'유골의 처분'이라는 이름으로 묶고, 시설 요건과 신고, 환경 규제는 여기에 두는 것이 낫다. 그러면 화장도 장사이고 자연장도 장사여서 한 사람의 죽음에 장사가 두 번, 세 번 이어지는 이상한 계산이 사라진다.

 

육탈된 유골은 시신의 연장으로 보고, 화장한 골분은 유골 처분의 대상으로 나누면 육탈 정도를 따로 가르지 않아도 법이 스스로 답을 낼 수 있다. 제20조도 "화장하거나 봉안하라"는 애매한 문장 대신, 분묘를 정리한 뒤 유골을 어떻게 처분하는지를 분명히 적는 조문으로 다시 쓸 수 있다. 일본과 대만은 이미 시신을 다루는 말과 유골을 다루는 말을 나눠 쓴다. 한국 법만 한 단어로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할 이유가 없다.

 

죽음을 다루는 법의 말은 결국 산 사람이 겪는 절차의 말이다. 유골이 무엇인지, 어디까지가 한 번의 장사인지 법이 답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유족이 진다. 이제 입법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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