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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없는 유언장, 어디까지 왔나

엔딩노트

by 다비코 2026. 8. 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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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디지털 유언 현황

 

2026년 8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언 제도의 디지털 전환이 서로 다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어떤 나라는 이미 법을 통과시켰고, 어떤 나라는 법원 판례가 입법보다 앞서 나가고 있으며, 어떤 나라는 여전히 68년 전, 혹은 그보다 더 오래된 법 조문을 그대로 쓰고 있다.

 

미국. 주(州)마다 다른 속도

 

미국은 연방 차원의 통일된 법이 아니라 주(州) 단위 입법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미 여러 주가 전자 유언(e-will)을 정식으로 인정했다. 미주리주는 2025년 전자 유언 및 전자 상속계획서법을 통과시켜, 유언자가 전자 서명을 하고 두 명의 증인이 물리적으로든 전자적으로든 참석한 상태에서 증언하도록 규정했다. 네바다주는 한발 더 나아가 서명 시 지문, 망막 스캔, 영상 녹화 등 "인증 특성(authentication characteristic)"을 요구한다.

 

2025년에는 미주리·노스다코타주가 콜로라도·일리노이·오클라호마·워싱턴에 이어 통일전자상속계획문서법(Uniform Electronic Estate Planning Documents Act)을 채택하며 전자 유언 인정 주가 계속 늘고 있다. 다만 유언 자체의 전자화와는 별개로, 사망 후 온라인 계정(이메일·SNS 등)에 대한 접근권 문제는 개정통일수탁자디지털자산접근법(RUFADAA)이 다루는데, 2021년 기준 47개 주가 이를 채택해 이용자가 사전 동의한 경우 유산관리인이 전자적 통신에 접근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 나머지 주

 

캐나다는 주별 편차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는 2021년 12월 1일부터 상속법(WESA) 개정을 통해 완전한 전자 유언을 허용한 유일한 주로, 화상 회의를 통한 서명·증인 입회가 종이 없이 전 과정에서 가능하다. BC주 정부는 훼손되지 않은 전자 유언 사본이라면 여러 기기나 온라인 저장소에 저장된 것도 모두 "원본"으로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어, 유언 집행자가 원본을 찾기 어려운 문제도 해결하고자 했다.

 

반면 온타리오주는 흔히 오해를 사는 지점이다. 2026년 상반기 기준 분석에 따르면, 온타리오주는 화상 증인 입회(video witnessing)는 영구적으로 허용하지만, 유언장 문서 자체는 여전히 잉크로 서명한 종이 문서여야 한다. 즉 "화상 증인 허용"과 "완전한 전자 유언 허용"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온타리오 법률위원회가 전자 유언 합법화를 권고했지만 2026년 5월 기준 입법 변화는 없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법원이 입법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2026년 온타리오 고등법원의 Gebremariam v. Menghesha 판결에서 담당 판사는 상속법(SLRA)이 유언을 "서면"으로 요구하면서도 "서면"이나 "문서"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고, 전자 기록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도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 기존 판례(White v. White, 2023)가 확립한 "전자 형식은 인정 불가"라는 해석을 재검토했다. 앨버타주는 아직 전자 유언 관련 법이 전혀 없어, 거주자는 전통적인 방식대로 종이에 직접 서명해야 한다. 퀘벡주는 자필증서·증인 입회 유언·공증 유언 세 가지 방식을 인정하는 대륙법 체계여서, 온라인 유언장 플랫폼을 쓰더라도 법적 위험이 가장 큰 주로 꼽힌다.

 

영국. 개혁안은 나왔지만 국회는 멈춰 있다

 

잉글랜드·웨일스는 여전히 1837년에 제정된 유언법(Wills Act 1837)을 따른다. 2026년 6월 기준으로도 전자 유언은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으며, 유언은 서면으로 작성되고 유언자가 서명하며 두 명의 증인이 물리적으로 참석해 함께 서명해야 한다.

