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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의료계획

엔딩노트

by 다비코 2026. 8. 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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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고 싶은가"에서 시작되는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은 스스로 의사를 표현할 수 없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삶을 이어가고 싶은지를 미리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핵심은 연명의료나 치료 항목을 미리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데 있다.

 

한 어르신에게 처음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이나 병원 치료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목욕탕이나 좀 더 다니고 싶은데."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이 제도의 본질이 담겨 있었다. 그 사람이 지금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상을 이해하면, 이후의 치료와 돌봄에 대한 선택 역시 그 기준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창한 자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은 가족 모두가 모여 엄숙한 분위기에서 나누는 특별한 대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상 속 작은 순간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TV 뉴스를 함께 보다가, 이웃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손주와 함께 외출을 이야기하다가, 친구와 카페에서 근황을 나누는 시간에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굳이 "이제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라고 운을 뗄 필요는 없다. 어떤 노부부는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오랜만에 손주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계기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삶과 바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다

 

비혼이거나 가족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와 해야 하나요?"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능하다.

 

아버지를 오랫동안 간병하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 한 미혼 여성은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내가 혼자 결정하지 못하게 되면, 네가 내 이야기를 대신 전해줬으면 좋겠어."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에서 중요한 것은 법적 가족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뜻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해 줄 사람을 미리 정해 두는 일이다.

 

한 번 작성하고 끝나는 계획이 아니다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은 한 번 작성해 서랍 속에 보관하는 문서가 아니다.

 

사람의 건강 상태는 변하고, 삶의 환경도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역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1.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가치를 돌아본다.
  2. 자신의 뜻을 맡길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을 정한다.
  3. 가족이나 친구, 의료진, 돌봄팀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다.
  4. 그 내용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필요할 때마다 다시 이야기한다.

이 네 단계는 한 번으로 끝나는 절차가 아니라 삶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이미 시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이 개념을 처음 접하면서도, 사실은 이미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점이다.

 

약국에서 관련 안내 포스터를 본 한 며느리는 약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 저희 아버님과는 이미 여러 번 이런 이야기를 했네요."

 

명절에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어본 일도, "이제는 산을 못 타겠다"는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던 일도 모두 그 사람에게 중요한 삶을 이해하려는 대화였다.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은 특별한 질문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소 나누던 대화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일 수 있다.

 

오늘, 한마디를 건네는 것부터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을 시작하기 위해 특별한 준비는 필요하지 않다.

 

오늘 저녁 부모님이나 배우자, 혹은 가장 신뢰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한마디를 건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요즘 가장 즐거운 일이 뭐예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지내고 싶으세요?"

 

그 대답 속에는 그 사람이 지키고 싶은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의료계획은 바로 그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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