 

법률위원회(Law Commission)는 2025년 5월 16일 유언법 전면 개정 초안("Modernising Wills Law")을 발표했다. 정부는 원래 1년 이내, 즉 2026년 5월 16일까지 상세한 답변을 내놓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26년 5월 13일 새 의회 회기를 여는 킹스 스피치에도 유언법안은 포함되지 않았고, 정부의 전체 답변 기한 역시 지나도록 발표되지 않았다. 개혁의 방향은 뚜렷하지만, 실제 입법 시점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일본. 법 통과

 

일본은 최근 가장 빠르게 움직인 나라다. 2026년 1월 20일 법제심의회 민법(유언 관계) 부회가 "보관증서유언" 창설을 골자로 한 개정 요강안을 정리했고, 4월 3일 각의 결정을 거쳐 국회에 제출됐다. 그리고 6월 17일, 마침내 "민법 등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레이와 8년 법률 제45호)이 국회를 통과해 6월 24일 공포됐다.

 

새로 생기는 "보관증서유언"은 PC나 스마트폰으로 유언장 전문을 작성하고, 전자서명을 첨부해 온라인으로 법무국에 보관을 신청한 뒤, 법무국 담당관 앞에서(대면 또는 화상회의) 유언 전문을 직접 구술하는 절차를 거친다. 명의 도용이나 강요를 막기 위한 장치다. 법무성은 이번 개정의 취지가 단순히 종이를 데이터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작성자 본인의 진의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제도 안에 내장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시행일은 공포일로부터 최대 3년 이내로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즉 법은 이미 존재하지만 실제로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빨라야 2027년, 늦으면 2029년이 될 수 있다. 현행법상 PC로 입력한 전자 기록은 민법 968조의 "자서(自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여전히 무효이며, 시중의 "디지털 유언" 관련 민간 서비스는 대부분 엔딩노트의 전자판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함께 개정되는 자필증서유언에서는 "날인(도장)" 요건이 폐지될 예정이지만, 전문을 손으로 써야 하는 요건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

 

한국. 68년 만에 열린 논의의 문

 

한국은 이번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늦게 출발했지만, 최근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법무부 가족법 특별위원회가 2026년 5월경 유언 법제 개정 논의에 처음으로 착수했다. 1958년 제정 이후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은 민법 제1066조부터 제1070조까지의 유언 관련 규정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논의 테이블에 오른 의제는 네 가지다. 디지털 유언장의 법적 효력 인정, 유언장 공적 보관소 신설, 자필 유언 형식 요건 완화, 그리고 장애인 유언자를 위한 규정 개선이다. 특히 현행 공증 유언은 말로 의사를 명확히 전달해야 하는 요건이 있어 중증 장애인이 사실상 유언권에서 소외돼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의 배경에는 60대 이상 고령층이 보유한 이른바 "시니어 머니"가 지난해 기준 4600조원에 달한다는 현실이 있다. 다만 본인 확인, 위조 방지, 의사능력 판단 등 해결해야 할 기술적·법적 과제가 남아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국가별 비교

미국(일부 주) 시행 중 주별 편차, 미주리·네바다·일리노이 등
캐나다(BC주) 시행 중(유일) 완전 전자 유언, 화상 서명·증인 가능
캐나다(온타리오) 부분 허용 화상 증인만 허용, 문서는 종이·잉크 서명 필수
캐나다(앨버타·퀘벡) 미시행 전통 방식 유지
일본 법 통과, 시행 대기 보관증서유언, 법무국 관여, 최대 2029년경 시행
영국 개혁 지연 법률위원회 권고 이후 정부 답변 미발표
한국 논의 착수 법무부 가족법특위, 아직 법안 없음

 

 

여섯 개 나라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된 고민이 보인다. 본인 확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위조와 강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리고 디지털 취약계층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가. 온타리오의 법원 판례가 입법 공백을 메우려 애쓰는 모습이나, 일본이 법무국이라는 공적 기관을 절차 안에 끌어들인 방식은, 결국 "종이"가 하던 신뢰의 역할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각국의 답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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